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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칼럼
외국 여자가 ‘미스 춘향’이라니? 저런다고 춘향 선발대회가 글로벌 대회로 되지 않거니와 되어서도 안 되며 될 필요도 없다. 무학산(회원)  |  2026-05-04
<시대가 변해도 우리 마음속 춘향의 자리는 여전>
  
  어제(5.3) 조선일보에 이런 기사 제목이 있었다.《우크라이나 유학생 '미스 춘향' 됐다》
  
  외국 여자가 ‘미스 춘향’이라니? 남원 춘향 선발대회의 인기도 시들해졌는가 보다. 하기야 세상사는 시(始)와 종(終)이 있는 법이고, 전국 미인대회마다 죽을 쑤고 있으니 춘향 선발대회도 시대 트렌드를 피할 순 없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춘향’이란 ‘조선다움’을 외국 여자에게 줄 수 없다.
  
  '춘향’은 우리 어머니와 누나의 원형적 심상(原型的心象)임을 넘어 한국인 정신의 상징이랄 수 있다. 우리 고전 문학 중에서도 한국인의 정서를 잘 대변하는 작품이 춘향전인 것이다. 단순히 남녀 간의 사랑을 넘어, 죽음을 각오하고 신의와 절개를 지키는 한국적인 '정절'의 가치가 들어 있다. 우리네는 ‘춘향전’이란 이야기, 영화, 소설을 통해 자연스럽게 어려서부터 정절의 가치를 배우고 지니게 되었다.
  
  그리고 외관상 유교적 덕목, '열(烈)'을 강조하지만, 이면적으로는 신분적 제약을 벗어나고픈 상민(常民)의 욕구를 담고 있다. 그리고 권징(勸懲), 해학과 풍자 등이 버무려진 한국적 아름다움이기에 보는 이마다 울다가 마침내 웃는다. 그래서 한국인 치고 '금준미주천인혈(金樽美酒 千人血)'의 7언 절구를 모르는 사람이 없는 것이다.
  
  전국에 산재한 미인 대회, 곧 영양 고추 아가씨 선발대회. 풍기 인삼 아가씨 선발대회. 영천 포도 아가씨 선발대회. 미스 변산 선발대회. 제주 감귤 아가씨 선발대회. 등등 이런 대회라면 외국 여자도 가능할지 모르지만 ‘춘향’이는 안 된다. 우리 국민의 보편적 정서상, 춘향이 가진 아우라를 외국인에게서 찾으려 하는 것은 무리다. 춘향은 절조(節操 절개와 지조)의 표상이고, 우리에게 카타르시스와 프라이드를 선물했다. 춘향이는 외국 여자일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국 여자를 춘향이로 정했으니 벌레 씹은 기분이다. 우리 춘향이에겐 기껏 열녀문을 지어주었으면서 외국 여자에겐 생열녀문(生烈女門)을 세워 준 셈이라 하겠다. 정려를 받은 것은 똑같지만 생열녀문을 받은 사람에겐 국가의 특별한 대접이 있었고 그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정려 旌閭;충신,효자,열녀 등을 표창하기 위해 정문(旌門)을 세운 일)
  
  저러는 이유를 기사는 이렇게 썼다.
  
  “대회의 세계화를 위해 2024년부터 외국인에게도 문호를 개방하며 이름을 글로벌 춘향선발대회로 바꿨다.”
  
  다른 곳도 아닌 남원의 춘향 선발대회이니만큼, 대회를 계속 이어 가고 싶은 마음에서 저럴 것인데, 그 마음이야 갸륵하고 곱다. 애국심과도 통할 것이다. 하지만 저런다고 춘향 선발대회가 글로벌 대회로 되지 않거니와 되어서도 안 되며 될 필요도 없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라는 문구를 쓰던 나라가 이젠 춘향이까지 외국 여자라니 왜 이렇게 되고 말았나. 이러면 우리가 세계화하는 것이 아니라 자칫 우리가 세계화의 풍도(風濤)에 휩쓸려 우리를 잃을까 걱정된다. 정체성 없는 글로벌화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작년에는 에스토니아 유학생이 ‘춘향 현’에 이름을 올렸다. 올해는 우크라이나 유학생 리나씨가 ‘춘향 미’를 차지했다.”는 기사가 있다. 이를 많은 국민이 낯설어 하고 거부감이 든다고 말한다. 이러는데 ‘글로벌 대회’라 할 수 있나. 외국 여자가 ‘춘향’일 수 없음은 물론 외국 여자가 대회에 참가해서도 안 되고, 외국 여자에게 상을 주지 않아야 마땅하다. 시대가 변했다지만, 우리 마음속 춘향의 자리는 여전하다.
  
삼성전자 뉴스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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