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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수엘라行 급행열차 문재인 정권 조갑제, 김영남  |  2020-06-30

김정은을 머리에 넣고 다니는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의 머리에는 김정은밖에 없다”든지, “나라까지 기부하는 통 큰 지도자”라는 우스개의 대상이 되고 있다. 지난 1월10일 신년 기자회견은 이런 세평(世評)을 생각하게 했다. 그는 모두(冒頭)연설에서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은 남북 모두에 이익이 되었다면서 “북한의 조건 없고 대가 없는 재개 의지를 매우 환영”한다고 했다. “이로써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의 재개를 위해 북한과의 사이에 풀어야 할 과제는 해결된 셈”이고 “남은 과제인 국제제재 문제의 조속한 해결을 위해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와 협력해 나가겠다”고 했다. 김정은의 시각으로 한 발언이다.
 금강산 관광은 2008년에 북한군이 한국 관광객을 경고 없이 사살하여 중단되었다. 개성공단은 북한이 2016년에 핵 및 미사일 실험을 하니 피해 당사국인 한국은 국제사회와 공조하여 핵미사일 개발자금으로 전용될 수 있는 자금줄을 차단한 것이다. 귀책사유가 있는 쪽은 북한이다. 그 북한이 조건과 대가 없이 재개를 요청한 것을 환영한다는 말은 북한이 피해자이고 대한민국은 가해자라는 이야기와 비슷하다. 강도살인범이 피해 가정의 주인에게 “우리 무조건 대화합시다”고 하니 그 주인이 경찰서를 찾아가 수배령을 해제해달라고 부탁하는 꼴이다. 이날 기자회견 모두 연설에서 문 대통령은 작년에 이어 ‘자유’라는 말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대한민국의 최고가치인 ‘자유’를 극도로 기피하는 마음과 자유의 적(敵)인 김정은에 대한 호감이 결합되어 정책으로 나타나고 있다.

 
두 개의 나라
 
 <중남미에 두 나라가 있다. 하나는 이 지역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강력한 민주주의 체제를 갖고 있다. 역내(域內) 어느 국가보다 사회 안전망이 잘 갖춰져 있다. 모든 국민들에게 무료 의료혜택과 고등교육을 지원하겠다는 약속을 지켜나가려 하고 있다. 언론은 자유롭고 정치체제도 투명하다. 야당은 선거에서 격렬하게 싸울 수 있고 평화로운 정권 교체가 이뤄지기도 한다. 이 국가는 다른 중남미 국가에서 빈발하는 군부독재를 따라가지도 않았다. 오래된 미국과의 동맹과 무역 및 투자 관계로 인해 많은 다국적 기업들의 중남미 본사가 이곳에 자리 잡고 있다. 이 나라는 남미에서 최고의 사회기반시설을 갖추고 있다. 물론 부패와 불공정이 있는 개발도상국임에는 이견이 없지만 다른 후진국과 무엇을 비교해 봐도 앞서 있는 것이 사실이다.  
 또 다른 국가는 중남미에서 가장 빈곤한 국가이자 가장 새롭게 독재정권이 들어선 곳이다. 학교는 학생이 줄어들어 텅 빈다. 수십 년간 이뤄진 투자 부족과 부패, 말라리아와 홍역과 같은 질병 창궐로 의료체계는 무너져버렸다. 극소수의 엘리트층만이 제대로 식사를 할 수 있다. 세계에서 살인사건이 기장 많이 일어나는 곳이다. 이번 세기에 중남미에서 가장 많은 난민을 배출한 국가이기도 하다. 지난 몇 년 사이 수백만 명이 이 나라를 떠났다. 부정선거가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다. 정부의 직접적인 통제를 받지 않는 소수의 언론마저도 탄압을 우려해 정부측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 2018년 말 기준 이 국가의 경제력은 5년 전과 비교해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코카인 밀수의 허브로 사용되고 있고 정치 엘리트층의 핵심 인사들이 마약과 관련해 미국에서 기소를 당하기도 했다. 물가는 25일마다 두 배로 뛴다(올해는 물가상승률이 1000만 퍼센트로 예상된다). 주요 공항에서도 사람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일부 항공사들이 소수의 승객들만을 태운 채 이 공항을 찾는다.
 이 두 나라는 같은 국가이다. 전자(前者)는 1970년대 초반의 베네수엘라이고 후자(後者)는 지금의 베네수엘라이다.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음에도 이렇게 급변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이상의 글은 미국의 대표적인 외교전문지 <포린 어페어스(Foreign Affairs)>에 최근 실린 ‘베네수엘라의 국가적 자살’이라는 논문 일부이다. 전쟁이 나지도 않았는데 전쟁을 겪은 나라보다 더 망가진 이 나라는 왜 이렇게 되었는가를 추적하다 보니 한국의 미래를 전망하는 데 하나의 참고가 될 것 같아 소개한다.
 
