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갑제닷컴

  1. 칼럼
대법관 제청은 사법권 독립의 핵심적 장치 우리 헌법은 대법원장에게 임명권자인 대통령과 사전 조율이나 대면 협의를 거쳐 제청할 의무를 부과하지 않았습니다. 최재형(前 국회의원) 페이스북  |  2026-08-21
<대법원장의 제청권과 대통령의 임명권의 충돌>
  
  대법원장이 대통령과의 면담 없이 서면으로 대법관 2명을 제청하자, 여권에서는 대통령과 사전 조율하는 관례를 깨고 서면 제청한 것은 대통령과 싸우겠다는 것이라며 사퇴 요구, 탄핵 추진 주장이 나오고, 김민석 대표는 ‘조희대씨는 물러나는 것이 맞다’, ‘퇴학을 구걸하는 불량 학생’, ‘잘라달라는 것이냐’는 등 막말을 쏟아냈습니다. 거대 여당 대표의 입에서 쏟아낸 단어의 수준이 참담합니다.
  
  법사위에서 더불어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대법원장이 대법관을 제청하는 것은 1972년 유신헌법의 잔재라는 억지까지 부렸습니다. 대법원장의 이번 대법관 제청에 대한 여권의 반응은 거의 이성을 잃은 상태로 보입니다.
  
  참고로 1972년 유신헌법 이전의 헌법은 “대법원판사인 법관은 대법원장이 법관추천회의의 동의를 얻어 제청하고 대통령이 임명한다. 이 경우에 제청이 있으면 대통령은 이를 임명하여야 한다.”라고 되어 있었는데 1972년 개정된 헌법에서는 “대법원장이 아닌 법관은 대법원장의 제청에 의하여 대통령이 임명한다.”라고 개정하였습니다.
  
  유신헌법은 김용민 의원의 주장처럼 대통령이 대법원장에게 대법관제청권을 주는 방법이 아니라 오히려 대통령의 임명권을 기속했던 대법원장의 대법관 제청권을 약화시킴으로써 대법관 임명에 관한 대통령의 영향력을 강화시켰던 것입니다.
  
  현행 헌법 제104조 제2항은 “대법관은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우리 헌법은 제헌헌법 이래 1980년 개정 헌법까지 대법관 임명에 관하여 사법부(제청)와 행정부(임명)만 관여하도록 규정하였는데 1987년 개정 현행 헌법에서 국회의 동의를 받아 임명하도록 함으로써 대법원 구성에 사법부, 입법부, 행정부가 서로 견제와 균형을 이루도록 하였습니다.
  
  우리 헌법상 대통령의 공직 임명에 제청 절차를 거치도록 한 것은 대법관 임명에 관한 대법원장의 제청, 감사위원 임명에 관한 감사원장의 제청, 국무위원 및 행정 각 부의 장 임명에 관한 국무총리의 제청이 있으나 각 제청의 헌법상 의미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이 부분에 대하여는 제가 7월31일 페이스북에 자세히 설명하였으며 아래에 링크를 붙였습니다.)
  
  1963년 개정 헌법에는 대법원장이 법관추천회의의 동의를 얻어 제청하면 대통령은 이를 임명하여야 한다고 규정하여 대통령의 임명권이 대법원장의 제청권에 기속되도록 규정하였고, 1960년 개정 헌법은 법관의 자격이 있는 자로써 조직되는 선거인단이 대법관을 선거하면 대통령은 이를 확인할 뿐이었습니다. 이러한 대법관 임명에 관한 헌법조항의 연혁에 비추어 보더라도, 대법원장의 대법관 제청권은 사법부 독립을 보장하기 위하여 우리 헌법이 대법원장에게 부여한 고유한 권한이고 헌법적 책무입니다.
  
