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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다혜가 다닌 일본의 극우대학(國士館)은 조선 침략 인맥이 설립 ‘토착왜구’ 연구(中) 趙甲濟  |  2020-06-20


   反日 대통령의 딸이 다닌 일본의 極右대학
 
 지금부터는 진짜 ‘친일파’와 ‘토착왜구’ 이야기이다. 작년 초 산케이 신문의 서울특파원 구로다 가쓰히로 기자는 칼럼에서 이렇게 썼다.
 <대통령 부인(김정숙 여사)은 부산에서 일본 전통 다도(茶道)의 맥을 잇는 우라센케(裏千家)의 다도 교실에 열심히 다녔다고 한다. 딸 다혜 씨는 일본의 고쿠시칸(國士館) 대학에 유학했다. 이런 것을 보면 문 대통령의 가정은 의외로 친일적(?)인지도 모르겠다. 일반 국민과 마찬가지로 가족과 측근은 일본을 즐기고 있는데, 文 대통령 본인은 친일규탄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를 ‘관제(官製) 민족주의’라고 비웃는 목소리도 자주 들린다.>
 짧지만 참 아픈 지적이었다. 조선일보 정권현 논설위원은 자신의 칼럼에서 <기사가 나간 지 열흘이 지나도록 청와대가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을 보면 ‘가짜 뉴스’는 아닌 것 같다>고 했다. 구로다 기자가 부산에 취재차 갔다가 현지에서 들었다고 했고, 다른 칼럼에선 다혜 씨에 대해 ‘일본 유학 경험도 있는 국제파 같다’고 썼다가, 이번 칼럼에선 ‘고쿠시칸 대학’이라고 콕 찍었기 때문이란 것이었다.
 주일 특파원 출신인 정권현 위원은 <도쿄에 있는 이 학교는 일본의 메이지(明治)유신 이래 대륙 침략의 향도 역할을 한 우익 단체 현양사(玄洋社) 계열의 인사들이 설립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고 했다. ‘반일(反日) 대통령’으로 알려진 문재인 대통령의 딸이 일본 대학에, 그것도 우익 세력이 설립한 대학, 즉 유명한 극우대학에 유학했다면 일본에서도 당연히 화제가 되었을 것이다.
 나는 구로다 기자에게 전화를 해서 어떻게 확인했느냐고 물었다. 설명은 납득이 갔다. 문다혜 씨는 도쿄에 있는 고쿠시칸(國士館) 대학에 편입하여 21세기 아시아학부에서 졸업하였다는 것이 추가설명이었다. 이 학교는 일본에선 정평이 나 있는 국가주의적 성향의 건학(建學) 이념을 가진 대학이다. 1917년에 설립된 배경에는 조선 및 중국 침략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 극우적 결사체 현양사 인맥의 역할이 있고 이 대학의 지금 교가(校歌)엔 메이지유신의 사상적 지도자 요시다 쇼인 이름이 나온다. 요시다의 제자들 중엔 이토 히로부미 등 조선 침략과 관련된 인사들이 많다. 민주당의 이해찬 대표는 미래통합당을 가리켜 ‘토착왜구’라고 부른 적이 있다. 정권 주도의 반일 노선에 제대로 반기를 든 적도 없는 정당을 그렇게 부른다면 문재인 일가도 ‘토착왜구’로 불려야 하는 것 아닌가? 그래서 문다혜 씨가 다닌 극우대학의 뿌리를 따라가 보았다.
 
  


  


