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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 번영’은 북한의 終末을 초래할 毒藥 이동복  |  2019-06-20

경제적 번영은 북한의 終末을 초래할 毒藥

 

다음의 글은 미국의 역사학자 토마스 아담(Thomas Adam)이 미국의 시사주간지 The National Interest 201963일호에 게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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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에게 일견(一見) 베트남은 지난 2월 그가 북한의 비핵화 문제를 논의하기 위하여 북한의 독재자 김정은(金正恩)와 가진 정상회담의 최적의 장소인 것처럼 생각되었다. 트럼프는 하노이의 화려한 메트로폴 호텔(Metropole Hotel)에서 그가 만난 김정은을 설득하여 그로 하여금 핵무기를 포기하고 그 대가로 북한에 대한 제재를 풀어줌으로써 북한이 필요로 하는 북한의 경제개발의 발동을 걸게 할 수 있게 되기를 희망했었다.

 

북한의 경제는 당초 북한 정권 수립의 후견 세력이었던 구 소련이 1990년대 초 붕괴한 뒤 곤란을 겪어 왔었다. 북한에서는 기아(飢餓)가 아직 보편적이어서 2,500만명의 북한 주민 중 1천만 명 이상이 지금도 영양실조를 면치 못하고 있다.

 

다른 한편, 한 때 전 세계 최빈국(最貧國)의 하나였던 베트남은 지금 번영을 구가하고 있다. 1990년대 후반 구 소련 식 계획경제가 실패하자 베트남은 시장에 대한 전면적 통제를 과감하게 버리고 재빨리 자유시장경제로 전환하여 기업과 농업의 개인 소유를 허용하는 경제개혁을 추진해 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같은 베트남의 경제정책 전환 성공 사례를 예거하면서 28일 그의 장기(長技)인 트위터를 통하여 만약 완전한 비핵화를 받아들이기만 하면 북한도 급속한 경제 발전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역사학자의 입장에서 나는 베트남이 북한의 본보기가 될 수 있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견해에 공감하지 않는다. 나는 지금 내가 태어난 나라인 독일 역사에 관한 대학 교재를 집필하고 있는 중이다. 미국과 베트남 사이의 정상회담이 성사되었을 무렵 나는 이 교재 가운데 한 장()구 소련 식 계획경제로부터 자유시장경제로의 동독의 전환대목을 집필하고 있었다.

 

나의 평가에 의한다면, 오늘날의 북한은 베트남보다는 냉전 시기 동독과 유사한 점이 더 많다. 북한과 마찬가지로 동독은 공산주의를 선택함으로써 한 때 통일국가였던 독일의 다른 반쪽과 분단되어 있었다. 북한은 동독과 마찬가지로 그들 국가의 분단된 다른 반쪽이 채택한 자본주의 체제를 전면적으로 거부했었다.

 

한반도는 19452차 세계대전 종결과 더불어 미-소 양국군이 북위 38도선을 사이에 두고 한반도를 남과 북으로 분할 점령함으로써 분단되었다. 이 분단은 1950년 공산 북한이 공산화 통일을 목적으로 불법적 남침을 감행함으로써 발발한 한국전쟁에 남한의 편을 든 미군을 비롯한 유엔군과 이에 맞서서 북한을 지원하는 중공군(中共軍)이 참전한 결과로 고착(固着)되었다. 한반도의 분단은 1953년의 휴전(休戰)이후 지속되고 있다.

 

한반도와 마찬가지로 독일도 상호 적대적인 동서 양독으로 분단되었다. 자본주의를 채택한 서독과 공산주의를 선택한 동독은 베를린 장벽을 사이에 두고 1945년부터 1990년까지 분단 상태를 유지했었다.

 