  우리 헌법은 대법관 임명과 관련하여 대법원장의 제청권과 국회의 동의권, 대통령의 임명권의 우열에 대하여 규정한 바 없습니다. 오직 시간적으로 대법원장의 제청, 대통령의 국회에 대한 임명동의 요청, 국회의 동의, 대통령의 임명의 순서가 있을 뿐입니다. 임명권자와 제청권자가 사전에 소통하고 협의할 수도 있겠으나 헌법이나 법령상 요구되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대법원 구성을 위한 대법관 제청은 사법권 독립의 핵심적 장치이므로 임명권자와의 사전 조율은 오히려 임명권자의 제청권자에 대한 압력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점을 경계해야 합니다.
  
  사전 조율과 대면 협의 후 제청이 관행이라는 민주당의 주장도 근거가 명확한 것은 아닙니다. 1986년부터 2017년까지 법원에 몸담았던 제 기억에, 대법관 제청과 관련하여 대법원장이 임명권자인 대통령과의 사전 조율이나 대면 협의 후 제청한 것은 노무현 정부 시절이 처음이었고 언론 기사에도 그 이전에는 사전 조율한 내용이 확인되지 않습니다.
  
  1963년 이후 1972년 헌법개정 전까지는 헌법 규정상 오히려 대통령의 임명권이 대법원장의 제청권에 기속되었고, 그 이후에도 사전 조율이나 대면 협의를 한 것은 노무현 정부 이후 불과 20여 년 된 일입니다. 그러니 여당에서 주장하는 관행이나 관습이라는 것도 우리 헌법 78년 역사상 불과 20여 년 전부터 있었던 것이고, 헌법의 변천사나 삼권분립과 사법권 독립이라는 헌법의 원칙상 바람직한 것도 아닙니다.
  
  항간에는 대법원장이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에서 추천한 후보자 4인중 1인을 제청하려 했으나 대통령이 다른 후보자를 의중에 두고 있었고 이견이 조정되지 않아 제청이 늦어지고 있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법원행정처장의 국회 답변에 의하면 민정수석을 통하여 청와대에 대면 협의를 요청했으나 면담 시간을 잡아주지 않았고 결국 서면으로 제청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사정을 미루어 보면 대통령은 대법원장이 적임자라고 생각한 사람이 아닌 다른 후보자를 제청할 것을 요구하였는데 대법원장이 이를 수용하지 않으면서 대법관 제청이 늦어졌던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 헌법은 대법원장에게 임명권자인 대통령과 사전 조율이나 대면 협의를 거쳐 제청할 의무를 부과하지 않았습니다. 대법원장은 후보자들의 역량을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대법관으로서 최적임자를 제청할 헌법상 책무가 있을 뿐 임명권자의 요청에 따라 제청할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고 그렇게 해서도 안됩니다.
  
  과거 20여 년 동안 사전 조율을 거쳐 제청한 전례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거나, 거기서 더 나아가 제청권자는 임명권자의 의사를 존중해야 한다는 등의 주장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삼권분립이나 사법권의 독립이라는 헌법의 핵심 가치보다는, 소위 제왕적 대통령의 통치에 순치된 결과일 뿐입니다.
  
  1963년 개정 헌법과 같이 대법원장의 제청이 대통령의 임명권을 기속한다는 규정이 없는 이상 대통령은 대법원장이 제청한 후보자에 대한 국회 임명 동의 요청을 거부할 수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 헌법이 삼권분립의 원칙에 입각하여 예정한 시스템입니다. 그러나 단순히 사전 조율이나 대면 협의를 통한 합의가 없었다는 이유가 아니라 제청된 후보자가 대법관으로 적임자가 아니라는 납득할 만한 근거를 제시하여야 합니다.
  
  더욱이 여러 가지 혐의에 대한 형사재판이 계속중인 이재명 대통령의 경우 자신이 임명한 대법관의 재판을 받아야 할 개연성이 매우 크다는 사정을 고려한다면 납득할 만한 근거 없이 임명동의 요청을 거부하거나 대법원장에게 특정인의 제청을 요구한다면, 이는 헌법 위에 군림하려는 것으로 국민의 준엄한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삼성전자 뉴스룸
  • 글쓴이
  • 비밀번호
  • 비밀번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