    조선 침략 인맥과 닿아 있다
 
 우선 이 대학 설립의 이념적 배경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현양사를 살펴본다. ‘대륙낭인’이란 말과 연관되기도 하는 이 조직은, 후쿠오카 무사 출신들이 주도하여 1881년에 만들어졌다. 아시아주의를 표방하면서 대륙진출 및 조선 침략에 핵심적 역할을 한 인물들을 배출하였다. 창립 멤버 중엔 스기야마(杉山茂丸), 도야마(頭山満), 우치다(内田良五郎-内田良平의 父) 등 중국 및 조선 침략과 관련된 인사들이 있다. 이 결사체 출신들은 군부, 관료, 재벌, 정계(政界)에 진출 청일전쟁, 러일전쟁, 한일합병, 제1·2차 세계대전에서 활동하였다. 현양사의 강령은 ‘황실을 받들고, 조국을 존중하며 인민의 권리를 고수한다’이다.
 현양사가 내건 유명한 슬로건은 ‘대(大)아시아주의’인데, 이들은 조선의 친일(親日) 개화운동가 김옥균(金玉均)과 박영효(朴泳孝)를 비호하였다. 특히 우치다 료헤이(内田良平)는 현양사의 해외지부 격인 흑룡회(黒龍会)를 조직, 조선의 대중조직인 일진회 이용구(李容九)를 포섭, 한일합병에 이용하였다. 러일전쟁 때 활약했던 아카시 모토지로(明石元二郎)는 현양사 출신 군인으로서 1910년 7월 데라우치(寺内正毅) 통감 직속 헌병사령관 및 경무총감으로 조선에 부임, 한일합병과 무단정치를 주도하였다. 현양사의 사상에 공감한 시바타(柴田徳次郎)에 의하여 도쿄 부근 학생들을 중심으로 조직된 것이 청년대민단(靑年大民團)이다. 1917년, 이 조직은 현양사의 사상을 청년들에게 교육하기 위하여 사숙 고쿠시칸(私塾國士館)을 설립하였다.
 이런 관계로 태평양 전쟁에 패전한 이후엔 군국주의적이라고 하여 교명(校名)을 쓰지 못한 때도 있었다. 전범(戰犯) 비슷한 취급을 받았다는 이야기이다. 일본 해군의 욱일기(旭日旗)를 전범 깃발이라 주장하는 한국인들 눈에는 고쿠시칸 대학도 전범이고 이 학교에 다닌 문다혜 씨와 이를 허용한 아버지도 ‘친일파’나 ‘토착왜구’로 분류되어야 공평하다. 온건한 성품의 한 일본인 교수는 “내 딸이 그 대학에 가려고 했다면 말렸을 것이다”라고 했다. 이 대학 출신들은 지금도 국사(國士) 기질이 있어서인지 공무원으로 많이 취직한다.
 
 
 皇國에 목숨 바칠 대장부를 기르는 대학
 
 이 대학의 홈페이지에는 ‘건학(建學)의 유래와 이념’ 항목이 있는데 이런 대목이 있다.
 <창립자들이 목표로 한 것은 요시다 쇼인(吉田松陰)의 정신을 모범으로 삼아 하루하루의 실천 속에서 심신을 단련하고 인격을 도야하며, 국가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지력(智力)과 담력(膽力)을 구비한 인재 ‘국사(國士)’를 양성하는 것이다.>
 교장(校章)에 대한 설명은 이렇다.
 <고쿠시칸 창설 동인들은, 격동의 막말기(幕末期)에 사상가 교육가로서 준열한 삶으로 일관한 요시다 쇼인의 송하촌숙(松下村塾)을 계승하는 학숙을 육성하려 하였다. 초대 관장인 시바타(柴田德次郎)는 새빨간 단풍나무를 보고 요시다 쇼인의 일편단심을 연상, 이를 교장(校章) 도안으로 채택하였다. ‘칠생보국(七生報国)의 무사들을 상징하는 일곱 조각의 단풍잎’.>
 반일(反日) 대통령의 딸이 듣고 불렀을지도 모르는 교가(校歌, 館歌라고 부름)의 한 구절은 <황국(皇國=일본)에 목숨 바칠 대장부를 기르는 이곳 무사시에 자리 잡은 고쿠시칸>이다. 설립자 시바타(柴田德次郎)의 작사인데, 황국(皇國)에 대한 충성심을 노래한 것이다. 
  (1)
   안개를 헤치며 솟아오른 해 우러르고
   나뭇가지 높이 뜬 달빛을 받으면서
   황국(皇國=일본)에 목숨 바칠 대장부를 기르는
   이곳 무사시(학교가 있는 곳)에 자리 잡은 고쿠시칸 
   (2)
   쇼인(松陰, 요시다 쇼인吉田松陰을 지칭)을 모신 사당(祠堂)에서 기개(氣槪) 북돋우니
   고도쿠지(豪德寺, 무사시에 있는 유명한 절) 종소리에 마음 맑아지고
   아침이나 저녁이나 내쉬는 숨소리는
   후지산(富士山) 넘어오는 하늘의 바람 
   (3)
   저마다 사는 목숨 하찮은 땔감 삼아
   커다란 깨달음의 불꽃을 지펴서
   방방곡곡 온 세상 모조리 태워버리자
   지심(知心)의 불길이 활활 타오르듯
 문다혜 씨가 다녔다는 21세기 아시아학부는 <일본에 대하여는 물론이고 아시아 문화나 역사적 배경, 가치관, 습관에 대하여 누구보다도 이해가 깊은 학생들을 육성하여 장래 아시아와 관련 있는 분야에서 활약할 수 있는 인재를 육성하는 곳이다>.
  