 
차베스와 카스트로의 만남, 비극의 시작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두 번째 임기 취임식이 1월10일에 있었다. 베네수엘라는 날로 황폐해지고 있다. 좌파포퓰리즘은 전쟁보다 더 무서운 피해를 끼친다는 증거이다. 작년의 연간 물가상승률은 약 140만%, 인구의 10분의 1인 300만 명이 콜롬비아를 비롯한 이웃 국가로 탈출했다. 500만 명 이상이 추가로 탈출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고 한다. 국민의 64%는 기근으로 몸무게가 11kg 이상 줄었다. 세계 최대 석유매장량을 가진 나라가 이 모양이다.  
 베네수엘라가 국가적 자살의 길로 가게 된 데는 전임 우고 차베스 대통령과 이를 승계한 마두로 대통령에게 책임이 있지만, 이 두 사람의 배후에서 이 나라를 사실상 식민지로 조종한 쿠바의 역할이 매우 컸다. 일부 전문가들은 베네수엘라에서 발생하고 있는 모든 재앙에 쿠바의 지문(指紋)이 묻지 않은 곳이 없다고도 주장한다. 쿠바가 베네수엘라의 국가 지도부 및 보안 정보기관을 장악, 조종하고 있는 것은 북한 노동당정권이 남한의 좌파정권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를 추정하는 데 하나의 시사점이 될 것이다.
 차베스는 1954년 시골 지역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직업군인의 길을 걸었고 소수의 급진좌파 세력들과 함께 민주주의 정권을 뒤집으려는 계획을 짰다. 1992년 4월 그의 쿠데타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고 수감생활을 시작했다.  
 1994년 출소한 그는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를 찾아가 극진한 환영을 받았다. 차베스는 돈도 정치경험도 조직적인 지지세력도 없었지만, 카스트로는 차베스의 잠재력을 바로 알아봤다고 한다. 카스트로와 차베스는 배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을 나눠 먹으며 시골에서 태어나 지금 그 자리에 이르기까지 걸어온 길에 대해 정답게 이야기를 나눴다. 이들은 야구투수로서 훌륭한 재능을 갖고 있었지만 정치를 위해 메이저리그의 꿈을 포기했다는 공통점도 있었다.
 차베스가 공산주의자가 된 배경에는 시몬 볼리바르가 있다. 볼리바르는 19세기 초 중남미를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시키려고 한 영웅이다. 차베스는 이런 볼리바르 이미지를 대중에 팔았다. 차베스는 대통령 선거에 출마, 부패를 청산하고 원유로 번 부(富)를 가난한 사람들에게 분배하겠다는 공약을 내놨고 대승했다. 그는 1999년에 대통령 당선인 자격으로 쿠바를 다시 찾았다. 차베스는 쿠바를 가리켜 베네수엘라가 항해(航海)에 나서야 할 ‘행복의 바다’라고 했다.
 친미(親美)노선의 베네수엘라는 1959년 카스트로의 쿠바 혁명 이후 경제 지원을 중단하고 거리를 둬왔었다. 1974년에 양국간 국교 수립이 이뤄졌지만 차베스의 대통령 당선 전까지의 관계는 매우 제한적이었다. 차베스 정권 출범 이후 두 나라는 밀착하기 시작한다.
 

후계자로 쿠바의 심부름꾼 선택
 
 1920년대부터 약 50년간 급격하게 성장해온 베네수엘라의 경제는 1970년대 들어 동력을 잃기 시작했다. 서민층이 중산층으로 올라가는 길 역시 좁아졌다. 이때 차베스는 양극화(兩極化)를 강조하며 유권자들을 사로잡았다. 경제학자인 라카르도 하우스만과 프란치스코 로드리게즈는 <포린 어페어스> 기고문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베네수엘라는 1970년에 들어 중남미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가 됐고 세계에서 20대 부자 국가 반열에 들었다. 베네수엘라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스페인과 그리스, 그리고 이스라엘보다 높았고 영국보다는 13% 적은 수준이었다. 1980년대 초 국제유가(油價)시장이 침체되자 고속 성장 추세가 멈추게 됐다. 원유 수출 이익이 줄어든다는 것은 정부 지출 감소와 사회복지 프로그램의 축소, 환율가치 하락, 물가상승, 금융위기, 그리고 높은 실업률과 서민층의 고통 확대를 뜻하였다.>
 
 차베스는 양극화를 줄이고 복지를 강화하겠다고 국민들을 현혹시켰고 정부 지출을 계속 늘렸다. 그는 2013년 사망할 때까지 14년간 좌파포퓰리즘으로 베네수엘라를 통치했다. 차베스는 2011년 암 진단을 받았다. 브라질과 미국의 최고 전문의들이 치료해주겠다고 했지만 그는 믿을 수 있는 곳은 쿠바뿐이라고 판단, 쿠바에서 치료받았다. 차베스는 2012년 12월8일 마지막 TV 연설에서 당시 부통령이었던 마두로를 대통령으로 선출해줄 것을 국민들에게 호소했다. 그의 사망 사실은 2013년 3월5일에 공개됐고 마두로는 그해부터 대통령직을 맡았다.  
 마두로도 차베스와 마찬가지로 공산주의자였다. 10대에 수도 카라카스에서 親쿠바 성향의 마르크스당에 가입했다. 20대에는 대학에 진학하는 대신 쿠바에 가서 혁명가 교육을 받았다. 그는 2006년부터 2013년까지 차베스 밑에서 외교장관으로 활동했다. 차베스와 쿠바에 대한 무조건적인 충성심을 보여줬고 이 때문에 후계자로 발탁된 것이다.
 

