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정치보위부는 어떻게 열에 여덟을 걸면 걸리게 할까. 한평생 독립운동한 사람을 한순간 친일반역자로 처형할 수 있을까. 북한과 공산국들에서는 이것이 가능하다. 그 대표적 사례를 든다.
한반도 공산당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박헌영은 미제 간첩으로 사형했다. 8·15 해방 후 북한을 만든 소련파와 연안파(중국), 심지어 김일성과 함께 항일빨찌산이었던 이들도 반혁명분자로 숙청했다. 이는 공산혁명의 모태인 프랑스혁명 때부터 그랬다. 반혁명분자를 처형하는 단두대를 세운 자가 바로 그 단두대에서 반혁명분자로 처형되었다. 공산혁명을 성공시키고 반란으로부터 지켜낸 트로츠키 붉은군대 총사령과 투압체스크 원수가 반혁명분자로 비참하게 처형된다. 중국공산당에서는 유소기 국가주석과 백전노장 팽덕회 원수가 제국주의 앞잡이, 반혁명분자로 새파란 홍위병들에게 조리돌림당하여 몸과 영혼이 말라 죽는다.
이런 판국에 북한을 어머니조국이라고 찾아왔고 많은 기부를 한 재일교포들이라고 빗겨갈 수가 없다. 최근 탈북여성으로서 일본 아시아프레스와 한국 연합뉴스, 조갑제닷컴에 부고기사가 난 탈북1호 법무사 임윤미 어머니 박영숙 여사 집안도 마찬가지이다.
박영숙 여사의 집안은 대대로 온유하고 학문적인 집안이다. 박 여사의 모친은 이조시대 서당에 다닌 학식층이다. 한일합병이 되자 선진일본에 일찍이 남편 따라가서 살 때 일본인들이 틀린 한문을 고쳐 줄 정도로 수준이 더 높았다. 조선인이라면 하대하던 환경에서도 당당하게 조선옷 입은 사진을 집안에 붙여 놓아도 밀릴 것 없는 학식과 인품을 지닌 것이다. 모친이 낳은 형제들은 하나같이 수재들이다. 박 여사의 맏오빠는 미쯔비시 전무였고 둘째 오빠는 그 당시 들어가기 힘든 일본육군사관학교생이다.
이 둘째 오빠는 당시 선진사상으로 열풍을 일으키던 공산주의에 빠진다. 일본공산당 기관지 아카하다 히로시마 지점장이었다. 당연히 공산 조국 북한을 동경하였다. 그 열정과 신봉으로 조총련의 북송사업에 앞장섰고 부모님은 물론 열 형제중에 여덟 형제를 북송선을 타게 만든다. 남은 두 동생은 북한에 많은 기부를 한다. 북한의 대표적 공장인 락원기계공장의 컴퓨터 설비는 이들이 댔다고 한다. 북송된 가족을 잘 돌봐달라는 의미가 깊게 담긴 것이다.
하지만 온 집안을 북송선 타게 한 일본육군사관학교 출신 둘째오빠는 간첩혐의로 정치보위부에 끌려간 후 아무 흔적도 없다. 이 부당함을 말했다고 간경변으로 입원 직전의 셋째 오빠마저 요덕수용소에 끌려가 사망했다. 이 시기는 김일성 우상화에 이어 <당중앙>이란 가명으로 아들 김정일 세습을 극대화되던 1974년이다. 우상화와 그 세습도가 높아질 수록 정치범이 급격히 늘어났다. 이를 수용하기 위한 스탈린과 히틀러식 수용소들이 사방에 신설될 때이다.
