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남 이승만 대통령을 기리고 대한민국과 북한의 오늘과 미래를 염려하시는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북한주민들의 자유와 인권, 생명을 지키는 데 헌신하시는 존경하는 분들이 많은데, 제게 이 상은 과분하기만 합니다. 어떻게 하면 헌신하시는 분들과 동료들, 새로운 힘이 되고 있는 청년들의 마음을 담을 수 있을지 고민했습니다.
사랑하는 아내도 왔고 동료들도 왔는데, 꼭 모시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한 분이 있습니다. 두 달 전 별세하신 북한인권시민연합 윤현 이사장님입니다. 20년 전인 1999년 저는 대학 3학년생이었습니다. 어떤 일에 삶을 걸어볼 가치가 있을지 알 수 없는 때였습니다. 사회문제에 관심 있는 선배들은 꽤 있었습니다. 대학에서는 기존의 모든 것에 의문을 갖고, 당연하다고 믿던 것들을 회의해볼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은 매력적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비판의식으로 따라 외치도록 종용한 반미(反美), 반일(反日), 反정부와 反자본 구호는 마음에 닿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에 ‘반(反)’을 붙이는 부정적 세계관부터 거북스러웠습니다.
한 가지 유일하게 찬성하고 습관처럼 외치는 것은 있었습니다. 통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곧 답답함을 느꼈습니다. 민주도 좋고, 인권도 좋고, 평화도 좋고, 노동자도 좋고, 통일도 좋은 것이라고 하면서, 모든 것들에 반하는 북한체제는 왜 비판하지 않나 하는 답답함이었습니다. 드문드문 학교로 와서 이념교육을 하던 선배라는 한 사람에게 꾹꾹 참다가 물었습니다. “사람들이 굶어 죽는다 하고, 탈북해오는 사람들도 늘고 있는데 어떻게 봐야 할까요?” 짧고 퉁명스런 그의 대답은 “조국과 민족을 버린 배신자들일 뿐”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선배라는 그 사람의 정체는 확인할 길 없었고, 지금도 알 수 없습니다.
당시에도 도서관에는 북한연구서들이 꽤 있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노동신문과 김일성전집이니 김정일선집이니 하는 선전물들을 짜깁기한 것만 같았습니다. 후에 대학원에 진학했을 때, 그런 연구방식을 소위 ‘내재적 접근법’이라고 주장한다는 것은 기막힌 일이었습니다. 반면 탈북민 수기나 탈북민들을 심층 면담한 논문을 찾으면 보석처럼 반가웠습니다. 북한에서 사신 분들께 직접 사정을 듣고, 실정을 이해하며, 어떤 통일이 우리 세대가 공감할 통일일지 그려보고 싶어졌습니다. 캠퍼스 밖으로 나오는 것만이 답이었습니다.
당시 북한인권시민연합은 온갖 위험이 도사린 중국 등지를 헤매던 탈북민들에게도 빛이었지만, 저처럼 궁금함과 답답함을 느꼈거나,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일을 찾는 청년들에게 빛과 같은 곳이었습니다. 참다운 인권운동가의 길을 걷고 계시던 윤현 이사장님을 만났고, 회원들로부터 옷가지와 구호금을 모아 탈북민들을 구조하고, 모든 것이 낯설고 서툰 대한민국 정착을 돕고 계시던 김영자 사무국장님을 만났습니다. 20년 전 두 분과의 만남과 배움, 물심양면 도와온 수많은 분들과 북한에서 오신 분들과의 대화, 지속되는 울림은 그곳을 거쳐온 수천 명이 넘는 청년들과 탈북청년들을 통해 계속될 것입니다.
20년 전과 지금을 비교해보면 보람도, 아쉬움도 큽니다. 시민사회의 줄기찬 노력으로 국제사회에도, 우리 사회에도, 북한정권에도 미친 압력과 성취, 그로부터의 긍정적 변화가 있습니다. 그러나 엄연한 현실은 북한정권의 폭압적 본질은 그대로이고, 세습독재와 인권범죄는 지속되고 있습니다. 인류역사는 어떠한 사회도 억압이 극심한 상태로 지속될 수 없고, 독재는 반드시 몰락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비통한 것은 대한민국의 대통령과 정치인, 이름 있는 사람들까지 “민족”과 “평화”라는 것으로 포장하고 현실을 오도(誤導)하며, 저 체제의 불법성을 감추고 무수한 피해자들을 외면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돌아오지 못한 숱한 국군포로들과 전시(戰時)와 전후(戰後), 지금도 납북되고 억류되고 있는 수많은 국민들을 방치한 채 종전(終戰)선언이나 평화협정을 거론하는 것은 가만 지켜볼 수 없습니다.
