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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日記, "5.16은 구국의 횃불이었다." 趙甲濟  |  2019-05-15
1976년 5월 16일 (일) 흐름
  
   5.16혁명 15주년. 15년 전 오늘 새벽에 이 나라의 젊은 군인들이
  
   기울어져 가는 국운을 바로잡기 위하여 구국의 횃불을 높이 들고 궐기했다.
  
   오늘 새벽 동녘이 틀 무렵 혁명군 부대가 결사의 각오를 굳게 간직한 채
  
   새벽바람 찬이슬을 마시며 숙연히 한강대교를 도강했다.
  
   고요히 잠든 수도 서울은 역사의 새로운 장이 바뀌는 이 순간까지
  
   적막 속에 초여름의 피곤한 잠을 이루고 있다가 갑자기 술렁이기 시작했다.
  
   부패와 부정과 무능과 안일, 정체와 무기력으로 기식(氣息) 암암하던 이 사회에
   새로운 활력소와 소생의 숨소리가 흘러나오고 몽롱한 깊은 잠결에서 잠을 깨고
  
   제 정신을 차리기 시작한 것이다.
  
  
   오전 5시 국영방송을 통해서 혁명공약이 전파를 타고
   전국 방방곡곡에 메아리치기 시작했다. 이제부터 새 역사가 전개되기 시작했다.
  
   그 순간부터 15년이란 세월이 흘러갔다. 그러나 혁명은 아직 완결된 것이 아니다.
  
   아직도 줄기차게 진행중에 있다.
  
   가지가지의 고난과 저항과 훼예포폄(毁譽褒貶)을 들어가면서
  
   5.16의 완성은 우리 나라를 선진 공업국가 수준까지 끌어올리고
   자주국방 자립경제를 달성하여 평화적 남북통일의 기반을 구축하여야만 한다.
   1980년대 초에는 이 목표가 달성될 것으로 확신한다.
  
  
  
   1976년 6월 25일 (금) 흐림
   6.25 26주년이다.
  
   대역(大逆) 김일성 도당들이 동족상잔의 전쟁을 도발한 지 26주년이 된다.
  
   조국강산을 피로 물들이고 국토를 초토화시키고 수십만의 동포가 고귀한 생명을 잃었다. 대한민국을 공산화하기 위해서 소위 남조선 해방이라는 구호를 내걸고
   이처럼 엄청난 죄악을 저질렀다. 반만년 역사상 동족끼리 이처럼 처참한 살육전은 없었다.
  
   이 대역무도한 놈들의 죄과를 어떻게 다스려야 하나. 천추에 씻을 수 없 는 이런 엄청난 죄를 지금도 또다시 남침의 야욕을 버리지 않고
  
   호시탐탐 남침의 기회를 노리고 있으니 이 만고 역적들을 여하히 치죄해야 하나.
  
   길은 하나뿐이다. 전력을 경주하여 우리의 국력을 배양하는 길이다. 역적 도당들에게 천벌을 가할 수 있는 막강한 국력을 길러서 민족의 원한을 풀어야 한다.
  
   애국선열, 전몰군경, 반공 애국투사들의 천추의 한을 풀어줄 수 있는 길은
  
   오직 이 길 하나뿐이다. 나의 모든 생명을 바쳐서 이 민족적 사명을 기필코 완수하리라. 천지신명이시여! 나에게 이 대업을 완성할 수 있는 지혜와 용기와 힘을 주옵소서!
  
   *1974년 10월 17일 (목) 맑음
  
   어제 10월 6일 오후 3시 태국에서 무혈 쿠데타가 발생,
  
   1973년 10월 학생들에 의해서 군정이 붕괴되고 그 후 불안과 혼미를 거듭하면서
  
   민정의 출범을 보았으나 결국은 민정이 붕괴되고 다시 군정으로 되돌아가고 말았다.
  
   개발 도상국가에 있어서 서구식 민주주의가 활착(活着)을 하자면
   얼마나 힘이 들고 지난하다는 것을 또 한번 실증한 셈이다.
   그 나라의 실정을 무시한 형식만의 모방은 십중팔구 실패한다는 것을
   우리들은 누구보다도 뼈저린 체험을 했고 또 다른 나라의 예를 수없이 보아왔다.
  