<나는 일본공산당에 있다가 온 가족을 북송시켰는데 웬 간첩?!>
<야! 너 같이 화려하게 위장하고 침투하는 것이 진짜 간첩이야!>
이런 식이 정치보위부의 견해이다. 우리 <작은아버지>는 대남공작부인 중앙당 3호청사 간부로 일본 출장이 잦았다. 조총련이 해외공작기지인 것이다. 출장 목적에는 재일교포 출신 간첩들을 알아보는 것도 임무 중에 하나였다. 하지만 요란한 간첩들이라 했지만 거의가 아니였다. 그 결과를 보고해도 부서가 다른 정치보위부는 막무가내, 색출 실적으로 존재 가치와 출세가 달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일본 명문사립학교를 나오고 음악과 독서를 즐기던 박영숙 여사, 북한에 가니 문화생활 대신 고된 노동만 있다. 그럼에도 지친 퇴근길에 클래식 음악이 나오면 한참 서서 듣다 갈 만큼 문화인이다. 열 형제가 한집안에서 자랐어도 큰 소리 한번 나지 않아 가장 조용한 집안이라 한마을 일본인들도 칭찬한다. 부모의 말 없는 풍모의 영향으로 법없이 살만큼 착한 박영숙 여사이다. 하지만 그의 가정도 불행은 비켜가지 않는다. 아들 둘에 딸 하나를 낳고 그런대로 행복하게 사는가 했다. 하지만 1984년 맏아들이 정치보위부에 끌려가고 아무런 소식도 없다. 남은 아들 둘째마저 1993년 아무 죄도 없이 안전부(경찰)에 끌려가서 감옥에서 죽는다. 면회간 어머니(박영숙)에게 둘째아들은 <엄마! 나 아무짓도 하지 않았어!>. 너무나 억울하여 몸과 마음이 말라 죽은 것이다.
두 아들을 잃은 것도 모자라 자체로 지은 집과 재산들을 몰수당하고 지방으로 추방된다. 추방지의 풍찬노숙 첫날 밤, 두 어깨를 들썩이며 울분을 못 참는 남편, 부인과 딸이 들을가 소리나지 않게 운다. 한편 이런 울분도 함부로 표현하면 큰일난다. 남이 보면 당국에 반항으로 비쳐져 더 가혹한 처벌이 차례지기 때문이다. 이 모든 고통은 신경에 민감한 위장을 상하게 하여 암으로 나타난다. 암 말기의 극심한 진통 속에서도 두 아들이 돌아와 함께 살 것이란 소망을 버리지 않고 집을 지을 설계를 하다 54세에 사망한다. 유언은 <여보! 내가 죽으면 재혼하지 마!>. 재혼하면 다른 남자가 자기만큼 사랑하지 않아 고생할 걸 염려해서이다. 그 만큼 아내와 가족을 끔찍이도 사랑했던 가장이었다.
안전부(경찰)와 정치보위부는 색출 실적을 올리면 출세한다. 한편 1990년 경제적 고난기에 들어서자 일본 친척으로부터 부를 받는 재일교포들을 노린다. 안전원이나 정치보위원 본인에 해당한 식량만 배급했지 그 가족은 주지 않은 것이다. 이런 궁핍한 판에 내 가족 살리기 위해 인정사정 없는 야수성이 공권력을 통해 발휘된다. 이미 전부터 하향 평준사회로서 다 못사는 판에 누가 잘 살면 질투하였다. 특히 상대적 경제여유가 있는 재일교포들은 질투의 대상이다. 적국인 일본에서 왔기에 항일선전이 가장 높은 나라인만큼 증오의 감정도 높다. 이런 질투와 증오의 감정은 경제난 속에 더욱 야수화된다.
아무런 죄도 없는 둘째아들을 잡아다 뇌물을 한도 끝도 없이 받아먹는다. 이에 견디다 못해 반발하면 너 그래! 누가 이기나 보자! 한편 놓아주면 그 비리가 드러날까 감옥에서 죽게 만든다. 거기다 다른 집보다 잘 지은 집을 몰수하기 위해 산골로 추방시킨다. 이런 복합적인 압박과 처벌에 정신병이 나고나 자살하지 않은 것이 기적이다. 두 아들 모두와 남편도 죽고 집도 잃고 산간오지에 추방된 처지의 박영숙 여사는 살아있는 것보다 죽는 것이 더 편했다.