베네수엘라는 원유를, 쿠바는 保安전문 인력을 제공
 
 쿠바와 베네수엘라의 관계는 비대칭적으로 이뤄졌다. 경제적으로는 베네수엘라에 대한 쿠바의 의존도가 컸다. 2012년 기준 양국(兩國)의 무역 규모는 쿠바 GDP의 20.8%를 차지했으나 베네수엘라에는 GDP의 4% 수준이었다. 베네수엘라는 쿠바에 원유를 수출했는데, 대금의 60%만 수출 시점에서 90일 이내에 지불하도록 했고 나머지는 25년간 1%의 이율로 지급하게 했다. 베네수엘라의 對쿠바 원유수출은 2003년 기준 매일 3만 8000배럴이었다. 이 수치는 2008년에 들어 9만 7000배럴로, 2012년에는 10만 4000배럴로 늘었다. 쿠바 원유 수요의 61%를 베네수엘라가 공급했다.
 정치적으론 쿠바에 대한 베네수엘라의 의존도가 더 컸다. 베네수엘라는 쿠바로부터 의료진과 교사 그리고 정권을 방어하기 위한 전문인력을 제공받았다. 첩보인력과 군 관련 자문관을 데려와 현(現)정권을 전복하려는 세력을 막도록 했다.
 숫자에 대해선 다소 여러 의견이 있지만 쿠바는 약 4만 명의 전문인력을 베네수엘라로 보냈다. 이중 75%는 의료 관련 종사자인 것으로 알려졌다. 베네수엘라는 이들의 인건비로 연간 54억 달러 정도를 쿠바에 지급한다. 2010년 베네수엘라는 쿠바 전문 인력 한 명당 매월 1만 1317달러를 쿠바 정부에 지불했다. 베네수엘라 현지에서 근무하는 쿠바인 의사의 월급은 425달러에 불과하지만 쿠바에서 받던 월급 64달러보다는 훨씬 많은 금액이었다. 나머지는 쿠바 정권의 손으로 들어갔다. 북한정권도 해외송출 인력의 봉급에 대하여 같은 착취 수법을 쓴다.
 

베네수엘라를 사실상 좀비처럼 통치하는 쿠바
 
 쿠바에서 파견된 전문인력 중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은 것은 베네수엘라 정권을 지키는 데 투입된 정보요원 및 軍 자문관들이다. 이들 규모가 만 명 이상이란 주장도 있다. 약 400명은 대통령 경호실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쿠바 정보요원 및 군 자문관들은 베네수엘라의 법무부와 정보당국, 군 기관에 파견되어 있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쿠바 요원들이 자국(自國) 내에서 총기를 소지하고 사람들을 체포할 수 있는 권한까지 주었다. 이들은 중남미로 송출되는 방송에도 개입, 親쿠바, 親베네수엘라 성향의 보도를 하도록 조종한다. 쿠바는 과거 제국주의 국가들처럼 베네수엘라를 사실상의 식민지로 통치하기 시작했다. 
 쿠바는 자국(自國)에서 실험하여 성공한, 군사 쿠데타를 막는 노하우을 베네수엘라에 수출, 마두로 정권을 유지시켜주고 있다. 마두로 정권은 우호적인 장교들을 부자로 만들어줬다. 베네수엘라 군대는 장군 숫자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 미군 장군의 수(數)보다 많다. 정권은 말을 듣지 않는 고위 장교들을 감옥에 가두고 처형함으로써 정부에 대항하려는 의지의 씨를 말렸다.
 루이스 알마그로 미주기구(OAS) 사무총장은 지난해 12월 베네수엘라에 파견된 쿠바 전문인력들을 공개적으로 비판한 바 있다. 알마그로 사무총장은 베네수엘라 등에서 일어나고 있는 反인도주의적 범죄의 문제점을 제기하며 약 4만 6000명의 쿠바 전문인력이 베네수엘라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베네수엘라의 신경계(神經系)를 장악한 쿠바 정보요원과 군 자문관의 수가 약 1만 5000명에 달한다며 ‘베네수엘라에 있는 쿠바 점령군’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들 점령군은 고문 방법을 가르치고 있다”고도 했다. 쿠바는 이런 주장은 근거가 없다고 일축하고 있다.

 
장군의 폭로 “9만 명의 쿠바인력이 임무 수행 중”
 
 쿠바와 베네수엘라 정부 모두 이 같은 사실을 부인하고 있는 가운데 2017년 흥미로운 증언이 나왔다. 베네수엘라 군의 소장 출신인 안토니오 리베로 장군이 미국 등에서 열린 인권 행사들에 참여해 쿠바의 전문인력 송출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2010년 기준 약 9만 2700명의 쿠바인들이 (사회주의) 정권의 모든 분야와 부문에 침투,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이 중 약 3000명은 정보 분야 전문가로 활동하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증언했다. 쿠바인들이 국가 안보와 정보 수집 관련 기관에 들어가 정치인들과 야당 인사 및 사업가들을 감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회주의 정권을 유지해나가기 위해 일반 국민 역시 감시 대상으로 삼고 있다고 한다.
 베네수엘라는 경제가 심각하게 악화됐음에도 불구하고 쿠바에 대한 원유 공급을 계속하고 있다. 미국 언론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하반기에도 매일 5만 5000배럴의 원유를 쿠바로 보냈다. 연간 12억 달러어치. 미국 워싱턴에 위치한 자문회사인 인터아메리칸트렌드의 안토니오 데라 크루즈 대표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마두로는 슈퍼마켓에 진열된 물건이 고갈돼도 쿠바에 대한 원유 수출을 멈추지는 못할 것이다. 쿠바가 마두로 정권 유지의 대들보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쿠바의 지원이 없었다면 마두로는 이미 오래 전에 물러났을 것”이라며 “쿠바는 마두로가 앞에 닥친 폭풍을 헤쳐 나가며 정권을 유지할 수 있도록 탄압방법을 제공해주고 있다”고 했다.

