

해방 직후 대한민국이 단행한 농지개혁은 분명 현대사의 신의 한 수였다. 대지주에게 종속되어 ‘외거 노비’와 다름없는 삶을 살던 소작농들에게 제 땅을 갖게 한 이 조치는 국민적 환호 속에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기틀을 닦았다. 하지만 그로부터 70여 년이 흐른 지금, 우리 헌법에 명시된 ‘경자유전’의 원칙은 여전히 유효한 정의인가, 아니면 농민의 발목을 잡는 낡은 쇠사슬인가.
이재명 대통령은 도시인의 농지 매입을 무조건 ‘투기’로 규정하고 이를 악마화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경제의 기본인 수요와 공급의 법칙을 무시한 처사다. 결과적으로 농민의 재산권 행사를 가로막아, 평생 농사만 짓다 가난하게 생을 마감하게 만드는 ‘현대판 소작농’으로 농민들을 몰아넣는 정책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산의 가치는 수요에 의해 결정된다. 현재 대한민국 농촌은 고령화로 인해 농사지을 사람이 급격히 줄고 있다. 농사를 지을 사람(수요자)은 사라지는데 공급(농지)만 남아도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경자유전’이라는 도그마에 갇혀 농민만이 농지를 사야 한다고 강제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구매자가 없으니 농지 가격은 폭락할 수밖에 없다. 농민들은 평생 피땀 흘려 일군 전 재산인 땅값이 헐값이 되는 과정을 무력하게 지켜봐야 한다. 도시인의 투자를 막는 것이 정의로운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농민을 농지에 묶어두는 가혹한 정책일 뿐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도시인의 농지 투자를 불로소득이라 비난하지만, 반대로 생각해 보자. 도시인이 땅을 사지 않으면 수요자가 없어 농민은 땅을 팔고 싶어도 팔지 못한다. 자식 교육을 위해, 혹은 노후를 위해 도시로 떠나고 싶어도 전 재산인 땅이 팔리지 않아 농촌에 발이 묶여 있어야 한다면, 이것이 바로 현대판 ‘거주 이전의 자유’ 박탈이 아니고 무엇인가.
“투기성이 있다 하더라도 거래가 활발해야 농민도 제값을 받고 재산권을 행사할 수 있다. 거래가 끊긴 농지는 농민에게 자산이 아니라 짐일 뿐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권장하는 주식 투자와 농지 투자가 본질적으로 다를 게 무엇인가? 농지도 매입 후 형질 변경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헐값이고, 주식도 회사가 망하면 휴지 조각에 불과하다. 두 자산 모두 엄연한 투자 위험과 투기적 요소가 공존한다.
대통령이 국민을 ‘가진 자(도시 투자자)’와 ‘못 가진 자(농민)’로 갈라치기하는 정치적 수법은 대단히 교묘하다. 도시인의 투자를 죄악시함으로써 농민의 지지를 얻으려 하지만, 그 실제 결과는 농민의 빈곤화다. 농사짓기 좋은 땅일수록 값이 싸고 거래조차 안 되는 지금의 모순은 정부의 과도한 규제가 만든 인재(人災)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근본적인 제도 개선 대신 ‘투기꾼 잡기’라는 포퓰리즘 뒤에 숨어 있다. 농민을 자본주의의 과실에서 소외시키고 오직 농사라는 굴레에 묶어두려는 시도는, 과거 봉건 시대 지주들이 소작농을 부리던 방식과 무엇이 다른가.
이제는 구시대적 사고인 ‘경자유전’에서 과감히 벗어나야 한다. 농지도 하나의 엄연한 재산권으로 인정하고 시장의 수요와 공급 원리에 맡겨야 한다. 그래야 시골 농민도 땅을 정당한 가격에 처분하고 도시로 나가 새로운 삶을 꿈꿀 수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얄팍한 정치적 이득을 위해 농촌의 현실을 왜곡하지 마라. 국민의 질투심을 자극해 표를 얻는 정치는 결코 지속될 수 없다. 진정으로 농민을 위한다면, 그들이 평생 일군 땅이 제값을 받고 거래될 수 있도록 규제의 빗장을 풀어야 한다. 농민을 가난의 늪에 가두는 ‘박제된 정의’는 이제 폐기되어야 마땅하다. 언제까지 농민은 도시인의 밥상을 위해 농지에 얽매여 살아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