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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 이야기-“시신(屍身)이 눈을 떴어요” 엄상익(변호사)  |  2020-08-01
구치소로 청부 살인범을 찾아가 그에게 물었었다.
  “왜 그 여대생을 죽였어요?”
  
  “계약이니까 이행해야죠.”
  곱슬머리 살인범의 황당한 대답이었다. 그에게는 생명에 대한 인식이나 도덕보다 계약이 먼저인 것 같았다. 그는 이미 영혼은 죽고 시체만 걸어 다니는 좀비 같은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을 죽여주기로 약속하는 건 계약이 아니에요. 그건 죄입니다.”
  내가 그렇게 말했다. 그는 듣는 둥 마는 둥 시큰둥했다. 그는 새벽에 운동하기 위해 나서는 여대생을 봉고차로 납치해 산 속으로 끌고 가 잔인하게 살해했다. 가는 차 안에서 뼈를 부러뜨리고 산으로 메고 올라가 머리통에 공기총알 일곱 방을 쏘았었다. 변호사가 되기 위해 빈틈없는 스케쥴 속에서 공부하던 예쁜 처녀가 허무하게 죽었다. 나는 인간이 아니라 영혼이 없는 시체 같은 그 살인범의 변호를 맡지 않기로 했다. 그 후 우연한 기회에 살해당한 여대생의 아버지를 만났다. 그는 명문대학을 나오고 대기업에서 오랫동안 임원으로 일을 했던 현명한 사람이었다. 그가 이렇게 말했다.
  
  “제가 일주일 만에 산 속에 가서 딸의 시신(屍身)을 찾았습니다. 딸을 보는 순간 갑자기 딸아이의 한쪽 눈이 떠지면서 나를 쳐다보는 거예요. 아버지가 오니까 눈을 뜬 거죠. 얼마나 한(恨)이 서렸으면 그렇겠어요? 제가 그 눈을 감겨줬습니다. 그랬더니 잠시 후 다른 눈을 뜨는 거에요. 원통해서 그렇게 죽는 걸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 같았어요. 이번에는 함께 갔던 엄마가 그 눈을 감겨줬어요. 저는 원래 이성적인 사람이라 귀신이나 신비적인 현상에 대해 전혀 믿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일주일 만에 산에서 발견된 딸의 시신을 보고 저는 이제 귀신이 있다는 걸 확신하게 됐습니다. 살았다면 지금 한창 공부할 제 딸은 지금 싸늘한 재가 되어 공원묘지에 있어요. 딸아이가 귀신이 되어 지금 그곳에서 배회하고 있을 것 같아요.”
  
  죽었던 시신이 갑자기 눈을 뜬다는 것은 믿기지 않았다. 그러나 그 아버지의 말을 믿지 않을 수 없었다. 변호사를 하면서 이따금씩 그런 괴기영화 같은 장면에 맞닥뜨릴 때가 있었다. 또 다른 이런 일도 있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어느 날 나는 안성의 한 과수원을 찾아갔었다. 과수원 안에 집을 지어놓고 혼자 살던 영감이 목이 졸려 살해된 사건이었다. 그 영감의 과수원 일을 도와주던 일꾼이 살인범이었다. 그 살인범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그 영감님은 자기 과수원 안 깊숙한 곳에 집을 지어놓고 이십 년이 넘게 혼자 살았어요. 아무도 찾아오는 일이 없었어요. 밖에 나가 돌아다니지도 않았어요. 운동도 창고에 러닝머신을 가져다 놓고 거기서 혼자 했죠. 그렇게 지독한 구두쇠를 본 적이 없어요. 하루 종일 일을 시켜놓고 삼천 원짜리 된장찌개 사준 게 크게 인심을 쓴 거예요. 나도 모르게 영감님의 목을 졸랐었는데 죽기 전 그 흉측한 모습을 보면 지금도 소름이 끼칩니다. 그 눈빛은 ‘너 내가 살아나면 보자, 가만히 놔두나?’라고 말하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더 죽여 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그 영감이 감옥 안에 있는 저의 꿈에 들어와서 괴롭히고 있어요.”
  
  나는 살해 당시의 상황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 그 과수원 안으로 스며들어 죽은 영감이 혼자 살던 집을 간 것이다. 과수원의 녹슨 철문의 빈틈으로 안으로 들어갔다. 죽은 영감이 살던 집의 담장 한쪽이 허물어져 있었다. 그 틈으로 안으로 들어갔다. 핏빛의 붉은 벽돌로 지은 단층 건물이 보였다. 건물 주변에 괴괴한 기운이 흐르고 있는 것 같았다. 죽은 영감이 귀신이 되어 눈을 부릅뜨고 나의 침입을 노려보는 것 같았다. 단순한 느낌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강한 확신 같은 게 본능적으로 감지되고 있었다. 서늘한 공포가 가슴속을 얼어붙게 하고 있었다. 나는 도저히 그 집 현관문을 열고 살해 장소인 빈 방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인간이 죽으면 즉시 다른 존재가 되는 것 같다. 평화롭게 죽음을 받아들인 경우는 육체를 떠나 영의 자유로 들어가 어떤 빛의 세계로 향하는 것 같다. 그런 사람들에게 죽음은 과도적인 현상일 것 같다. 아기가 어머니 태내(胎內)를 떠나서 자유의 공기를 마시는 것처럼 죽으면 새로운 환경 속에서 존재를 계속하는 것 같다. 그러나 원한을 품고 죽은 사람의 경우에는 다른 것 같다는 생각이다. 어떤 빛의 세계로 가지 못하고 귀신이 되어 우리 주변에서 맴도는 것 같기도 하다.
  
삼성전자 뉴스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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