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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칼럼
차선(次善)의 인생도 살 만하다 엄상익(변호사)  |  2019-10-09
한 정신과 의사의 수필을 읽다가 그의 중학교 2학년 시절의 얘기가 눈에 들어왔다. 전교 1등을 하고 싶어 잠도 줄이고 책상에만 붙어 있었다는 것이다. 수학 실력이 부족해서 문제 유형들을 통째로 외워버렸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목표를 성취했지만 기쁨은 잠시였다는 것이다. 다음 시험에서 밀려날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고 그는 쓰고 있었다.
  
  그걸 보면서 나의 중학교 시절 엉뚱한 시도가 불쑥 기억 속에서 떠올랐다. 나는 꼴등을 하기로 결심했다. 책가방에 교과서와 공책을 넣지 않고 학교로 갔다. 수업시간에 선생님의 말을 듣지 않았다. 시험 때면 이름을 쓰고나서 5분 만에 교실을 나왔다. 바로 나오면 시험거부나 반항으로 보일 수 있기 때문이었다. 텅 빈 운동장을 걸어 나오는 순간이었다. 내게 신비한 편안함이 다가왔다. 꼴등에게 다가오는 그런 감정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청소년기 순간적인 일탈이지만 그 결과는 작지 않았다.
  
  나는 어머니나 일등인 친구들이 가는 명문대 최고의 인기학과에는 들어가지 못했다. 스스로 아예 차선의 선택을 했었다. 대학에 들어가서 또 엉뚱한 짓을 했다. 음악을 좋아하는 친구들이 그룹사운드를 결성해서 발표회를 하고 연주여행도 하자고 했다. 대학 고시반에 자리를 잡고 있던 나는 법서를 옆으로 밀어 던진 채 이어폰을 귀에 꽂고 그룹사운드 레드제플린이나 롤링스톤즈, 비틀즈의 곡들 악보를 따기에 바빴다. 연주를 하러 다니면서 나는 음악성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다른 친구들은 흐르는 멜로디 속에 영혼을 실어 유영을 하고 있었다. 나만 멀쩡히 밖에서 메마른 기계음을 내는 것 같았다. 좀 더 연습하면 솜씨가 늘긴 하겠지만 나는 예술가적 자질이 없었다. 연주 대신 좋은 음악을 즐기면 된다는 차선책을 택하고 물러 나왔다.
  
  뒤늦게 다시 합류한 고시에의 도전은 친한친구 그룹 중에 제일 늦게 붙었다. 벌써 판사가 된 친구들이 시험장으로 응원을 왔고 행정고시에 합격한 친구가 시험장 전체를 지휘하는 감독관이 되어 있었다. 뒤늦게 개인법률사무소를 열고 변호사일을 시작했다. 거기에도 뒤에 있는 주자의 편안함이 존재했다. 판사를 하는 친구들은 뒤처지지 않기 위해 기록을 싸 들고 집에 와서 밤 세시에 일어나 판결문을 쓴다고 했다. 다른 판사들에게 질 수 없다는 경쟁이 거기에도 있었다.
  
  변호사가 된 나는 문학분야를 곁눈질 했다. 일류작가를 만날 때마다 ‘역시 대가는 다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에게서 천재성이 느껴졌고 나는 예술가적 자질이 없다는 뼈아픈 자기 성찰을 했다. 차선책을 택하면서 스스로를 위로했다. 변호사로 일하면서 의뢰인의 굴곡 많은 삶과 사정을 밀도 있게 표현하려면 문학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생각이었다. 인생의 긴 강물을 흘러내려 노년이 되어 되돌아보면 나는 항상 차선을 선택해 왔던 것 같다. 그러나 손해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세상에서의 성공과 출세에 있는 내 시간과 능력을 모두 바치다 보면 옆을 바라보지 못하게 된다. 밤의 개울에 반사되는 반딧불도 바닷가로 밀려오는 파도도 놓친다. 인생의 다른 가치도 잃어버릴 수 있다. 변호사도 일류가 되려고 하지 않았다. 의뢰인의 아픔에 공감해 주면서 “나는 더 아픈 적이 있소” 하고 위로해 주는 정도였다. 그러면서 그의 고통을 어떻게 설득력 있는 문장으로 써서 판사에게 제출할까 고민했다. 인생을 차선으로 살아도 괜찮은 게 아닐까.
  
삼성전자 뉴스룸
  • 정답과오답 2019-10-09 오후 10:45:00
    ,근사하군요 수많은 저같은 아웃사이더에게
    그야말로 큰 위로가 되는 글입니다
    감사합니다
    어찌 되었던 하나의 인간이 되어
    인생의 쓴맛 단맛을 볼수 있어서 행복 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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