   특히 공산주의의 위협이 있는 나라에서는 서구식 자유민주주의의 성장이 불가능하다.
  
   우리의 유신체제는 이러한 귀중한 교훈에서 우러나
  
   <한국적 민주주의> 라는 것을 재인식해야 할 것이다.
  
   *1976년 10월 13일 (수) 맑음
  
   10시 40분 기동차 편으로 서울역발.
  
   영산강 유역개발 제 1 단계사업 준공식 참석차 광주로 향발. 오후 4시역 광주 도착. 기차편으로 광주행은 오래간만이다.
  
   연도 농촌의 모습이 수 년 전에 비하여 괄목할 만큼 변모한 모습이 눈에 띈다.
  
   새마을운동의 실적이 농촌 방방곡곡에 나타나고 있고
  
   풍요에 넘실거리는 가을의 평화는 아름답기만 하다.
  
   광주시내 모습도 1년여만에 보는 눈에는 깨끗하고 알뜰하게 다듬고 가꾸어진 모습 역연하다. 시민들이 내 고장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씨가 구석구석에 보여 기쁘기 한이 없다. 도착 후 목욕을 하고 고건(高建) 지사를 대동하고
   무등산 너머에 있는 김덕령(金德齡)장군의 사당, 충장사를 참배하고 돌아오다.
  
   *1976년 10월 17일 (일) 흐림
  
   10월 유신 4주년이 된다.
   유신 4년 동안에 우리 나라는 과거 10년 내지 20년 정도의 변화를 가져왔다.
   국력이 그만큼 커졌다. 정부와 국민이 일치단결하여 피땀흘려 노력한 결과일 것이다.
   그 동안 73년 말부터는 유류파동으로 시작된 국제경제의 일대 불황이 있었다.
   75년 초에는 인도지나 반도의 비극이 있었다. 북괴의 남침땅굴 발견도 이 기간 중에 있었다. 8.18판문점 만행사건도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꾸준히 국력을 신장시켜 왔고
  
   주변정세의 격변과 북한 침략집단의 집요한 도발과 위협에 미동도 하지 않고
  
   우리의 안보태세를 훨씬 더 튼튼하게 다져 놓았다.
  
   우리의 방위산업도 괄목할 만큼 발전 성장하였다.
  
   우리의 경제발전은 국제사회에서 경이의 대상이 되고
  
   개발도상국 중의 모범국가로서 선전이 되고 있다. 그 원인은 딴 데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의 일대 자각과 단결과 땀흘려 일한 노력의 대가이다.
   그러기 때문에 오늘의 이 건설의, 성장의 결과는 값진 것이고 보람있는 것이다.
  
  
   하늘은 한 민족이 자기의 운명을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하고 개척하겠다는 결의와
  
   노력을 경주할 때는 반드시 거기에 응분한 보상을 준다는 것으로 우리는 믿어야 한다. 농촌사회에서 5천년의 유산인 가난이 하나하나 벗겨져 나가고 새로운 생기 약동하는 농촌 모습으로 달라져 가는 것은 새마을운동의 성과이다. 농민들이 의지와 의욕과 노력의 대가가 농촌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10월 유신은 구국의 결단이었다. 우리 국민 전체의 결단이었다.
   새 역사의 출범이었다. 근면, 자조, 협동하는 데에서 새 역사가 하루하루 창조되어 나가고 있는 것이다. 중단해서는 안 된다. 계속해야 한다. 밝은 내일은 반드시 도래하기로 약속이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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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희는 1963년에 쓴 '국가와 혁명과 나'에서, 한민당에 뿌리를 둔 해방 후의 정치세력을 민주주의의 탈을 쓴 봉건적 수구세력으로 규정했다. 그들 구정치인(舊政治人)이야말로 "덮어놓고 흉내낸 식의 절름발이 직수입 민주주의"를 맹신하는 사대주의자라고 단정하기도 했다. 그의 혁명적 역사관은 서구식 민주주의 맹신자들이야말로 조선시대의 당파싸움 전문가들과 본질적으로 같은 위선적 명분론자라고 규정했다.
  
