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산, 진해, 창원 통합 해체가 답이다>
오늘 조선일보에 이런 기사 제목이 있다.《창원 도심 수천만 원대 도박판 가정주부, 농부도 붙잡혔다》
‘창원’이 신문에 나서 좋은 기사라면 기쁘겠지만 불행하게도 좋은 기사는 있었던 기억이 없다. 일어탁수( 一魚濁水)라 했다. ‘창원’ 하나 때문에 마산과 진해도 싸잡아 노름꾼 동네가 되고 말았다. 통합한 탓이다. 통합을 풀어야 마땅하다.
창원은 원래 노름 구더기였고 노름꾼들이 바글바글했다. 특히 진동이 심했다. 진동은 원래 창원군 진동면이었는데 1995년 1월 1일에 마산시로 편입된 곳이다.
저 동네엔 타짜, 구라꾼, 창고장, 학생, 수술꾼, 도박 개장이 떼를 지어 우글거렸다. 오죽했으면 나도 한번 노름판을 털려 갔겠나. 진주에 살던 도장 선배 한 명이 노름판을 털어서 먹고 살았다. 그는 서부 경남 지역에서만 활동했고 이쪽 지역엔 털지 않았다. 그래선지 나에게 걸핏하면 노름판 터는 요령을 말해 주었다. 어느 놈은 경찰인 척 하며 판돈을 쓸어 담았다가 어설프게 한 탓에 도리어 자기가 구속된 자도 있었다. (타짜=도박 기술자. 구라꾼=사기도박판을 벌인 놈. 창고장=도박판 개설꾼. 학생=돈을 잃는 놈. 수술꾼=짜고 쳐서 돈을 잃게 하는 놈. 도박개장=도박판을 터는 폭력배)
단속이 심해지자 창원 노름꾼들이 마산과 함안의 경계 지점 부근의 야산에 허름한 농막 같은 것을 지어 놓고 판을 벌인다는 말이 내 귀에까지 들어왔다. 가서 보니 농사로 가장한 밭을 일구고 농작물을 드문드문 심어 두기도 했다. 멀리 어깨가 쩍 벌어진 문방도 세워 두었다. 그리고 가정주부가 우글거렸다. 도박판엔 매양 가정주부가 남자보다 많다. 그들이 돈을 잃으면 눈이 뒤집어져 몸 관리도 하지 않는다. (문방= 망보는 놈)
내가 국민학교에 입학하기 전엔 마산의 가장 변두리 곧 창원과 마산의 경계 지점에 살았다. 지금의 석전 삼거리인데 지금은 마산의 한복판이 된 곳이다. 그 동네가 마산과 창원을 이어주는 길목이다. 창원에서 농산물을 마산장에 내다 팔거나 가축을 팔거나 할 땐 반드시 이 길목을 지나게 돼 있다. 창원 야바구꾼들이 거기서 판을 벌였다. 간장 종지 같은 걸 세 개를 이리저리 돌리다가 주사위가 들어있는 접시에 돈을 걸면 이기는 도박이었다.
어리숙한 농부들이 가만히 보니 자기도 맞출 것 같고 또 돈을 따는 사람도 많으니 자기도 노름에 참가한다. 마침내 물건을 내다 팔고 받은 돈을 다 잃는다. 그때서야 울고불고하는 여자들이 매일같이 있었다. 때로는 칼을 들고 와서 싸우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그 야바구꾼들이 그 동네 사람은 일절 노름에 참가시켜주지 않았다. 오로지 병풍으로만 이용해 먹었다. 그리고 노름판을 거두어 돌아갈 땐 동네 아재들에게 몇푼 쥐어주곤 했다.
어릴 때, 돈을 잃고서 땅에 엎어져 몸부림치던 비참한 광경을 매일같이 보았던 덕분인지 나는 이날 이때까지 화투 한 번 안 쳤고 칠 줄도 모른다. 훌라 같은 것은 물론이고 내기 바둑도 둔 적이 없다. 가난했지만 그런 환경 속에서 살았던 점에 감사한다. 환경은 인간의 스승이다.
"놀던 계집이 결딴나도 엉덩이 짓은 남는다."더니 창원이 노름 구덩이였다가 중공업 동네가 됐지만 노름꾼 습벽은 버리지 못했다. 노름꾼이 도끼로 제 손가락을 잘라도 발가락에 화투장을 끼고 노름한다고 했다. 노름꾼 마누라는 솥을 씻어 놓고 돈 따오기를 기다린다는 말도 있다. 그 노름꾼 창원이 어디 가겠나. 마산 진해 창원의 통합 해체가 마산과 진해의 양속(良俗)을 지키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