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통령 직속 규제합리화 위원회 부위원장 이병태 전 kaist 교수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 정부가 나서는 불매운동 옳지 않다]
스타벅스의 적절치 못한 텀블러 광고에 일부 장관과 부처, 지자체에서 불매운동을 촉구하는 일이 벌어지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소비자들이 자발적으로 특정 기업의 제품 불매를 선택하는 ‘소비자 주권 운동’과 달리, 정부나 공공기관, 혹은 정치권이 주도하거나 배후에서 부추기는 불매운동은 많은 부작용을 낳는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부는 법치와 공정한 경쟁 환경을 조성해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에, 국가 권력이 개입한 불매운동은 법적·경제적 관점에서 매우 위험한 조치일 수밖에 없다.
<정부 주도 불매운동의 위험성>
(1) 시장 경제의 예측 가능성 파괴 (법치주의 훼손)
정부와 공공기관은 법률에 근거해 집행되어야 한다. 명백한 법 위반이 없음에도 특정 기업을 낙인찍고 공공 구매나 지원에서 배제하는 것은 법 위의 감정적 처벌이 되어 기업들의 예측 가능성을 완전히 무너뜨린다.
현재 논란이 되는 사안이 정치적, 도덕적 비난의 대상일지언정 그것이 불법이라는 근거나 판결은 없다. 그런데 정부가 도덕적 기준이 되려고 하면 그 자의성으로 인해 법치는 무너진다.
(2) 무고한 노동자와 소상공인의 연쇄 피해 (자기 파괴적 속성)
모든 불매운동이 그러하듯 글로벌 기업이나 대기업을 타깃으로 삼더라도, 실제 타격을 입는 가맹점주, 협력업체, 납품 농가, 물류 노동자 등은 대부분 평범한 소상공인과 직원들이다. 기업을 벌하려다 죄없는 자들을 처벌하고, 경제의 약한 고리를 먼저 끊어버리는 결과를 초래한다. 스타벅스의 매장에서 일하는 직원들이나 납품업체가 사회적 강자도 아니고 그들이 간접적 피해를 당해야 할 이유는 많지 않다.
(3) 투자 위축 및 대외 신인도 추락
기업이 정치적·이념적 이유로 정부 차원의 불매 타깃이 되면, 글로벌 투자자들은 해당 국가를 '정치적 리스크가 너무 높은 시장'으로 판단하게 된다. 이는 전형적인 코리아 디스카운트이자 장기적인 외국인 직접투자(FDI) 감소로 이어진다.
(4)국제 통상 규범 위반 및 무역 보복 유발
정부가 특정 외산 브랜드나 기업을 겨냥해 불매를 유도할 경우, 세계무역기구(WTO)의 내국민대우 원칙(외국 제품을 국산 제품보다 불리하게 대우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이나 자유무역협정(FTA) 위반으로 제소당할 수 있으며, 상대국의 보복 조치를 유발해 무역 전쟁으로 번질 수 있다. 쿠팡이 미국 기업이라고 미 정부가 편들고 나서며 외교 갈등이 되고 있는데 스타벅스가 여기에 참여할 수도 있다.
(5) 정치적 분열의 심화
권력이 불매운동에 나설 경우 사안은 정권의 지지 여부에 따라 진영의 정치로 전락한다. 지금 일부 정치권과 시민들이 반발하는 조롱을 하는 이유가 반대 진영 권력이 이 사안을 정치적으로 악용하고 있다는 반발이 불러오는 현상이다.
<주요 해외 및 역사적 사례>
정치 권력이나 국가가 개입한 불매운동은 주로 권위주의 국가에서나 외교적 압박 카드로 사용한다. 정상적인 자유시장 경제의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일이고 간혹 정치적 양극화가 극에 달했을 때 큰 부작용을 낳는다.
① 중국의 H&M, 나이키 불매운동 (2021년)
스웨덴 패션 브랜드 H&M과 미국의 나이키 등이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강제 노동과 인권 문제를 우려하며 "신장산 면화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자, 중국 공산당 청년단(공청단)과 관영 매체들이 일제히 비난을 쏟아내며 불매를 선동했다.
지도 앱에서 H&M 매장이 삭제되고 주요 쇼핑몰에서 퇴출당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중국 내 H&M 매장 직원, 쇼핑몰 소유주 등 수많은 중국인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거나 막대한 영업 손실을 보았다. 또한, 서방 기업들에게 '중국 시장은 정치적 리스크가 통제 불가능한 곳'이라는 인식을 심어주어 공급망 다변화(탈중앙화)를 가속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② 중국의 한국 사드(THAAD) 보복 및 롯데 불매 (2016~2017년)
한국이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를 결정하고 롯데그룹이 부지를 제공하자, 중국 정부는 관영 매체를 통해 롯데 불매를 선동하는 동시에 세무조사, 소방점검 등 행정 규제를 총동원해 중국 내 롯데마트 매장 대부분을 영업정지 시켰다.
롯데는 결국 거대한 손실을 안고 중국 유통 시장에서 전면 철수했다. 그러나 이 사건은 한국에서 반중, 혐중 정서를 높이고 한국 기업들이 중국 의존도를 낮추고 동남아·미국 등으로 시장을 다변화하게 만들었으며, 글로벌 시장에서 중국의 평판을 크게 떨어뜨렸다.
③ 미국 미시시피주 백인 상점 불매운동 사건 (1966~1982년)
민권운동 단체(NAACP)가 흑인 권익 신장을 위해 미시시피주 클레이본 카운티의 백인 소유 상점들을 대상으로 불매운동을 벌이자, 미시시피주 법원은 이 불매운동이 '독점금지법 위반'이자 백인 상인들의 영업을 부당하게 방해했다며 불매운동 주동자들에게 막대한 손해배상 판결을 내렸다. 주 정부 차원에서 백인 상인들을 두둔하고 민권운동을 압박하기 위해 사법 권력을 동원한 것이다.
이 사건은 최고법원인 미국 연방대법원까지 올라갔고, 1982년 대법원은 "정치적 목적의 평화적인 불매운동은 미국 수정헌법 제1조(표현의 자유)에 의해 보호받는다"며 주 정부와 지방 법원의 판결을 뒤집었다. 이 판례는 국가 권력이 사법 제도를 이용해 특정 집단의 경제적 활동이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해서는 안 된다는 엄격한 기준을 세운 계기가 되었다.
소비자의 불매운동은 시장의 자정 작용 중 하나이지만, 정부나 공공기관이 공적 권한과 예산을 무기로 삼아 특정 사기업을 공격대상으로 삼는 불매운동에 동참하거나 주도하는 것은 법치의 경계를 넘는 일이다. 이는 결국 무고한 경제적 약자들에게 피해로 되돌아오고, 국가적 평판을 갉아먹는 부메랑이 되기 십상이다.
소비자는 불매운동을 할 수 있지만 권력은 개입하면 안된다. 우리가 중국과 같은 권위주의 권력의 나라가 되어서야 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