 
암살 시도·핵심 인사 대탈출, 마두로의 미래는?
 
 마두로 정권에 대한 국제사회의 압박도 거세다. 중남미 14개국 연합체인 리마그룹은 재임하는 마두로를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며 권력을 의회에 넘길 것을 요구했다. 페루도 미국과 유럽연합을 따라 베네수엘라 정권 인사들이 자국(自國)을 방문하거나 금융 거래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데 동참했다. 미국은 각종 제재를 통해 베네수엘라의 기업들을 압박하고 있다.  
 마두로의 가장 큰 위협은 정권 내부에 있다고 전문가들은 주장한다. 베네수엘라는 원유 생산과 밀수, 불법 마약거래 등을 통해 정권을 유지해왔다. 쿠바 정보요원들은 돈의 힘으로, 마두로 대통령을 타도하려는 음모를 사전에 탐지해왔다. 그러나 경제난으로 자금이 부족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마두로에 대한 공격 시도가 더욱 증가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지난해 8월 드론을 사용한 마두로 암살 시도가 그런 예이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는 이 음모에 가담한 것으로 알려진 수십 명의 베네수엘라 군인들이 고문을 받았다고 보고했다.
 정권 핵심 인사들의 탈출 역시 마두로 정권에 위협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여행금지령이 내려진 상황에서 이들은 급변 사태가 발생하면 베네수엘라를 탈출하지 못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마두로 대통령이 반대 세력과 타협하고 정권을 넘겨주면 자신들의 운명이 어떻게 처리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사법기관을 비롯한 고위직들의 탈출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6일 베네수엘라 대법원 판사 출신인 크리스천 제르파는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의 공식석상에 나와 마두로를 공개 비판하기도 했다.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마두로가 가장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대법원에 있는 그의 노예들이 아니라 주변 측근들”이라고 전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마두로 정권 핵심 인사들에게 제재를 가하는 등 압박을 늘려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남미 국가 지도자들과 만날 때마다 베네수엘라 사태와 관련해 역내 국가들이 더 많은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해왔다. 그는 군사수단을 배제하지 않을 것이라 말하기도 했다.
 미국의 중남미 전문가들은 마두로를 축출하는 것도 필요는 하지만 베네수엘라를 주무르고 있는 주축, 즉 쿠바의 영향력이 사라져야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된다고 지적한다.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 국제개발처(USAID) 중남미국의 부국장을 지낸 호세 카디나스 씨는 최근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기고문을 통해 ‘쿠바를 테러지원국 명단에 재지정하고 베네수엘라에서 일어나는 쿠바 요원들의 정보수집 활동에 대한 증거를 수집해 압박에 나서야 한다’고 조언했다. 베네수엘라의 국가적 자살 책임을 쿠바에 직접 물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쿠바가 베네수엘라를 먹듯이 북한이 한국을 먹는다?
 
 이 글을 여기까지 읽은 독자들은 한반도 상황과 유사점이 있다는 점을 느끼게 될 것이다. 쿠바가 ‘베네수엘라의 주사파’ 차베스와 마두로를 조종, 이 나라를 먹었듯이 북한도 한국을 먹을 수도 있겠다는 불안감을 점검해본다.  

1. 쿠바와 북한은 공산주의 체제이고, 혁명기지이다. 쿠바의 카스트로는 제3세계 혁명의 지도자를 자처하였고 김일성 3代는 한반도 공산혁명의 완수를 체제의 존립 목적으로 삼았다.

2. 차베스와 마두로는 젊었을 때부터 공산주의자이고 카스트로의 이념적 제자이다. 두 사람은 조국인 베네수엘라보다 카스트로의 쿠바를 더 좋아한다. 한국에도 주사파로 불리는 김일성주의자들이 민주투사로 위장하여 정권·정당·언론·노동운동·NGO 등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3. 차베스와 마두로는 쿠바의 지도를 받아 베네수엘라를 운영하면서 정권유지를 위한 보안(保安) 기능(정보·수사·군대)에까지 쿠바의 전문인력을 파견 받아 핵심 자리에 앉히고 있다. 한국에서 김일성주의자들이 정권을 확실하게 장악, 북한정권과 낮은단계연방제를 이룬다면 한국의 정보·군대·수사부문뿐 아니라 노조나 교육기관까지도 북한의 지령을 받는 신세가 될지 모른다.
 
4. 쿠바는 베네수엘라의 기름을 거의 공짜로 얻어 쓰는 대가로 보안요원들을 보내 마두로 정권을 지켜주는 역할을 한다. 가령 김일성주의자들이 대한민국의 사령탑을 장악하면 북한에 국부(國富)를 퍼주는 대가로 북한의 핵우산 밑으로 들어가 안보를 보장 받고 북한의 공작원들을 파견 받아 정권에 위협이 되는 군대와 국민들을 감시, 견제할지 모른다. 이를 남북협력으로 포장할 수 있다.
 
