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갑제) 1963년 12월17일에 취임한 박정희 대통령은 64년 6월3일 서울 일원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하여 학생들의 한일회담 반대시위를 눌러버립니다. 박정희에게 있어서 일부 학생, 지식인, 그리고 야당 세력은 항상 근대화되어야 할 대상으로 존재했습니다.
1965년 5월2일 진해 제4비료공장 준공식에서 박정희 대통령은 이렇게 말합니다.
<학생 제군들은 오늘의 주인공이 아니다
(상략) 오늘 이 자리에 학생들도 좀 얼굴이 보이기 때문에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학생들! 지금 정치인들이 국회에서 말하고 떠들면 내용도 모르고 덮어놓고 거리에 나가서 우선 플래카드를 들고 성토대회를 하고 무슨 정부 물러가라, 매국하는 정부 물러가라, 이런 철없는 짓들 하는데 나는 학생제군들에게 솔직히 오늘 이 자리에서 이야기해두겠네. 제군들이 앞으로 이 나라의 주인공이 되자면 적어도 10년 내지 20년 후에라야만 제군들이 이 나라의 주인공이 되는 것입니다. 제군들의 시대가 오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대에는 우리들 기성세대가 모든 것을 책임을 지고 여러분들 못지않게 나라에 대한 것을 걱정을 하고 근심을 하고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잊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내가 학생 여러분들을 절대 무시해서 하는 소리가 아니라 나도 여러분들과 같이 한 20대 젊은 시절의 학생시절의 생각을 해보건데, 여러분들은 아직까지도 공부를 하고 배워야 되고, 모든 것을 수양을 해야 되고 자기의 실력을 배양할 시절입니다.
여러분들이 직접 정부가 하는 일, 정치적인 문제, 사회적인 문제에 낱낱이 직접 간섭하거나 참여하거나 직접 행동에 옮길 그런 시기도 아니고 또 그런 것이 여러분들의 책임도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철부지 학생들에게 경고한다
그런데 지금 학생들은 4·19정신 운운하고 뛰어나옵니다. 여러분들의 선배가 4·19 당시 거리에 나와서 한국의 민주주의를 같이 지키기 위해서 뛰어나온 그 정신은 그야말로 백 년에 한 번, 수백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이런 숭고한 정신인 것입니다. 어떠한 사소한 정치적인 문제가 국회나 사회에서 논의가 될 때 그 문제 하나하나를 들고 학생들이 거리에 뛰어나와서 그것이 4·19정신이라고 이렇게 떠든다면 그야말로 4·19정신을 그 이상 더 모독하는 것이 없을 뿐더러 4·19정신은 절대 그것이 아니다는 것입니다.
서독 대통령이 한 말
작년(1964년) 연말에 내가 독일을 방문했을 때 독일 대통령 뤼브케 씨가 제일 첫날 저녁에 나를 만나서 한 얘기를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한국엔 왜 학생들이 거리에 뛰어나와서 정치문제에 대해서 자꾸 간섭하기 좋아합니까?” 나한테 이렇게 질문합니다. 나는 다소 창피스럽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해서, “한국의 학생들은 일부 그런 학생이 있지만 대다수 학생들은 다 건실하고 나와서 하는 것은 일부 학생들뿐이다. 당신 나라에도 그런 학생들이 있을 수 있지 않느냐”, 이런 답변을 했더니 독일 대통령이 하는 말이 “내가 알기에는 학생들이 거리에 나와서 정치문제를 가지고 데모를 하고 떠드는 나라치고 잘되는 나라가 없습디다” 나한테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자기 나라 독일은 1차대전 이후 그동안의 전쟁을 두 번 했고 정권이 몇 번 바뀌고 사회에 여러 가지 혼란이 있었지만 1919년에 함부르크항(港)에서 영국 배와 독일 배가 충돌을 했을 때 한 번 학생데모사건이 있은 연후에 그 뒤에 학생들은 한 번도 거리에 나온 일이 없다. 학생들은 어디까지든지 이 시기에는 공부를 해야 되고 배우는 시간이고 실력을 양성해 둘 시기이지 자기들이 직접 이런 문제에 참여할 시기가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알고 있다. 그런데 왜 한국의 학생들은 거리에 나오기 좋아합니까?’