  그는 4.19와 5.16혁명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하고 있다. 즉, 4.19혁명은 "피곤한 5천년의 역사, 절름발이의 왜곡된 민주주의, 텅 빈 폐허의 바탕 위에 서서 이제 우리는 과연 무엇을 어떻게 하여야 할 것인가"라는 명제를 던졌고 이 명제에 해답하기 위한 '역사에의 민족적 총궐기'가 5.16이란 것이다. 4.19와 5.16을 동일선상에 놓는다는 것은 자유당과 민주당을 똑같은 봉건적.수구적 세력, 즉 근대화 혁명의 대상으로 보았다는 뜻이다. 그는 이 책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4.19학생혁명은 표면상의 자유당 정권을 타도하였지만 5.16혁명은 민주당 정권이란 가면을 쓰고 망동하려는 내면상의 자유당 정권을 뒤엎은 것이다."
  
  다수의 국민들과 지식인들이 자유당을 독재, 민주당을 민주세력으로 보고 있었던 데 대하여 박정희는 그런 형식논리를 거부하고 그들의 본질인 봉건성을 잡아채어 둘 다 역사 발전의 반동세력이라고 단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 어디에도 합헌(合憲)정권을 무너뜨린 데 대한 죄의식과 변명이 보이지 않는 이유는 당시에 박정희가 이런 혁명적 시각을 자신의 신념으로 내면화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불원(不遠)한 장래에 망국의 비운을 맛보아야 할 긴박한 사태를 보고도 인내와 방관을 미덕으로 허울 좋은 국토방위란 임무만을 고수하여야 한단 말인가. 정의로운 애국군대는 인내나 방관이란 허명(虛名)을 내세워 부패한 정권과 공모하고 있을 수는 도저히 없었다. 말하자면 5.16혁명은 이 공모를 거부하고, 박차고 내적(內敵)의 소탕을 위하여 출동한 작전상 이동에 불과하다고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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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朴正熙의 격정토로, '幻想的 민주주의자를 비판한다'(1975년 연두 기자회견문 일부)
  
   "자기는 두 동강이 난 分斷된 남한 땅에 살고 있으면서 머리와 생각은 미국이나 서구라파에 가 있어 가지고 그 곳에 대한 환상만 자꾸 생각하고 있단 말이에요."
  
  
   요즈음 정부에 대해서 늘 반대하는 일부 사람들 중에, 언필칭 민주주의가 어떻고 자유가 어떻고, 이런 소리를 많이 얘기하는 것 같습니다. 그 사람들 얘기를 들으면 민주주의니 자유니 하는 것은 그 사람들의 하나의 특권물이고 마치 자기들의 독점물같이 떠들고 있고, 현 정부에 앉아 있는 대통령이나 장관이나 이런 사람들은 민주주의가 뭔지 자유가 뭔지 전혀 모르는 무지막지한 사람들이 앉아서 정치를 하고 있는 것같이 선동을 하고 있는데, 그 사람들은 요즈음 이렇게 얘기하더군요. 언론의 자유가 없는 현 정부는 『독재 정권』이다, 심지어 최근에 와서는 별의별 소리를 다합니다.
   “정권 내 놓고 물러가라” “대통령도 그만두고 물러가라”, 이런 소리가 함부로 막 나오고 또 몇몇 신문에 대문짝처럼 이것이 보도가 되어서 국민들을 선동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 이상한 것은 이 사람들이 이런 소리를 막 떠들고 신문에 쓰면서도 우리 나라에는 언론의 자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언론의 자유가 없는 나라에서 어떻게 정부를 이렇게 비난하고 비방을 하고, 이런 소리를 신문에 막 쓰고 할 수가 있느냐, 이것입니다.
   즉, 정부에 대한 그런 비판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그 자체가 언론의 자유가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들은 언론의 자유로 뭘 바라느냐. 솔직히 말하면 그 사람들이 우리 국민들 중에서도 가장 언론의 자유를 많이 누리고 있으면서도, 늘 불평은 언론의 자유가 없다고 불평합니다. 하나 역설적인 얘기인 것 같습니다마는, 우리 나라에는 언론의 자유가 있다 하는 것이 확실히 입증이 되었다 하겠습니다.
   누가 그것을 증명을 했느냐, 요즈음 정부를 욕하고 비방하는 이 사람들이 바로 언론 자유가 있다는 證人이 아니냐, 이것입니다. 어느 독재 국가에서 정부에 대해서 그런 비난이나 비방을 마음대로 하고도 잡혀 가지 않고 일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언론의 자유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국민에게 어느 정도의 자유를 허용하고 어느 정도의 자유를 제한하느냐 하는 것은 그 나라 사정에 따라서 각기 다릅니다. 그 나라가 가지고 있는 역사적인 현실과 시대적인 환경 또는 사회적인 여러 가지 특수성에 따라서 차이가 있습니다. 또, 차이가 있어야 합니다.
  