5. 6·15, 10·4. 4·27 선언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민족경제의 균형발전에 의한 공동번영”이나 “유무상통 정신”은 쿠바-베네수엘라 모델이 아닐까? 한국의 막강한 경제력으로 북한정권을 돕고 그들의 지령을 받아 사회주의식으로 경제를 운영하면 한국도 베네수엘라처럼 못살게 되어 남북이 비슷해지는, “민족경제의 균형발전”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6. 차베스 등장 이전 베네수엘라의 번영은 친미(親美)-반(反)쿠바 노선 덕분이었다. 차베스-마두로 정권은 반미(反美)-친(親)쿠바로 돌면서 베네수엘라의 몰락이 시작되었다. 문재인 정부는 핵심세력의 이념적 노선을 외교·안보 분야에 적용하고 있는데 이는 “탈미(脫美)-반일(反日)-친중(親中)-통북(通北)”(前1군사령관 박정이 예비역 대장의 분석)의 경향을 보인다. 베네수엘라의 반미(反美)-친(親)쿠바-독재노선은 남미에서도 고립을 자초하였다. 한국의 반미-반일은 필연적으로 중국과 북한에 스스로를 예속시킬 것이고 해양문화권, 즉 자유진영을 떠나 대륙문화권, 즉 독재진영으로 넘어가게 되고 이는 경제의 붕괴로 이어질 것이다.
 
7. 베네수엘라에선 선거를 통하여 집권한 공산주의자들이 쿠바를 종주국으로 수용함으로써 반미, 독재, 부패, 장기집권으로 치달았다. 한국에서도 반미노선은 필연적으로 독재, 부패, 장기집권으로 이어질 것이다. 반미(反美)의 핵심은 자본주의와 자유민주주의 부정이다.
 

김일성과 체 게바라에 영혼을 판 자들
 
8. 남미에서 좌익이 부패한 독재세력으로 변한 것은 한국에서도 일어나는 일이다. 차베스는 카스트로뿐 아니라 체 게바라도 존경하였다. 2년 전 체 게바라 피살 50주년을 다룬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한 칼럼은 ‘체 게바라를 영원히 매장할 때’란 제목을 달았다. 체의 혁명운동이 불러온 부작용을 고발한 글이다. 체는 카스트로와 함께 쿠바 공산 혁명을 성공시킨 뒤 산업부 장관을 하다가 세계 혁명을 꿈꾸면서 쿠바를 떠나 아프리카의 콩고, 남미의 볼리비아에서 공산 게릴라 활동을 하였다. 당시는 월남전쟁이 한창이었다. 체는 미국 제국주의와 싸우면서 평등사회를 건설한다는 명분으로 많은 추종자들을 만들었다. 그는 콜롬비아의 공산주의 게릴라 활동에 영감을 주었는데 이들이 일으킨 내전으로 나라는 분열되고 수십만의 희생자를 낸 끝에 최근 휴전이 이뤄졌다. 체 게바라 숭배자였던 차베스는 자원부국 베네수엘라를 통치하는 데 좌익적 선동과 독재적 폭력을 행사하여 나라를 파산시켰다. 또 다른 체 숭배자 볼리비아 대통령도 독재의 길을 걷는다.  
 체 게바라는 반(反)제국주의와 평등사회 구현을 가장 높은 목표로 삼았는데, 이는 1960년대 식 세계관이고 냉전이 끝난 후에는 맞지 않는 전략이었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지적한다. 냉전이 끝난 뒤 남미 국가는 미국을 제국주의로 인식하지 않고 번영의 동반자로 여기게 되었다. 투자를 해줄 나라, 일자리를 제공해줄 나라, 그리고 과학기술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나라로 여긴다. 체는 쿠바 산업부 장관을 할 때 모든 농장과 상점까지 국유화하여 이른바 하향평준 식 평등을 달성하려 하였다. 혁명이 났을 때 쿠바는 남미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였지만 지금은 가장 낙후되었다. 의료부문만 발전하였는데 이것도 다른 부분의 희생으로 가능하였다.
  체 게바라와 추종자들은 반미와 평등을 외치면서 독재와 부패엔 너그러웠다. 남미의 좌익은, 부패하고 독재적인 현 베네수엘라의 마두로 정권을 비판하지 않는다. 남미에서 칠레, 브라질, 콜롬비아는 사회주의적 노선을 거부한 개혁 노선으로 발전하고 있는데 볼리비아나 베네수엘라는 쓰레기통에 들어가야 할 체 게바라 노선을 따르다가 나라를 거덜 내고 있는 것이다. 체 게바라가 세계 젊은이들의 존경을 받고 있을 때 박정희는 욕을 먹어가면서 국가주도의 실용주의적 근대화 개혁으로 베네수엘라에 한참 뒤떨어졌던 한국을 발전시켰다. 현재 한국은 소득 평등도에서 세계적으로도 가장 우수한 나라인데 평등을 좋아하는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 쿠바, 월남, 베네수엘라보다 더 평등하다.  
 세상 물정을 모르는 순진한 혁명가는 나라를 망치고, 세상의 이치와 인간의 심리를 간파한 박정희는 부국강병에 성공해 복지와 민주의 토대를 놓았지만 지식인들의 반감(反感)을 사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한다.
 

탄압받던 좌익은 집권하면 탄압자가 된다
 
9. 남미의 우등국이 남미의 파산국으로 전락한 데는 차베스, 마두라뿐 아니라 베네수엘라 국민들, 특히 지도층의 책임이 크다. 부정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어떻든 두 사람은 선거로 당선되었다. 국민들의 상당한 지지가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남미에서 공산주의자들의 선동이 먹힌 이유는, 은퇴한 한 추기경이 남미 출신 프란치스코 교황을 비판한 글에 잘 나와 있다.  
 상해 출신의 중국인인 조셉 젠 제큔(Joseph Zen Ze-Kiun) 추기경은 작년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글에서 이렇게 지적하였다.
 