정치인들의 앞잡이가 되지 말라
학생들이 거리에 나와서 떠든다고 해서 난 절대 그 사람들이 애국적인 학생이라고 보지 않습니다. 혹 대통령이 이런 소리 한다고 해서 일부 학생들이 불만을 품을지 모르지만은 나는 오늘 이 자리에서 우리 한국의 일부 철부지한 학생들에게 확실히 이야기합니다. 여러분들이 오늘날 한일문제를 가지고 거리에 나와서 떠든다는 것은 그야말로 일부 정치인들의 앞잡이 노릇밖에 안 된다는 것을 확실히 인식해야 합니다. 한일회담의 내용이 어떻게 되는지 어떤 점이 여야 간에 싸우고 있는 쟁점인지, 내용이라도 알고 떠들어야지 덮어놓고 뭐라고, 요즘에 예컨대 세상이 뒤숭숭하니까 학생들이 거리에 나와서 한번 기분을 풀기 위해서 나가보자는 이런 사고방식을 가진 학생들이 있다면 이것은 한국의 장래를 위해서, 우리 조국의 앞날을 위해서 대단히 걱정되는 일이라 이겁니다. (하략)>
(조갑제) 1960년대에 박정희 대통령이 추진한 대외지향정책 중에서 월남파병과 한일국교수립 문제는 지식인, 학생, 야당의 집요한 반대를 무릅쓰고 단행되었습니다. 박 대통령은 1965년 6월23일 한일 국교정상화 협상이 타결된 것에 즈음에 발표한 담화문에서 열등감과 패배의식을 버리면 일본을 당당하게 상대해 나갈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한일 수교에 즈음한 담화문
(상략) 나는 우리 국민의 일부 중에 한일교섭의 결과가 굴욕적이니, 저자세니, 또는 군사적·경제적 침략을 자초한다는 등 비난을 일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매국적이라고까지 극언을 하는 사람이 있읍니다. 나는 지금까지 그들의 주장이 정부를 편달하고 정부가 하는 교섭의 입장을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는 점에서 이것을 호의적으로 받아들여 왔습니다.
그러나 만일 그들의 주장이 진심으로 우리가 또다시 일본의 침략을 당할까 두려워하고, 경제적으로 예속이 될까 걱정을 한 데서 나온 것이라면 나는 그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왜 일본에 그렇게 자신이 없나?
그들은 어찌하여 그처럼 자신이 없고 피해의식과 열등감에만 사로잡혀서 일본이라면 무조건 겁을 집어먹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비굴한 생각, 이것이 바로 굴욕적인 자세라고 나는 지적하고 싶습니다. 일본사람하고 맞서면 언제든지 우리가 먹힌다 하는 이 열등의식부터 우리는 깨끗이 버려야 합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이제는 대등한 위치에서, 오히려 우리가 앞장서서 그들을 이끌고 나가겠다는 우월감은 왜 가져보지 못하는 것입니까, 이제부터는 이러한 적극적인 자세를 가지고 나가야 합니다.
하나의 민족국가가 새로이 부흥할 때는 반드시 민족 전체에 넘쳐흐르는 자신과 용기와 긍지가 있어야 하고 적극성과 진취성이 넘쳐 흘러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근대화작업을 좀먹는 가장 암적인 요소는 우리들 마음 한구석에 도사리고 있는 패배주의와 열등의식 그리고 퇴영적인 소극주의 바로 그것입니다.
또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비생산적인 사이비 행세 이것들입니다. 또 있읍니다. 속은 텅텅 비고도 겉치레만 번드레하게 꾸미려 하는 권위주의, 명분주의, 그리고 언행불일치주의 이런 것들입니다. 이러한 요소들은 과감하게 씻어버려야 합니다. 그리하여 자신을 가진 국민이 됩시다. 자신은 희망인 것입니다. 희망이 있는 곳에 우리 민족의 힘이 솟아나는 것입니다.
(중략)
일본인들에게도 충고한다
나는 이 기회에 일본국민들에게도 밝혀 둘 말이 있습니다.
일본국민 여러분, 우리와 딩신들 사이에 이루어졌던 불행한 과거를 청산하고, 새로운 선린으로써 다시 손을 마주잡게 된 것은 우리 양국 국민을 위해서 대단히 다행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과거 일본이 저지른 죄과들이 오늘의 일본국민이나 오늘의 세대들에게 전적으로 책임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정식 조인이 이루어진 이 순간에 있어서 침통한 표정과 착잡한 심정으로 과거의 구원을 억지로 억누르고, 다시 손을 잡는 우리 한국국민들의 이 헤아릴 수 없는 심정을 일본국민 여러분들은 그렇게 단순하게 보아 넘기거나 결코 소홀히 생각하여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 두 나라 국민이 참다운 선린과 우방이 될 수 있고 없는 것은 이제부터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이번에 체결된 협정문서의 조문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 당신들의 한국이나 한국국민에 대한 자세와 성의 여하가 문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주시하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주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일본은 역시 믿을 수 없는 국민이다 이러한 대일(對日)불신감정이 우리 국민들 가슴속에 또다시 싹트기 시작한다면 이번에 체결된 모든 협정은 아무런 의의를 지니지 못 할 것이라는 것을 이 기회에 일본국민 여러분에게 거듭 강조해 두는 바입니다. (하략)>
정리/李知映(조갑제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