   오늘날 각국의 민주주의 제도라는 것도 그 나라가 처해 있는 역사적인 현실과 시대적인 환경에서 우러난 하나의 産物이고 소산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렇지 않고는 그 나라의 제도라는 것은 그 나라의 발전과 성장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나라 헌법도 나는 같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나라 헌법도 우리 나라가 처해 있는 이 특수 여건을 감안해서 어느 정도로 국민의 자유를 허용하거나 어느 정도의 자유를 제한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난 憲政 30년 동안 우리가 경험해 본 그 경험에 입각해서 어느 것이 가장 우리 나라 실정에 알맞는가 하는 것을 국민 의사에 물어서, 국민의 동의를 얻어서 제정된 헌법, 즉 이것이 우리의 유신 헌법입니다.
  
   그리고, 요즈음 또 정부에 대해서 반대하는 사람들은 흔히 이런 소리를 하면, 또 무슨 궤변을 들고 나오느냐 하면서, 미국이 어떠니 서구가 어떠니 해서 그곳과 우리하고 대조해 가지고 얘기를 합니다. 물론, 미국 국민들이 또는 선진 민주주의 국가의 국민들이 우리 국민들보다도 더 많은 자유를 누리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것은 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도 빨리 나라가 성장을 하고 富强해지고 또 한반도에서 이러한 전쟁의 위협이 없어져서, 우리도 남과 같은 그런 자유와 번영을 누릴 수 있는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우리 모두가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 시점에 있어서 우리 한국 국민이 미국 국민들이 누리는 것과 같은 그런 자유를 향유하겠다는 것은 무리한 소리가 아니냐, 이거예요. 미국하고 우리하고 사정이 다르고, 구라파하고 우리하고도 사정이 다릅니다.
  
   미국이 오늘날 지구상에서 가장 민주주의가 발달되어 있고, 자유를 많이 허용한 나라라고 하는데, 만약에 미국이 우리 한반도와 같은 이런 형편에 처해있다면, 과연 오늘날 미국 국민들이 누리고 있는 그런 자유를 누릴 수 있겠느냐. 이에 대해 요전에 미국의 어떤 친구들이 나한테 와서 같은 얘기를 합디다마는, 자기들도 “미국에 있을 때에는 여러 가지 한국 문제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한국에 와서 보고 여러 가지로 생각을 좀 달리 했다”는 얘기입니다.
  
   만약, 美 합중국이 남북으로라든지 동서로라든지 國土가 분단되어 가지고 그 한 쪽에 공산 정권이 서서 미국보다도 더 강력한 군사력을 가지고 미국을 뒤집어 엎어 적화 통일을 하려고 자주 도전을 해 오고, 간첩을 보내고 테러 분자를 보내고, 심지어 땅굴을 파고 두더지 모양으로 기어 들어오고, 또 그 옆에 있는 캐나다가 공산주의 국가고 또 남쪽에 있는 멕시코가 공산주의 국가고 그 가운데 둘러싸인 미국이 주위로부터 그런 압력과 위협을 받고 있다, 그랬을 때에 미국 정부는 어떤 조치를 취할 것이고 미국 국민들이 과연 오늘날과 같은 그런 자유를 누릴 수 있겠느냐…, 못할 것입니다. 요즈음 한국의 일부 인사들 중에는 자기는 두 동강이 난 分斷된 남한 땅에 살고 있으면서 머리와 생각은 미국이나 서구라파에 가 있어 가지고 그 곳에 대한 환상만 자꾸 생각하고 있단 말이에요.
  
