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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칼럼
남한에 와서 스승답게 모신 북한인권시민연합 윤현 이사장을 추모하며 "권리 위에 자는 者는 보호를 받지 못한다…시민운동은 돈과 권력이 아니라 인격운동이다!" 이민복(대북풍선단장)  |  2019-06-19

<권리 위에 자는 자는 보호를 받지 못한다.>

북한인권시민연합 윤현 이사장에게서 난생 처음 들은 말이다. 흔하디 흔한 말 같지만 인권이란 개념조차 없는 북한에서 온 나에게는 새 인생관을 갖게 한 고귀하고 고귀한 가르침이었다. 그래서 감히 스승이라고 한다.

한편 스승으로 모실 가치는 좌우익, 종교를 경험한 경력이다. 공산주의에 매료되어 여수, 순천지구의 열혈청년간부였다. 여수, 순천 반란사건 때 거기에 있었으면 영락없이 죽었겠는데 사전에 잡혀 서울 감옥에 있었기에 살아남았다고 한다.

운명은 또 한 번 북한추종을 피하게 하여 주셨다. 모스크바 유학이라는 미끼가 달린 유혹에 끌려 월북 명단에 선정되었는데 떠나는 그를 결사적으로 막아 나선 어머니 때문에 늦어 못 간 것이다. 제 시간에 모여 간 동료들은 유학이 아니라 간첩훈련을 받고 남파되어 거의 다 죽었다고 한다. 추종했던 공산주의는 6·25전쟁을 겪으며 진짜 그 속성을 경험하고 단숨에 버릴 만큼 실망하셨다. 그렇다고 우익이라고 다 찬성할 만하지도 않았다. 4·19혁명이 말해주는 것이다.

철저한 무신론자였지만 마지막 대안이듯 종교에 귀의하였다. 유구하고 유명한 연세대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목사, 교수가 되었다. 허나 종교계에서도 실망은 사라지지 않았다.

마감에 깨달은 것은 생명과 인권의 가치였다. 박정희 개발독재가 서슬 퍼랬던 1972년 최초의 엠네스티(국제사면운동) 설립 한국 지부장으로서 김지하 시인을 비롯하여 이름만으로도 누군지 아는 유명한 정치범 수백 명을 구명하였다. 생명과 인권은 목숨과 바꾼 체험의 가치 같았다. 만약 청년 때 빨갱이라고 죽임을 당했다면 공산주의와 상극인 기독교 목사가, 또 남북한 인권운동가로 될 수 있었겠는가이다.

인생의 단면을 보고 생명을 제거하는 것처럼 반인륜은 없다는 것이다.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다는 경전의 말씀에도 있는 절대 진리이다.

이분의 목소리는 탈북해서부터 들었다. 1992년 중국망명 체류시 유일한 낙이고 세상공부였던 이 방송에서의 목소리를 잊을 수 없다. KBS 사회교육방송(대북방송)의 논설원으로도 활약하셨기 때문이다.

안면근육 마비로 얼굴과 입은 비뚤어져도 항상 바른 말을 하셨다. 누구도 거부할 수 없을 만큼의 바른 말은 이번 서거 기사가 좌우익의 대표적 신문들에 난 것이 증거이다. 구명운동으로 살아난 유명정치인들이 있어 마음만 먹으면 누구처럼 정치에 나설 수 있겠건만 시민운동가로서 한결같았다.

 
남한이 민주화되자 이 분은 본능처럼 북한동포에게로 향했다. 탈북자인 나와 강철환, 안혁, 그리고 김상헌, 김영자와 같은 남한 인사들이 조촐하게 모여 1996년 5월4일 <북한동포의 생명과 인권을 지키는 시민연합>(약칭; 북한인권시민연합)을 창립하였다.

앞서 <북조선귀국자의 생명과 인권을 지키는 모임>(1994년)을 시작한 도쿄대 명예교수 오가와 하루히사의 영향이 컸었다. 일본인도 북한인권을 관심하는데 한국인으로서 우리는 뭔가이다. 이것이 한국사회에서 북한인권시민단체의 시조이고 모태가 됐다.

북한동포의 알 권리를 직접 돕는 대북풍선 하는 나도 그렇지만 강철환, 안명철, 김상헌, 윤여상, 허만호, 수전 솔티 등 현재의 북한인권단체들이 산파되고 키워졌다.