그런데, 공산 동독에서는 경제를 활성화시킬 목적으로 공산당 지도자 발터 울브리히트(Walter Ulbrecht)가 경제에 대한 정부의 통제를 완화하는 경제개혁을 추진하는 일이 발생했다. 과거에는 정부가 독점했던 권한인 무슨 제품을 생산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권한이 국영 기업의 관리자에게 주어졌고 이와 함께 생산된 제품의 처분을 통하여 취득되는 수익의 상당 부분을 근로자들에게 분배할 수 있게 되었다. 은행들이 그들이 선택하는 기업에 돈을 빌려 줌으로써 기업들이 성장하고 다시 투자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되어서 생산성이 향상되고 임금이 상승하며 소비재의 공급이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동독은 1970년대 초에 갑자기 이 같은 경제 개혁 조치들을 중단하는 조치를 단행했다. 그 이유는 경제 개혁 조치가 성과를 생산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나와 동료 역사학자인 조르그 뢰슬러(Joerg Roesler)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이 같은 개혁 조치로 말미암아 동독이 급속하게 서독과 유사(類似)해지고 있다는 데 대하여 동독 정권이 공포심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1968, 구 소련군이 동독의 접경(接境) 국가인 체코슬로바키아에 진입하여 이 나라에서 추진되고 있던 정치 및 경제 자유화 정책을 중단시켰다. 이때 동독 정권도 동독이 체코슬로바키아처럼 추진하던 급격한 개혁 정책이 공산독재 체제 유지에 위험한 상황을 초래하고 있다는 공포감을 느끼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러나, 고장난 경제에 대한 계획경제식 통제를 유지함으로써 공산 체제를 수호하려는 동독의 시도는 성공할 수 없었다. 결국 독일은 1990103일 동독이 서독에 편입되는 형태로 통일이 이루어졌다.

 

본래 공산주의 이념에서는 경제가 핵심적 가치였다. 구 소련과 쿠바 그리고 베트남 같은 나라들이 자신들을 자본주의에 바탕을 둔 서구식 민주주의 국가로부터 차별화시키는 요소는 계획경제였다. 블라디미르 레닌(Vladimir Lenin)이나 피델 카스트로(Fidel Castro) 같은 자들의 입장에서는 사회주의 계획경제야 말로 그들의 우월성을 입증하는 요인이었다.

 

이들의 주장에 의하면, 이들 국가에서 자본주의로의 전환이 이루어지면 사회적 불평등이 심화되게 되어 있었다. 시장이 자유화되면 부유한 기업가 계급이 커지고 그 대신 보다 많은 수의 경계선 상의 사람들이 이 같이 새로이 형성되는 부()루부터 소외되게 되어 있었다.

 

그래도, 베트남과 쿠바 그리고 중국에서는 괄목할 만 하게 향상된 생활 수준이 공간 정권의 정통성을 제고시켜 주고 있었다. 그러나, 동독과 북한의 경우는 이들 다른 공산주의 국가들과 달랐다. 그들은 분단국가였기 때문이다. 계획경제가 단지 이들 나라의 정치체제만 좌우하는 것이 아니었다. 계획경제는 이들 두 분단국가의 존재이유 자체였다. 동독과 북한에게는 그들의 분단 상대방의 자본주의 체제와는 상반되는 경제체제를 채택하고 발전시켜 나가야 할 운명이 점쳐져 있었다. 역사는 이들 두 나라가 그들의 분단 상대방의 자본주의 체제와 확실하게 차별화되는 경제체제의 대안을 분명하게 제시하지 못한다면 그들에게 강요되는 운명은 상대방에 의하여 흡수되는 것임을 보여주었다.

 

나의 그동안의 연구 결과는 북한이 비핵화를 받아들이고 그 대가로 대북 경제 재제가 해소되어서 북한의 사회주의 시장경제체제로의 전환이 이루어진다면 북한은 동독식의 존재 자체의 위협에 직면하게 될 것임을 보여 주고 있다. 그 이유는 경제의 번영이 이루어지면 그것은 북한으로 하여금 김가(金家) 일문(一門)의 독재체제의 합법성과 반미 정책 그리고 국제적 고립정책의 정당성 상실의 위험에 직면하게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 독재자 김정은의 입장에서는, 경제가 망가지는 한이 있더라도 핵무기에 의한 위협에 의하여 보장되는 정치 권력 장악 유지가 자본주의 체제에 임각한 경제 위기의 극복보다 바람직한 것이다. 김정은은 2011년 그의 아버지 김정일(金正日)의 사망에 따라 북한의 독재 권력을 승계한 뒤 북한 주민들의 생활 수준을 향상시켜 주겠다고 약속했었다. 그러나, 그에게 실제로 필요한 것은 공산주의 계획경제인 북한 경제체제를 위협함이 없이 북한의 경제를 개선할 수 있게 하는 경제 개혁 조치임에 의문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문제는 탈냉전의 시대에 세계의 어느 공산주의 국가에서도 그 같은 기적이 성취된 일이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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