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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칼럼
세계 바다에 태극기를 휘날린 김재철(金在哲) 선장, 그리고 동원그룹 회장 문무대왕(회원)  |  2019-04-18

'참치바다서 금융의 바다까지...50년 대항해', '파도에 맞서 7兆그룹 일군 '캡틴KIM'…동원 미래50년은 AI로 승부', '태풍이 오면 선원은 파도가 아니라 선장을 본다'

앞에 소개한 신문기사 제목은 지난 16일 창립 50주년 기념식에서 명예로운 은퇴를 갑자기 선언한 동원그룹 김재철(84)회장에 대한 찬사(讚辭)이다. 이러한 찬사 가운데 이 시대 우리에게 가슴에 와 닿는 것이 바로 '태풍이 불면 선원은 파도가 아니라 선장을 본다'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이시대 우리들의 선장은 선원들을 과연 안심시켜 주고 있는가? 김재철 회장의 한마디가 우리의 심금을 울리고 있는 것은 세월호 선장이 저지른 엄청난 피해에 대해 그 잘못을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잔인하고 혹독한 현실에 대해 국가원로인 김재철 회장의 한마디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김재철 회장이 오늘 이렇게 언론으로부터 찬사를 받기까지에는 그의 주도면밀한 계획과 인내, 투지, 도전정신이 그 밑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이와 같은 도전정신은 비바람 휘몰아치는 폭풍우 속의 황천 항해 속에서도 안전 조업과 안전 항해를 위한 노력의 결실이 기업 경영에 반영된 모태라고 본다. 

김재철 회장은 은퇴를 전격 발표하면서 '스피드경영'을 이유로 밝혔다. “4차 산업혁명과 인공지능(AI)시대에는 정보의 스피드가 중요한데 그건 젊은 사람들이 더 잘 하기 때문에 명예롭게 물러나기로 했다'는 은퇴(隱退)의 변(辯)을 남겼다. 김 회장이 강조한 스피드경영은 김 회장이 몸소 실천한 경영철학이기도 하다. 김 회장은 34살 때인 1969년 자본금 1000만원으로 회사를 설립, 원양어선 1척과 직원 3명으로 출발하여 오늘의 동원그룹으로 발전하기 까지 김 회장의 스피드경영은 일취월장하여 오늘 7조2000억 원대의 大그룹으로 빛나는 성과를 거두어 왔다. 1973년 1차 오일쇼크 때 '동원산업' 전체자산보다 많은 자금을 투자해 4500톤급 ‘동산호’를 건조했다. 이것이 동원산업 수산신화의 발판이 됐다. 1982년 하버드 대학 최고경영자 과정을 연수하면서 기업 경영에 있어 금융의 중요성을 확인한 김회장이 동원산업자본금 20억 원의 3배가 넘는 거대자금을 투자하여 한신증권을 매입해서 동원증권을 세운 것이 지금 한국투자금융그룹이라는 거대금융회사로 성장한 계기가 됐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는 미국 1위 참치통조림회사인 ‘스타키스트’를 인수했다. 오늘 ‘스타키스트’의 미국 내 시장점유율은 50%에 이른다. 특히 1982년 한국인들에게 생소한 식품인 참치통조림회사를 설립하여 연간 3억 캔씩 소비되는 국민식품으로 만들기도 했다. 참치캔은 미국과 세네갈에서 출시해서 미국과 유럽시장에 동원참치가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팔린 참치캔은 62억 개, 지구 12바퀴 반을 돈 양과 같다. 20대의 젊은 선장 김재철이 거친 파도와 싸우며 어획한 참치를 납품했던 ‘스타키스트’의 주인이 된 것은 감회가 새로울 것이다. 감격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미국의 대(大) 참치통조림 회사, ‘스타키스트’의 주인이 김재철 회장이라는 사실은 한국인의 자랑이오, 한국경제의 긍지가 아닐 수 없다.

