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조선일보에 이런 기사 제목이 있다.《검소하나 누추하지 않은 꽃, 싸리 3형제를 아시나요》
검소하나 누추하지 않은 꽃이라니? 꽃은 검소할 줄도 모르고 누추할 생각도 없다. 인간이나 그런 것을 알 뿐이다. 인간일지라도 꽃을 검소해 보이게 만들 수가 없고 누추하지 않도록 만들 수도 없다. 따라서 저 문장이 비록 아름다울지라도 꽃에 갖다 붙이면 매끄럽지 못하다. 이를 모르지 않을 기자다. 그래서 소제목에서는〈'검이불루 화이불치'에 딱 맞는 꽃〉이라고 써서, 제목의 오류를 덜어낸 듯하다.
김민철 기자의 “김민철의 꽃이야기”를 나는 되도록 다 읽어왔다. 요사이는 ‘조선멤버십’ 회원만 읽을 수 있으니 나는 아쉽지만 맛배기만 보게 되었다. 그의 좋은 문장을 읽으면 머리가 맑아졌고, 모르던 꽃 이야기와 함께 얻어 듣는 지식이 많았다. 그렇지만 돈을 내고 신문을 읽는다는 게 기분에 안 맞아서 조선멤버십 회원이 될 생각은 없다. 어떻게 보면, 기자가 문명(文名)을 떨칠 기회를 ‘조선멤버십’ 제도가 가로 막은 셈일 수 있다. 귀 명창이 있어야 소리 명창이 있듯이, 독자가 읽지 않는 글은 제 혼자서만 명문이다.
김민철 같이 글 잘하는 기자가 “검소하나 누추하지 않다.”는 남의 문장을 빌려와서 자기 글의 제목으로 삼은 것에 놀랐다.
저 문장은 김부식이 삼국사기에 써서 더욱 유명해졌고 마침내 오늘날에도 저렇게 널리 쓰이고 있다. 문제는 많은 이들이 저 문장의 원주인(原主人)이 김부식인 것으로 오인한다는 점이다. 이러면 김치가 중국 음식이라 우기는 중국인과 다를 바 없게 된다.
사실은 김부식의 문장이 아니라, 중국 후한(後漢) 시대의 유명한 문인, 장형(張衡)의 문학 작품인 동경부(東京賦)에 나오는 문장인데 이것이다.
“부유함은 사치에 이르지 않았고, 검소함은 누추함에 이르지 않았다(奢末及侈 儉而不陋 사미급치 검이불루)”
김부식이 삼국사기를 집필하면서 저 문장을 빌려와 백제 온조왕의 궁궐을 묘사할 때 약간 변용하여 이렇게 썼다.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았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았다 (儉而不陋 華而不侈 검이불루 화이불치)”
다시 250년 뒤에 정도전이 저 문장을 빌려 쓴다. ‘조선경국전(朝鮮經國典)’에서 경복궁을 비롯한 조선의 궁궐 제도를 논하며, 김부식의 문장을 더욱 발전시켜 이렇게 쓴 것이다.
“궁원(宮苑)의 제도는 사치하면 반드시 백성을 수고롭게 하고 재정을 손상시키며, 누추하면 조정의 존엄을 보여줄 수 없게 된다. 검소하나 누추함에 이르지 않고, 아름다우나 사치함에 이르지 않는 것, 이것이 美다. (儉而不至於陋 麗而不至於侈)"
《文選》은 고대 중국의 뛰어난 문장을 모아놓은 책이다. 여기에 장형의 동경부가 실려 있으므로 누구도 저 문장이 장형의 창작물이 아니라 우기지 못한다.
나도 고서적을 읽으면서 때때로 좋은 문장을 훔쳐 와서 쓰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기자는 그래서는 안 된다. 길바닥의 노부(老夫)와 기자는 달라야 한다. 아름다움은 독창에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