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문의 제목이 더럽다. 존속살인 피고인의 변명을 제목 삼았기 때문이다. 가해자의 진술을 제목으로 쓴 것은 그 진술에 힘을 실어줌이 아니라 하기 어렵다. 오늘 조선일보에 이런 기사 제목이 있다
《80대 할아버지 살해한 손녀 "폭언 막으려던 것뿐이었다"》
저 제목을 클릭하고 들어가면 제목이 또 이렇게 되어 있다.
《80대 할아버지 살해한 손녀, 첫 공판서 "의도 없었다"》
저 사건은 악역죄(惡逆罪)와 오역죄(五逆罪) 모두에 해당되어 죄를 벗을 길이 없다. 악역죄는 실정법의 죄목이고 오역죄는 불교 곧 신앙상의 죄목이다. 오역죄는 주군, 할배, 할매, 아비, 어미를 죽인 죄이며 악역죄에도 해당된다. 이래도 저래도 능지처참을 당해야 할 죄인 것이다. 현대 문명사회도 존속살인은 가중 처벌한다.
기사의 두 제목 모두가 악역죄와 오역죄를 저지른 자의 말을 제목으로 삼았다. 피해자는 죽어서 자기 변호를 못하는 터에, 가해자의 변명을 덩그러니 올려놓다니 악덕하다 하겠다.
신문이 효자 자손(孝子 慈孫)을 칭찬하는 것 그것이 바로 풍교(風敎)이다. 가정교육, 학교교육이 미처 다하지 못하는 것까지 할 수 있어 마침내 미풍양속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래야 할 사회적, 직업적 의무가 있는 신문이 도리어 저러다니 살인이 넘쳐나고 오륜이 망가진 사정이 이해될 것 같다.
조선시대에 쓰였던 심리록(審理錄)은 오늘날의 판례집이다. 하나를 소개한다. 살인은커녕 멀쩡한 사람을 반란군과 한 패였다고 다만 무고한 자를 즉각 죽여버렸다. 단순한 무고가 아니라 죽을 것이 뻔한 반란 가담으로 무고했기 때문이다.
<대구(大丘) 윤득성(尹得成)의 옥사>
윤득성이 신창(申淌) 등에게 감정을 품어 신창의 아들과 손자인 신석(申錫)과 신달(申達) 및 사인(私人)인 정박모(鄭博謨) 등을 무신년(1728, 영조4) 이인좌(李麟佐)의 난의 여당(餘黨)이라고 무고하고, 성흥주(成興柱)는 송덕상(宋德相)의 당여(黨與)라고 무고하였다.
계묘년 1월에 옥사가 이루어졌다.
[본도의 계사] 악역죄(惡逆罪)로 사람을 무고한 것으로 결안(結案)하겠습니다.
[형조의 계사] 상복(詳覆)을 시행하겠습니다.
[판부] 아뢴 대로 윤허한다. -1월-
[형조의 계사] 부대시참(不待時斬)하겠습니다.
[판부] 아뢴 대로 윤허한다. -같은 달-
조선시대에서도 사형수일망정 봄과 여름에는 사형을 집행하지 않았다. 추분 이후에 처형하는 것이 원칙이었으나, 십악대죄를 저지른 죄인은 바로 죽였다. 이를 부대시참(不待時斬)이라 했다. 지금은 자비롭게도 사형이 없다. 이미 범죄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있음이다. 여기에 더해 살인 피고인의 변명을 우뚝하게 기사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