   남의 일이니까, 왜 우리는 그만큼 자유를 안 주느냐, 왜 우리한테는 자유가 이렇게 없느냐, 이것을 우리는 소위 환상적 민주주의론자라고 얘기를 합니다.
   가장 자유가 많고 민주주의가 잘 된다는 미국이라는 나라도 역사를 보면, 가령 과거 링컨 대통령 때의 남북 전쟁 당시라든지, 또는 루스벨트 대통령 시대의 2차 세계 대전 때라든지, 또는 1930년대의 세계적인 대경제 공황시대의 미국 대통령에게 미국 국민이나 입법부가 부여한 방대한 비상 권한이라는 것은 미국의 여러 가지 위기를 구출하기 위해서 그러한 권한이 부여됐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으며, 또 미국 시민들이 일부 기본권조차 제한받았다는 것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西歐, 서구 하지마는 서구에서 가장 대표적인 민주주의 국가라고 하는 프랑스의 예를 하나 들어 봅시다. 프랑스는 서구 민주주의의 발상지의 하나라고 우리는 보고 있는데, 1950년대 알제리 문제를 가지고 國論이 분열되고 국가가 위기에 처하게 되자 프랑스 국민들은 『드골 헌법』을 제정했습니다.
   『드골 헌법』의 제16조를 보면 우리 현행 유신 헌법 53조와 유사한 국가 비상시에 대한 긴급 조치권이 부여되고 있습니다. 드골 대통령은 이 헌법의 권한에 의해서 프랑스의 위기를 구출했습니다. 그런데, 프랑스는 그 『드골 헌법』을 지금도 개정하지 않고 그대로 시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프랑스가 무슨 비상 사태하에 있느냐, 우리 한국과 같이 외부터부터 큰 위협을 받고 있느냐, 나는 그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프랑스는 그 헌법을 아직도 그대로 시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프랑스에는 이런 헌법이 그대로 시행되어도 말썽이 없는데, 어떻게 대한민국에서는 그렇게 말썽이 많으냐, 이것입니다. 그러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프랑스보다 더 앞서고 있느냐, 대한 민국의 민주주의 역사가 프랑스보다 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느냐, 우리 나라에서 헌법에 대해서 운운하는 사람은 이런 문제도 한 번 연구해 볼 필요가 있지 않는가 생각합니다.
  
   그 다음에 人權에 대한 얘기가 많이 나오는데, 우리 정부가 인권 침해를 많이 했다고 하는데, 작년 4월에 있었던 소위 『민청 학련 사건』이라는 것이 있었지요. 여기의 주모자들 130여 명을 지금 구속하고 재판에 회부하고 있는데, 이것을 가지고 그 가족들이나 그 동료들, 또 이 사람들을 구출하겠다는 일부 인사들은 “그 사람들은 아무 죄도 없는 사람들인데, 정부가 그냥 막 잡아다가 고문을 해서 군법 회의에다 돌려 가지고 비밀 재판을 해서 지금 징역을 보내고 있다.” 이렇게 악선전을 하고 있습니다.
  
   자유와 인권이라는 것은 대단히 소중한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또 존중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자유와 인권이라는 것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역시 이것도 헌법과 법 테두리 안에서 보장되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 일부 인사들은 자유와 인권이라는 것은 아주 천부의 절대 신성 불가침으로서, 헌법이나 법을 가지고도 규제할 수 없는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것은 잘못이다, 이것입니다. 우리 나라 법에도 정부를 비판할 수 있는 자유는 보장되어 있지마는, 폭력으로써 정부를 전복할 수 있는 자유는 보장이 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것은 우리 나라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나라가 다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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