김재철 회장은 세계의 바다를 한국인의 바다로 만든 장본인이다 그래서 현대판 '장보고'로도 불린다. 장보고를 훨씬 뛰어넘는 해양개척의 선구자이기도 하다. 김 회장은 1958년 부산수산대학 어로학과에서 바다를 공부했고 고기 잡는 어부로서의 기본을 길렀다. 이같은 바탕을 경험으로 해서 한국최초의 원양어선 '지남호'의 실습항해사가 되어 세계의 바다개척에 몸을 던졌다. 1963년에는 동화선단(船團)선장(船長)이 됐다. 김 회장은 최연소선장이 되어 '파도야 치건 말건 바다는 좋은 곳', 이런 바다에서  '바다는 길이요 생명'임을 깊이 깨닫고 바다에 일생을 바치기로 결심했다. 1973년에는 아프리카 어장에 출어했고 1979년에는 국내 최초로 헬리콥터 탑재식 선망어선단(旋網漁船團)을 도입했다. 선망어선은 헬리콥터에서 참치어군을 찾아내 선장에게 통보하면 선장은 7,8척의 부속어선과 함께 그물을 둘러쳐서 참치를 잡는 어법(漁法)이다. 원양어장에서 'CAPTIN KIM'으로 명성이 난 김 선장이 회사를 설립하자 평소 김재철 선장을 유심히 지켜본 일본의 큰 수산회사가 500톤급 원양어선 두 척을 신용(信用)으로 빌려주고 참치를 잡아 선가(船價)를 갚도록 하는 특별배려도 했다. 김재철 회장은 열심히 참치를 잡아서 배 값을 모두 갚아 일본 선주로부터 신용을 인정받기도 했다. 이같은 김 회장의 신용인정은 김 회장이 기업을 경영하면서 신용제일주의를 확립하는 계기가 됐다.

김 회장은 신용과 함께 겸손을 경영의 기본으로 삼았고 거친 파도와 함께 싸우며 사업을 해야 하는 수산, 원양산업인 만큼 대자연 앞에 교만하지 않고 겸손하면서도 험난하고 거친 바다에서의 생존목표를 성실하게 실천하는 지혜와 능력을 경영의 제일 목표로 삼게 한 밑바탕이 됐다 그래서 김 회장은 장남인 '김남구'군을 원양어선에 태워 바다를 배우게 했고 차남인 '김남정'군을 창원참치공장 화장실 청소부터 하게 하는 2세 경영수업을 철저하게 시켰다. 그리고 며느리와 두 딸은 '가나안 농군학교'에 입교시켜 훈련을 받게도 했다. 이같은 김 회장의 2세 경영수업에 대해 스웨덴의 명문기업 '발렌베리家'에 비유하는 경제평론가도 있다.

김 회장의 기업가로서의 성공은 그냥 이뤄진 것이 아니다. 신용과 겸손, 험난한 파도를 이겨내야 하는 투지와 도전이 경영철학의 바탕이었음을 김재철 본인이 종종 강조하기도 했다. 시작은 원양어선 타고 사모아로 간 23세 청년 실습선원이었고, 외화벌이 주역이 되어 나랏돈 빌리거나 적자 낸 적이 없었다. 승부사의 기질을 발휘하여 국내외 경제위기 때마다 뛰어난 판단력과 뚝심으로 위기를 극복했다. 기회를 놓치지 않은 결단력과 실천은 전화위복의 계기가 됐다.

김 회장이 부산수산대학 진학을 선택하게 한 고등학교 담임선생에 대한 일화도 심심찮게 회자되고 있다. 강진농고 3학년 때 서울농대지원을 생각하고 있던 당시 김재철군에게 담임선생이 김재철을 불러 '유한한 육상의 농업보다는 무한한 해양으로의 진출을 권유했고 김재철이 이를 수용하여 부산수산대학어로학과를 지원하게 한 것이 오늘의 김재철회장을 있게 한 시발점이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 스승의 진학지도 한마디가 한 젊은이의 인생행로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가를 교훈으로 전해주고 있다. 성경에는 세 개의 바다가 있다. '평화와 복음을 전파한 갈릴리바다. 유대민족을 애급폭군의 폭압 굴레로부터 탈출하게 해준 기적의 바다 홍해. 그리고 방탕과 사치와 범죄의 소굴에 대한 심판의 바다 사해(死海)'가 있다.

그럼 우리에겐 어떤 바다가 있는가?' 무역왕 장보고의 바다'가 있고 '승리의 바다, 이순신의 바다'도 있다. 그리고 '대한민국을 번영으로 이끈 김재철의 해양개척과 경제의 바다'도 있다. 해양을 개척하고 세계와 바다로 뻗어 나간 국가와 국민에겐 번영이 있었고 쇄국과 바다를 외면한 나라의 못난 지도자와 그 국민에겐 식민통치의 괴로움과 패전(敗戰)의 고통이 있었음을 역사는 교훈으로 가르켜 주고 있다. 바다의 사나이, 김재철 회장! 해양개척의 선구자, 김재철 회장! 앞날의 영광과 행운을 기원하는 바이다.

삼성전자 뉴스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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