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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건·사고
집념의 검사가 파괴한 인간존엄성 國法(국법)이 헛된 명예욕에 이용당하면 인간 파멸의 실천도구로 돌변한다 趙甲濟  |  2020-07-31

  
  
  대한민국은 人權(인권)을 소중하게 여기는 정도가 아니라 ‘人權존중’을 至高至善(지고지선)의 가치이자 국가의 존립목적으로 생각하도록 설계된 나라이다. 韓民族(한민족)이, 나라를 세우고, 지키고, 키우고, 가꾸어온 지난 60여 년간 이룩한 가장 위대한 업적은 인권을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가장 중요한 행동윤리로 정착시켜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공동체를 건설한 점일 것이다.
  
   인권의 핵심은 개인 생명의 존귀함에 대한 省察(성찰)이다. 집단의 권리가 아니다. 인간 생명 하나 하나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를 지닌 존재라는 인식이 한국인의 보편적 사상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19세기 말 開化期(개화기)에서 시작된 자유민주주의 사상의 발전과 실천과정은 서구 文明 및 기독교 정신과 이어진다. 네 개의 문장이 떠오른다.
  
   *토마스 제퍼슨이 기초한 1776년 미국 독립선언서의 한 구절: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진실들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神聖(신성)한 것으로 간주한다. 즉, 모든 인간은 평등하고 자유롭게 창조되었으며, 그런 평등한 창조로부터 빼앗길 수 없는 고유한 권리를 받았는데 생명의 保全(보전)과 자유, 그리고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거기에 속한다.>
  
   *1904년 李承晩(이승만)이 獄中(옥중)에서 쓴 ‘독립정신’의 한 문장: <부디 깊이 생각하고, 고집부리지 말고, 모든 사람들이 힘껏 일하고 공부하여 성공할 수 있도록 자유의 길을 열어놓아야 한다. 그렇게 하면 사람들에게 스스로 活力(활력)이 생기고, 관습이 빠르게 변하여 나라 전체에도 活力이 생겨서 몇 십 년 후에 부유하고 강력한 나라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자유를 존중하는 것은 나라를 세우는 根本이다.>
  
   *崔南善(최남선)이 기초한 1919년 3·1 독립선언서의 한 문장: <우리가 본디 타고난 自由權(자유권)을 지켜 풍성한 삶의 즐거움을 마음껏 누릴 것이며, 우리가 넉넉히 지닌바 독창적 능력을 발휘하여 봄기운이 가득한 온 누리에 겨레의 뛰어남을 꽃 피우리라.>
  
   *대한민국 헌법 제10조: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人權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위의 역사적 文書(문서)는 인간 생명의 존엄성과 인간의 기본권을 규정하고 있다는 데 공통점이 있을 뿐 아니라 서로 연관되어 있다. 토마스 제퍼슨은 그 짧은 문장에서 인간의 기본권을 생존권, 평등권, 자유권, 행복추구권으로 정리하였다. 국가도 개인의 이런 기본권을 침해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이것이 자유민주주의의 핵심이고 인권의 바탕이 되는 人間觀(인간관)이다.
  
   미국 독립선언서의 이런 思想(사상)은 그 뒤 後發(후발)국가가 민주주의를 건설할 때 지표가 되었다. 19세기말 시작된 한국의 開化(개화)운동은 미국과 기독교의 영향을 받아 자유민주주의를 理想(이상)으로 삼게 된다. 그 이상을 가장 논리적으로 정리하고 가장 줄기차게 실천하였던 이가 이승만이었다. 그가 온몸으로 밀어붙였던 인간해방은 韓日合倂(한일합병)으로 좌절되었으나 그 불씨는 이어졌고 3·1 독립선언서로 재확인되었으며 드디어 대한민국 헌법에 자리 잡아 오늘의 민족공동체를 이끄는 가장 중요한 가치관이 되었다. 李 박사는 자유가 인간의 삶을 풍성하고 활기차게 함으로써 富國强兵(부국강병)을 이룰 수 있다고 본 점에서 탁월하다. 자유의 무한한 생산성을 확인한 분이다.
  