창립식 때 이분의 말이 또렷이 기억에 남는다. 이 운동은 돌아오지 않는 광야의 메아리 같다. 그래도 반드시 해야 한다. 창립 초기부터 정부가 돈을 준다고 해도 받지 않았다. 어려운 시기 돈 앞에 간단한 자세가 아니다. 관(官)의 돈을 받으면 시민운동이 아니라는 것이다. 시민운동은 돈과 권력이 아니라 인격운동이다! 나 역시 이 정신을 배워 지금껏 단체를 운영한다.

인생에 누구를 만나는가가 중요하다. 이 분을 만나 최초의 북한인권단체 창립 일원으로 된 계기는 <신동아>에 실린 기사였다. 기사에는 모스크바 망명 시 <러시아 탈북난민협회>무어 활동했던(1994년) 엠네스티 보고서가 실렸고 이것을 보고 당시는 남한에 입국한 나에게 연락을 해온 것이다.

이런 만남은 나에게 확실한 인권과 시민의식을 갖게 하였다. 이 의식 하에 최초의 자율탈북자단체인 <자유북한인협회>(1998년)를 결성하여 획기적인 일을 해냈다. 정보기관과 대결하여 탈북자 인권과 권익을 혁신시킨 것이다. 격리된 정보사 내에서 조사란 명목으로 그동안 80%가 폭언폭행당하는 실태를 폭로하여 개선시켰다. 이어 자유로운 여권발급과 인터뷰, 결사의 자유도 찾아냈다.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정보기관과의 싸움은 탈북자인 우리로서 어림도 없었다.

하지만 이 분의 3박자 가르침대로 하여 승리하였다. 언론에 공개하라, 시민단체와 함께하라! 법적으로 대응해라! 정보기관의 모략과 겁박으로 탈북동지들이 줄줄이 감옥가고, 탈퇴 반격 해오고, 가스총을 소지하고 자야 할 만큼 불안 속에서도 나만은 담담하였다. 위 가르침의 뒤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그 분은 하늘나라에서 물으실 것이다. 너 왜 스승이라면서 화환도 안 가져오고 부조도 적게 냈느냐가 아닐 것이다. 내 가르침을 어떻게 실천하느냐로 기뻐하실 것이다. 생전 호탕하게 웃는 모습을 한 번도 보지 못 했지만 아마도 이것에는 그 금단을 깨시리라 믿는다.

그것은 제자로서 민간인 최초로 대형풍선을 개발하여 북한동포를 직접 돕는 운동을 더 열심히 하는 것에서라고 본다. 대북풍선운동은 순수한 인도주의, 인권운동이다. 눈과 귀를 가리운 북한동포에게 알 권리 볼 권리를 직접 돕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 가장 자극적인 것이 아니라 가장 조용히 할 수 있는 인권운동 수단이기도 하다. 레이더와 열, 소리, 육안으로 추적이 안 되기 때문이다.

그 효과는 나 자신이 남한삐라를 보고 탈북결심을 할 만큼 체험한 것이다. 라디오, 인터넷, 종교를 말살한 유일한 땅 북한, 그 폐쇄 속에서 자행되는 최악의 인권유린과 평화를 교란하는 암흑에 촛불, 진리를 알지니 너희가 자유케 되리라는 소식을 보낼 것이다.

언제까지?!

스승이 남한 땅에서 이룩하여 놓은 것처럼 북한 땅에도 그렇게 될 때까지 -

삼성전자 뉴스룸
  • 진실한우파 2019-06-20 오전 9:44:00
    박정희 개발독재?.... 흠... 우리나라에 좌우익 신문??? 아직 우리나라에 우익 신문이 남아 있다고 보는 건지? 이 분 현실 인식이 참...
    근데 윤현 이사장도 훌륭한 분이었겠지만 이런 분은 수도 없이 많고 결국 이 분은 각 분야, 일부분에서 좋은 역할을 한 분일 뿐... 박정희 같은 인물이 이끌고 만든 거대한 틀 속에서 각자 나름대로 역할을 한 분 정도이지 않을까...
    박정희를 스승이라 여기는 이는 거의 없는 듯... 박정희는 서민 속에서 훌륭한 지도자로 남아 있을 뿐 정치업자, 시민운동업자 등에게는 언제나 개발독재자 따위로 기억될 뿐이라는 게 씁쓸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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