 <교황은 아르헨티나 출신이고, 또 예수회 출신이라 공산주의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남미에서는 군사정권이 부자(富者)와 결탁해 가난한 사람을 압제하는 정치적 전통을 이어갔다. 그렇다면 누가 군사정권으로부터 압박받는 사람들을 지켜줄 것이냐, 바로 여기에 공산주의자가 등장했다. 그러니 프란치스코 교황은 자연스럽게 공산주의자들에 대해 호감을 갖거나 동정할 수밖에 없는 정치적 환경 속에서 자랐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모르는 게 있다. 남미 공산주의자는 탄압을 받지만, 일단 집권을 하게 되면 ‘탄압자’가 된다. 중국의 공산주의자들도 그런 자들이다.>
 
 한국에서도 탄압받던 좌익이 집권한 뒤 부패한 탄압자가 되는 길을 걷고 있는 게 아닌가? 북한정권과 공산주의의 악마성에 대하여 국민들의 분별력이 약화된 것은 좌익들이 ‘민족’과 ‘민주’로 위장한 사실을 간파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권은 ‘민족’이란 이름으로 북한정권의 부패와 독재와 전쟁범죄 및 동족학살까지 덮어주려 한다. 여기에 다수가 넘어가는 이유는 한국에서 민족주의가 원초적 감정을 건드리고 반일(反日) 및 반미(反美)와 연결되기 때문이다(민족주의가 아니라 인종주의). 차베스가 부패한 기득권층 타도를 앞세워 베네수엘라 국민들의 판단력을 마비시킨 것과 비슷한 구조이다.
 
10. 한국과 베네수엘라는 유사점도 있지만 차이 또한 크다. 최근 발표된 2018년 민주주의 지수 랭킹(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에 따르면 한국은 167개국 중 21등이다. 1등은 노르웨이, 22등은 일본, 25등은 미국, 29등은 프랑스, 인도는 41등, 말레이시아 52등, 필리핀 53등이다. 한국은 아시아 최고의 민주국가, 북한은 167등으로 세계 최악의 독재집단이다. 민주주의를 선거의 공정성, 정부의 기능, 정치참여, 정치문화, 시민의 권리 등 다섯 분야에서 채점하였다. 한국은 8점을 받았는데, 특히 시민의 권리와 선거의 공정성에서 높은 점수가 나왔다. 이는 시민의 자유와 선거의 자유,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언론의 자유와 국민의 분별력이 살아 있으면 공산화는 어렵고 베네수엘라처럼 될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민주주의 랭킹에서 베네수엘라는 167개국 중 134등, 쿠바는 142등이었다. 베네수엘라는 선거의 자유, 정부의 기능, 시민의 자유 부문에서 특히 나쁜 평가를 받았다. 세계 최악의 독재집단이 아시아 최고의 민주국가를 좀비화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이변(異變)이지만 역사에서 유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敵將을 숭배하다가 타도당한 황제 이야기
 
11. 어느 나라이든 영토, 헌법, 체제 등 국기(國基)를 훼손하거나 뒤엎으려는 반역에 대해선 대역죄(大逆罪·high treason)로 다스리는데 보통 사형에 처한다. 우리 형법엔 대역죄에 해당하는 죄목이 여적죄(與敵罪)인데, 사형뿐이다. 북한정권과 공모하거나 지령을 받아 대한민국의 영토와 주권을 떼어주고, 자유민주주의를 파괴하며, 국군을 무력화시키거나 애국자를 탄압하는 것이 이 죄에 해당한다.
황제가 되자마자 평소 흠모하던 적장(敵將)을 추종, 동맹국을 배신하고, 토착종교를 홀대하고, 장교들을 모욕하다가 부인이 주동한 쿠데타를 당한 뒤 비참하게 죽임을 당한 사람이 러시아의 표트르 3세이다. 그는 표트르 대제(大帝)의 딸인 안나의 아들이었다. 표트르 3세의 아버지는, 스웨덴의 칼 12세(그는 북방전쟁에서 표트르 대제와 자웅을 겨루었던 영웅이었다)의 여동생을 어머니로 둔 카를 프리드리히였다. 덴마크 령 홀스타인 공작이었던 표트르 3세는 부모가 일찍 죽어 독일인들로부터 교육을 받아 영혼과 가슴은 독일인이었다. 러시아어를 거의 하지 못하였다. 표트르 3세의 어머니 안나의 언니는 표트르 대제의 딸인 옐리자베타였는데, 쿠데타로 러시아 황제가 되었다. 그는 여동생의 아들인 표트르를 러시아로 불러 황태자로 지명하였다. 옐리자베타는 1761년 12월25일에 죽었다. 옐리자베타는 생래적으로 프러시아의 프리드리히 2세를 싫어하여 러시아는 오스트리아-프랑스와 연합, 프러시아(동맹국은 영국)를 상대로 7년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지금의 폴란드 영토인 실레지아 영유권을 둘러싼 전쟁에 유럽의 거의 모든 나라가 참여하였다. 이 전쟁은 아메리카 대륙과 인도에선 영불(英佛)전쟁으로 확전되었다. 7년 전쟁을, 제1차 세계대전 이전에 있었던 최초의 세계적 전쟁으로 부르는 이유이다.
 프러시아는 영국 및 하노버와 동맹하였지만 막판에 영국이 휴전 협상을 압박, 코너로 몰렸다. 러시아 군은 한때 베를린을 점령하는 등 승기(勝機)를 잡았고 프리드리히 2세가 항복을 준비하고 있을 때 숙적(宿敵) 옐리자베타가 죽고 표트르가 황제가 된 것이다.
 표트르 3세는 황제가 되자 평소 품었던 감정대로 동맹국인 오스트리아와 프랑스를 배신하고, 일방적으로 프러시아와 휴전, 평화협정을 맺었다. 프러시아는 몰락 직전에 기적적으로 구제되었다. 이를 ‘브란덴부르크 가문(家門)의 기적’이라 한다.
 프리드리히 대제(大帝) 숭배자였던 히틀러는 1945년 봄 포위망이 좁혀오는 베를린의 지하벙커에서 그런 기적이 다시 일어나기를 바랐다. 루스벨트 대통령이 급서(急逝)하자 히틀러는 러시아 옐리자베타 황제의 죽음이 가져다 준 그런 행운이 찾아올 것이라고 여기면서 환호하였다고 한다.
 적장(敵將)을 숭배하고 동맹국을 배신한 표트르 3세로 인해 유럽의 판도가 바뀌었지만 그의 몰락을 재촉하였다. 항복 직전에 갔던 프러시아는 기사회생(起死回生)하여 오스트리아를 공격한다. 표트르 3세는 러시아 군대를 프러시아에서 철수시킨 뒤엔 프리드리히 지휘 하로 넘겨 오스트리아를 압박하기 시작하였다. 180도의 배신이었다.
 