그럼에도 자살하지 못한 것은 단 하나 남은 딸이 어떻게 살가 염려되어서이다. 항상 혼이 나간 사람처럼 멍해 있으며 겨우 연명했다고 한다. 남은 딸도 오랜 구애를 하며 청혼했던 남자가 갑자기 돌아서 파혼되고 다니던 박사원에서도 쫒겨난다. 가정에 연이어 닥친 불행에 잠들기도 힘들고 잠들었다면 가혹한 세상을 다시 보기 끔찍해 눈 뜨기조차 싫었다 한다. 정신병이 날듯 미칠 지경으로 눈주위가 빠개지도록 아플 정도이다.
실제로 정신병이 난 사례도 있다. 북송선을 타고 먼저간 어머님를 보고 싶어 18살 나이로 뒤따라간 재일교포 신은혜의 아버지이다. 백두산 오지에 배치되어 성실히 일한 것밖에 없는 아버지이다. 하지만 간첩혐의를 받고 1976년 납치되어 정치보위부에 끌려간다. 백두산 오지에서 뭘 간첩질 할 것이 있단 말인가. 실적을 올리기 위한 정치보위부의 희생양이다. 가족에게 알리지도 못하고 끌려간 10년 후인 1985년에 석방된다. 일본에 있는 형님이 북한에 기부를 많이 한 덕이다. 죽지 못해 있는 수용소에서 이미 몸은 망가져 있다. 석방되어 1년도 안되어 사망한다. 죽기 전 김부자 초상화를 보며 <저 놈들은 악마다. 저놈들이 먼저 죽기 전에 내가 죽는 것이 원통하다!>. 아버지가 죽은 후에도 하나밖에 없는 오빠가 정신병에 시달린다. 언제 아버지처럼 끌려가 죽을지 정신적 공포의 후과로 도끼를 머리맡에 두고 벌벌 떤다. 이런 피해를 당하는 재일교포 가정이 이들만이 아니다.
온 가족이 풍비박산난 박영숙 여사는 북한의 도청을 피해 중국에 몰래 나와 일본형제와 통화를 하게 된다. 경제적 구원의 요청이다. 하지만 통화 후 북한에 다시 돌아가자니 정말 끔찍했다. 논리를 떠나 본능적으로 몸과 마음이 저 지옥으로 다시 들어가기를 거부한다. 사실 박영숙 여사는 북송선 타기 전에 북한방문자 오귀성의 수기를 읽었다고 한다. <낙원의 꿈은 깨어지고>란 책이다. 오귀성 저자는 1960년 북한 건국기념일 방문했던 조총련 간부로서 보고 느낀 바를 책으로 냈다. 이 책을 보고 자유가 없고 가난한 곳에 가고 싶지 않아 가출한다. 하지만 북한으로 간 연로한 부모님을 생전 지켜드려야 한다는 마음이 모든 것을 초월하여 북송선을 탄 것이다. 이런 순수함에 북한의 답은 바로 위와 같은 비극의 현실들이었다.
수천수만년 유구한 인간사를 담은 성경은 말한다. 인간은 죄인이다! 서로 사랑하라고 해도 증오한다. 이런 판국에 서로 증오하라고 부추기는 악령이 공산주의이다. 그 제도가 북한이다. 헌법은 있지만 이를 무색, 법을 초월한 <당의 10대원칙>인 수령신격화만 있다. 그 신격화를 지키기 위한 무소불위의 정보기관이 정치보위부이다.
박영숙 여사의 남은 유일자식이자 딸 임윤미는 탈북자로서 1호 법무사가 됐다. 박사나 변호사보다 힘들다는 법무사 고시를 네 번의 실패끝에 통과했다. 그 힘든 법무사 고시를 왜 기오코 했는냐고 하니 - 아무런 법적 보호도 없이 죽어간 외삼춘들과 두 오빠, 아버지의 원한을 풀어드리고 싶어서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