용서와 화해를 거론하는 것도 기만적입니다. 피해당사자들이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해자가 누구인지 밝히지 않은 채 누구를 용서하고 누구와 화해하라는 것인지 반문할 일입니다. 지금 벌어지는 모든 일도 기록하지 않으면, 훗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될 것 같아 걱정입니다. 우남애국상의 선정위원장이신 조갑제 선생님께선 저와 같은 기록자들이라면 전적으로 동의하는 말씀을 하신 적 있습니다. “진실 위에 정의를 세워야지, 정의 위에 진실을 세우려 해선 안 된다. 신념보다 사실이 더 중요하다.” 지금 우리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많습니다.
나라를 사랑하고, 지키고, 민족을 사랑한다는 것은 제게 한없이 무겁습니다. 그럴 수 있는 신념과 능력이 있는지 되묻고 채우겠습니다. 저는 제가 하는 일이 애국인지, 호국인지, 애족의 발로인지 알지 못합니다. 종교적 소명의식도 아니고. 옳은 일이기 때문만도 아닙니다. 피해당사자도 아니어서 피해자와 가족들이 겪은 끔찍한 일들을 듣고 기록해 세상에 알리지만, 고통을 직접 겪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 보니 어떻게 이 일을 시작하게 되었고, 쉽지 않은 왜 계속하는지 물어주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수천 명과 한 수천 번의 약속들 때문입니다. 처음엔 대학생 봉사자로, 앞선 단체에선 실태조사담당자로 수천여 분의 탈북민들을 만났습니다. 슬픔도 기쁨도 마음도 나누었습니다. 5년 전 지금 단체인 전환기정의워킹그룹을 만든 후로는 저보다 더 뛰어난 동료들이 600명이 넘는 탈북민들을 만나왔습니다. 납북피해가족들과 국군포로가족들께서도 강제실종과 억류문제에 관한 조사에 참여하고 도와주고 계십니다.
조사와 기록활동은 문헌이나 기존 기록들을 찾고 정리하는 것만으로는 안 됩니다. 취지와 목표를 듣고 찾아와주시고 고통스런 기억과 심정을 들려주며, 저희가 찾는 것들을 함께 찾아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가능한 일들입니다. 가해자는 응당히 벌하고, 피해자는 합당히 배상받고 치유받도록 하겠다고 마음도 입 밖으로 내어 약속하는 것은 삼가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꼭 이룰 것입니다’ 약속하지 못해도, 매일매일 수많은 분께 암묵적인 약속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저희들의 활동에 대한 기대를 눈물로 나눈 대화로 이해하는 한, 저버릴 수 없는 겹겹의 약속들입니다.
상을 받는다는 것도 여기 계신 분들과의 약속입니다. 지금까지 한 일보다, 할 일이 비할 바 없이 많습니다. 흔들림 없이 더 힘내 일하도록 뒷받침해주시는 것임을 길이 새기겠습니다. 격려를 감사히 받고, 실질적인 결과에 대해선 훗날 냉철히 평가받겠습니다. 70년 넘도록 계속되고 있는 북한 권력자들과 정권범죄, 인권범죄를 추적하고 기록하며, 세상에 알리고, 압력을 높이고, 행동하며, 근본원인들의 종식되도록 정진하겠습니다.
북한에 언제 큰 전환이 일어날지 알 수 없듯이, 저와 동료들이 하는 일도 언제 끝낼 수 있을지 알 수 없습니다. 수십 년이 더 걸리고, 애석하게 제 생에 다 하지 못할 수도 있음을 늘 생각합니다. 하지만 새 세대가 뒤를 잇고, 더 훌륭히 완수하도록 기반도 만들 것입니다. 준비가 미흡하면 어느 날 북한정권이 종식되더라도 어느 것도 해결되지 못한 채 원한과 보복, 갈등이 세대를 이어 대물림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거대한 규모로 우리 앞에 펼쳐지는 제2의 건국기는 꼭 올 것입니다. 미래를 지금 준비하고 앞당기는 것은 다음 세대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뜻있고 역량 있는 청년들이 더 늘고 참여할 수 있도록 격려해주시고, 지혜를 물려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