  
모욕당한 군 장교단이 부인과 손잡고 쿠데타
  
 이 무렵 표트르 3세는 프리드리히 왕에게 쓴 편지에서 “나는 러시아의 황제보다 프러시아의 장군이 되는 게 더 좋다”고 고백했다. 비유하면 한국 대통령이 김정은에게 편지를 써서 ‘당신의 부하가 되겠다’고 하는 꼴이다. 오스트리아 편이던 프랑스와 스웨덴은 러시아가 이탈하자 세(勢) 불리를 깨닫고 오스트리아 원조를 철회하였다. 프러시아의 역전승으로 귀결된 7년 전쟁은 프러시아를 유럽의 강국으로 밀어 올렸다. 북미와 인도에선 프러시아 편에 선 영국과 오스트리아 편에 선 프랑스가 식민지 쟁탈전을 벌였는데 결국 영국이 이겨 세계제국으로 올라선다.
 표트르 3세의 반역은 신념 체계가 러시아 것이 아니라 프러시아 것이었다는 데서 생긴 것이다. 그는 러시아 정교(正敎)의 교회 재산을 몰수하고 개신교를 지원할 태세를 보임으로써 러시아의 오랜 전통을 무시, 러시아 민중의 분노를 샀다. 러시아 장교들은 그들이 어렵게 사지(死地)로 몰아넣은 프러시아를 살려준 ‘이상한 황제’를 용서할 수 없었다. 부모를 일찍 여의고 자란 표트르 3세는 늘 정서가 불안정한 사람이었는데, 황제가 되자 러시아 군의 복장·훈련·전술을, 적군(敵軍)인 프러시아 모델로 바꾸도록 명령, 장교들을 모욕했다. 비유하면 국군 복장을 인민군 복장으로 바꾸는 식이다. 표트르 3세는 홀스타인 문제를 트집 잡아 덴마크에 선전(宣戰) 포고, 수도 페테르부르크를 비웠다가 쿠데타를 당한다.
 주도자는 황비 예카테리나와 근위대의 젊은 장교단이었다. 1762년, 즉위 6개월 만에 폐위된 표트르 3세는 직후 살해되었다. 남편을 죽음으로 몰면서 즉위한 예카테리나 2세는 대제(大帝)라고 불릴 정도로 정치를 잘 하여 러시아를 유럽의 강대국으로 만들었다. 대표적인 개명(開明)군주로서 페테르부르크의 에르미타주 박물관을 만든 사람이다.
 이 사건을 쉽게 이해하기 위하여 비유를 든다면 스탈린주의자가 미국의 대통령이 된 경우나 김일성주의자(주사파)가 한국의 국가 지도부를 장악한 경우에 해당할 것이다.
 
 
문재인의 ‘자유’ 기피증
 
12. 문재인 대통령은 김일성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밝힌 적은 없지만 김정은과는 “연인 사이”에 비유하고, 김일성주의자 신영복을 사상가로 존경한다고 공언하였으며 평양에서 대한민국 헌법과 맞지 않는 “남쪽 대통령 문재인”이라고 말한 바 있다. 프리드리히를 숭배하였던 표트르 3세, 카스트로를 존경한 차베스가 러시아와 베네수엘라에 끼친 영향을 참고로 한다면 문재인 대통령의 김일성 및 북한노동당 정권에 대한 생각이 궁금해진다. 그의 아버지가 한국전쟁 때 월남한 점을 들어 문 대통령의 반공의식을 의심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으나 유엔연설에서 한국전을 남침이라 하지 않고 “내전”이라 불렀던 점에 유의하여야 한다. 문 대통령의 말과 글이 참고가 될 것이다.
 