  

 
 아베가 존경하는 요시다 쇼인을 배우는 대학
 
 반일 대통령의 딸이 다닌 일본 극우대학의 학과(學科)가 아시아학부라고 하니 묘하다. 이 대학의 설립 배경 조직인 현양사의 대륙 및 조선 침략 명분이 ‘아시아주의’였기 때문이다. 이 이념이 21세기적으로 수정된 것인지 알 수 없으나 일본인들의 집념을 느끼게 하는 교풍(校風)이다. 아베 수상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요시다 쇼인이다. 친일청산을 부르짖는 문재인 대통령의 딸이 다닌 학교가 그 요시다 쇼인의 정신으로 학생들을 교육하는 곳이라는 점에서 문재인 일가는 의외로 친일적이란 구로다 기자의 지적이 날카롭다.
 요시다 쇼인을 정한론(征韓論)의 발상자라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는데, 30세에 처형된 그가 주력하였던 것은 일본의 개혁이었다. 그 제자들 중엔 조선병합에 결정적 역할을 한 이토 히로부미, 이노우에 가오루, 아먀카다 아리토모 등이 있다. 요시다는 일본의 정치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지만 한국인으로선 복잡한 생각을 갖게 하는 사람이다.
 나는 2005년에 일본 자민당 간사장 대리였던 아베 신조 씨(현 총리)를 인터뷰했는데 “정치인으로서 마음에 새기고 계시는 말이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저의 고향은 야마구치현, 도쿠가와 시절엔 조슈 번(長州藩)입니다만 메이지유신의 지사(志士)들을 많이 길러낸 요시다 쇼인(吉田松陰)이란 선생이 계셨습니다. 이분이 인용한 맹자(孟子)의 말을 가슴에 새기고 있습니다. ‘성의를 다하면 움직이지 못할 것이 없느니라(至誠而不動者未之有也)’는 말씀입니다.”
 아베 수상은 야마구치(메이지유신 전엔 조슈 번) 출신으로선 여덟 번째 총리이다. 요시다 쇼인이란 인물이 있었기에 이 작은 지역이 일본 역대 정권의 핵심인물들을 그렇게나 많이 배출할 수 있었다. 요시다는 도쿠가와 막부(幕府)를 타도하고 새 질서를 만들어야 한다는 신념을 가르쳤다. 조슈 번에서 서당 비슷한 송하촌숙(松下村塾)을 열어 문하생들을 교육한 지 4년째 되는 해, 즉 1859년 막부에 의해 역모죄로 몰려 30세에 처형되었다. 그가 가르친 조슈 번의 제자들이 지금의 가고시마(규슈), 고치(시고쿠) 무사들과 손잡고 막부를 타도, 천황 중심의 근대 국민국가를 만드는 메이지유신의 주역이 되었다.
 그의 송하촌숙 출신 43명의 제자들은 난세(亂世)에 어떤 운명을 맞았는가? 할복자살 6명, 전사(戰死) 1명, 반란을 일으켰다가 토벌되어 사망(討死) 4명, 참수형 1명, 옥사 1명. 13명이 요사이 말로 하면 비명횡사(非命橫死)했다. 요시다의 제자들 중 메이지유신의 성공으로 출세한 사람은 이토 히로부미 등 5명 정도이다. 역사를 움직이는 데는 교육이 절대적으로 중요하고 인명(人命) 희생이 요구된다는 것을 증명하는 통계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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