   지난 150년간의 東北亞(동북아)는 자유의 대행진이 이뤄진 무대였으나 이 역사적 大勢에서 빠져버린 게 북한이었다. 북한은 인간생명의 신성함, 인권의 존중, 자유-평등-행복의 세계에서 제외됨으로써 지옥으로 변해버렸다. 북한에 비교하면 한국은 천국이다.
   위의 4大 문서에 등장하는 키워드는 자유, 생명, 평등, 존엄, 행복, 풍요, 삶의 즐거움 등등 희망적이고 낙관적이다. 자유민주주의는 삶을 긍정한다. 인간으로 태어나면 행복해질 권리와 의무가 있다고 가르친다. 오늘날 한국인으로 태어나면 불행해질 자격이 없는 것이다.
  
   우리가 누리는 인권은 공짜로 주어진 게 아니다. 韓民族(한민족)이 쟁취한 것이다. 이승만, 朴正熙(박정희) 같은 위대한 혁명가는 봉건적 잔재 및 공산주의와 싸우면서 자유민주체제가 작동할 수 있는 조건들을 만들어낸 분이다. 학생, 지식인, 종교인, 야당세력은 권위주의 정부의 온건한 기본권 제약까지도 ‘독재’라고 규정, 반대투쟁을 벌임으로써 인권의 절대적 소중함을 강조하였다. 이런 흐름속에서 1971년부터 40년 이상 기자생활을 하고 있는 나는 1990년 무렵까지 고문 및 誤判(오판)과 관련된 기사와 책들을 많이 썼다. 이 기간에 이런 종류의 글을 가장 많이 쓴 기자가 아닌가 생각된다. 자연히 형사, 검사, 정보부 직원, 판사들을 비판적으로 다룬 경우가 많았다.
  
   나는, 2009년 12월 하순에 서울고등법원에서 있었던 李穗根(이수근) 간첩 사건 再審(재심) 재판에 증인으로 나간 일이 있었다. 1967년에 판문점을 통하여 脫北(탈북)하였던 북한 중앙통신 부사장 이수근은 정보부의 감시와 압박을 견디지 못하였다. 그는 1969년 중립국에 가서 살려고 위조여권을 만들어 홍콩으로 출국하였다가 붙들려왔다. 金炯旭(김형욱) 정보부장은 책임을 회피하려고 이수근을 위장 귀순한 북한간첩으로 몰아 사형시켰다. 나는 1989년 3월호 월간조선에 ‘이수근은 간첩이 아니었다’는 기사를 썼다. 이 글이 계기가 되어 再審(재심)이 이뤄진 것이다.
  
   나에 대한 증인 신문을 진행되기 전 50代의 재판장이 “증인은 ‘오휘웅 이야기’라는 책을 쓴 적이 있지요?”라고 물었다. 1986년에 쓴 책인데 살인 사건에 대한 誤判을 다룬 것이다. 이 책은 판사들에게 많이 읽혔다. 재판장도 책을 읽었다면서 그 내용과 관련하여 몇 마디 우호적인 대화가 오고갔다(이수근은 再審에서 무죄가 확정되었다).
   1980년대에 내가 많이 썼던 고문과 오판 관련 글을 읽은 이들 가운데는 요사이 진보라고 불리는 이들도 많다. 가끔 “그때의 조갑제는 좋은 기자였는데…”라고 아쉬워하는 글들이 보인다.
  
   인권에 대한 나의 관심은 1988년 盧泰愚(노태우) 정부가 등장한 이후 방향이 바뀌었다. 민주화의 진전과 함께 고문과 오판의 소지도 많이 줄었다. 남쪽의 인권문제에 관심을 쏟는 사이 놓쳤던 북한의 인권문제가 視野(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1989년 대한항공기 폭파사건의 金賢姬(김현희) 씨를 만나 인터뷰한 것이 좋은 계기가 되었다. 내가 편집장으로 있던 월간조선은 북한인권 문제 보도를 先導(선도)하였다. 그 공으로 1994년도 관훈언론상도 받았다.
  