<책 읽기를 좋아하는 습성은 아버지 덕이 컸다. … 닥치는 대로 읽었기 때문에 ‘사상계’같은 의식을 깨우치는 잡지도 비교적 일찍 접했다. (아버지가) …드물게 하시는 말씀을 들어보면 사회의식이 깊은 분이었다. 한일회담 때 이웃 대학생에게 왜 한일회담에 반대해야 하는지 설명해주는 걸 들은 기억이 있다. 우리나라는 농촌을 살리는 중농(重農)주의적 성장을 추구해야 하는데, 박정희 정권이 거꾸로 저곡가로 농촌을 죽이는 정책을 하고 있다고 말씀하신 게 어린 내게 강하게 와 닿았다.> (문재인의 운명 中)

<아버지는 일제 때 함흥농고를 나왔다. …졸업 후 아버지는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고, 북한 치하에서 흥남시청 농업계장을 했다. 그때 공산당 입당을 강요받았으나 끝까지 버티고 안 했다고 한다. 유엔군이 진주한 짧은 기간 동안 농업과장도 했다. 그리고 피난을 내려왔다. 이북에서 공무원 생활한 사람들을 공무원으로 채용하는 기회가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농업계장 시절 공산당 입당을 강요받으며 시달렸던 경험 때문에 다시는 공무원 생활을 않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문재인의 운명 中)
 
<(아버지는) 남쪽으로 피난을 와서는 자신이 원했던 삶과 전혀 다른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아버지는 실패한, 아주 무기력한 삶을 살 수밖에 없었지요. 끝내 자신이 꿈꿨고 잘해낼 수도 있었던 삶으로 돌아가지 못했고요.> (대한민국이 묻는다 中)

<피난민들이 갖고 있는 북한에 대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공산 체제를 싫어하는 것은 일반적인데 전쟁 전에 내려온 사람들은 북한 체제가 너무 싫어서, 탄압을 심하게 받거나 해서 내려온 사람들이어서 북한에 대한 증오심이 아주 강해요. 북한 출신이지만 북한을 도와주는 것에 대해 부정적 감정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죠. 반대로 전쟁 통에 내려온 사람들은, 물론 북한 체제가 싫어서 내려오기는 했지만 그래도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있어서 남북회담을 하거나 이산가족 상봉이라도 하면 하루 종일 텔레비전 앞에 매달려 눈물을 흘립니다. 피난민들이 다들 반북적(反北的)일 것으로 보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지는 않습니다. 전쟁 통에 내려온 피난민들이 훨씬 많기도 해요.> (운명에서 희망으로 中)
 
<어머니네 쪽에서는 아무도 내려오지 못했다. 외가 동네는 흥남의 북쪽을 흐르는 성천강 바로 건너에 있었는데, 흥남으로 들어오는 ‘군자교’ 다리를 미군이 막았기 때문이다.> (문재인의 운명 中)
 
<대학 시절 나의 비판의식과 사회의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분은, 그 무렵 많은 대학생들이 그러했듯 리영희 선생이었다. 나는 리영희 선생의 ‘전환시대의 논리’가 발간되기 전에, 그 속에 담긴 ‘베트남 전쟁’ 논문을 ‘창작과 비평’ 잡지에서 먼저 읽었다. …1, 2부는, 누구도 미국의 승리를 의심하지 않을 시기에 미국의 패배와 월남의 패망을 예고했다. 3부는 그 예고가 그대로 실현된 것을 현실 속에서 확인하면서 결산하는 것이었다. 적어도 글 속에서나마 진실의 승리를 확인하면서, 읽는 나 자신도 희열을 느꼈던 기억이 생생하다.> (문재인의 운명 中)
 
<친일세력이 해방되고 난 이후에도 여전히 떵떵거리고, 독재 군부세력과 안보를 빙자한 사이비 보수세력은 민주화 이후에도 우리 사회를 계속 지배해나가고, 그때그때 화장만 바꾸는 겁니다. 친일에서 반공으로 또는 산업화 세력으로, 지역주의를 이용한 보수라는 이름으로, 이것이 정말로 위선적인 허위의 세력들이거든요.> (대한민국이 묻는다 中)
 

杞憂?
 
13. 베네수엘라는 소수의 쿠바 공산혁명 세력에 정신신경계를 장악당하여 좀비적 존재, 즉 허수아비가 되었다. 자유민주적 전통이 강하였던 세계 최대의 석유매장국가도 국가 지도부가 영혼을 팔아 카스트로의 제자가 되니 쿠바에 약탈당하고 있다. 한국의 조종실을 장악한 집권세력이 다시 김일성을 숭배하는 세력에 의하여 장악당하면 승객인 국민들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때 비행기를 추락시켜 공멸하지 않고 선거를 통하여 연착륙시킨 뒤 민주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능력을 한국이 가졌는가가 문제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2019년 신년기자회견 연설에서 대한민국 헌법의 최고가치인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자유’를 한 번도 쓰지 않았다. 이는 ‘자유’에 대한 극도의 기피증을 반영한다. 물론 ‘반공’을 좋아할 리가 없다. 북한노동당정권과 남한의 추종세력 및 공산주의와 대결하는 나라에서 반공과 자유는 국가의 영혼과 방패인데 이를 멀리하면 조국보다 적(敵)을 더 좋아하여 차베스나 표트르 3세 같은 행동을 할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쿠바에 먹혀버린 베네수엘라가 북(北)에 먹힐 한국의 미래상이라고 걱정하는 것을 한갓 기우(杞憂)라고 치부할 순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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