   한국은 개인의 생명을 국가보다 더 소중하게 여기는 체제이고, 북한은 인민들이 김정일을 결사옹위하기 위한 ‘총폭탄’이 되어야 하는 체제이다. 남북의 차이는 인간과 폭탄의 차이이다. 4·19 義擧(의거)와 6·29 민주화 선언을 낳은 가장 큰 계기는 두 학생의 희생이었다. 최루탄을 머리에 맞고 죽은 김주열 군의 屍身(시신) 사진과 경찰의 고문으로 죽은 박종철 사건이 국민들의 義憤心(의분심)을 폭발시킨 것이다. 한국은 한 사람의 생명이 역사를 바꾸고, 북한은 300만이 굶어죽어도 역사도, 정권도 바뀌지 않는다.
   한국의 민주화 운동가들이 계급적 세계관에 사로잡혀 북한정권의 인간말살을 외면한 것은 自我(자아)부정으로서 민주화 운동의 진정성까지 의심하게 만든다.
  
   한국에서 인권이 이 정도로 확보되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한 것은 언론자유이다. 언론자유는 모든 자유의 어머니이다. 나는 자신 있게 주장한다. 역대 정권이 언론자유를 제약한 적은 있지만 말살할 적은 없다고. 언론자유가 가장 심하게 제약되었던 維新(유신)시대(1972~1979년)에도 대통령과 군대와 정보부를 제외하곤 聖域(성역)이 없었다. 언론자유가 고문과 조작과 오판을 줄였다. 이 언론자유가 휴전선을 넘어 북한으로 들어간다면 노동당 정권은 무너질 것이다.
  
   30년 전에 ‘월간 마당’에 연재하였던 ‘김근하 군 살해 사건의 수사와 재판’을 정리하여 책으로 내는 것은 새삼스럽게 고문과 조작과 오판 풍토를 고발하기 위함이 아니다. 이 글에서 지적하고 폭로한 문제점들은 그 사이 상당히 개선되었다. 민주화의 과정 속에서. ‘상당히’라고 조건을 다는 것은 요사이도 검찰 조사를 받고 나온 사람들이 자살을 하였다는 뉴스가 이어지고 있다는 데서도 알 수 있듯이 검찰의 수사권 독점에 대한 견제가 충분하지 않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이 책은 한 집념의 검사가 만든 地獄圖(지옥도)이다. 확신에 찬 수사는 수많은 反證(반증)들을 밀어내고, 무지막지한 고문으로 무고한 ‘眞犯(진범)’들을 만들어간다. 기자들이 이런 검사를 응원한다. 누명 쓴 이들이, 좋은 변호사와 좋은 판사를 만나 무죄로 풀려나도 의혹의 視線(시선)은 평생을 따라다닌다. 고문 후유증으로 일찍 죽은 김기철 씨는 검사의 야망에 걸려 삶을 망친 여러 사람들 중 한 명이다. 검사, 판사, 기자가 오판했음을 알았을 때 즉시 바로잡으면 피해가 복구되지만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또는 체면 때문에 밀어붙이면 뜨개질을 할 때 한 코를 꿰지 않고 끝까지 가는 것과 같은 결과를 빚고 만다. 이 결과라는 것이 人生(인생)파멸이다. 法집행자의 자기합리화나 변명, 또는 은폐는 他人(타인)의 행복을 앗아간다. 國法(국법)은 인간 존엄성의 구현을 목표로 하는데, 헛된 명예욕에 이용당하면 인간 파멸의 실천도구로 돌변하는 것이다.
  
   이 책에 실린 글은 1987년 한길사에서 나온 ‘고문과 조작의 기술자들’에 포함되었던 적이 있다. 다른 고문 사례와 함께 소개되었기 때문에 제대로 읽히지 못하였다고 아까워하다가 이번에 단행본으로 내게 되었다.
  
  
  2011년 10월 趙甲濟
  
삼성전자 뉴스룸
  • 무학산 2020-07-31 오후 3:14:00
    아. 그 책 제목이
    "오휘웅 이야기'였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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