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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유머
추미애는 문재인의 차지철인가? 그렇다면 윤석열이 김재규인가? 趙甲濟  |  2020-08-09

추미애 법무장관과 차지철 경호실장의 닮은 점, 다른 점
  
  1. 대통령을 보호하는 역할: 차지철은 경호실 병력으로 박정희를 보호했고, 추미애는 親與검사들로써 문재인 정권의 비리를 비호하려 한다.
  
  2. 직권남용: 추미애는 불법적 수사지휘권 발동으로 윤석열 검찰총장을 묶고, 차지철은 경호권을 남용하여 김재규 등을 견제하고 고위인사의 대통령 접근을 차단하며 대통령의 군통수권에도 간여하였다.
  
  3. 안하무인: 추미애는 문재인을 믿고 야당과 검찰과 언론에 안하무인이고, 차지철은 대통령을 믿고 정보부, 야당, 군지휘부를 내리 누르려 했다.
  
  4. 대통령을 욕보이다: 추미애가 미워서 문재인 지지 철회하는 이들이 많고, 차지철이 미워서 박정희도 싫어하게 된 이들이 많았다.
  
  5. 김재규와 윤석열: 추미애는 문재인이 아끼던 윤석열을 따돌렸고, 차지철은 박정희가 아끼던 김재규를 멀리 하게 만들었다. 이런 이간질은 국민과 대통령 사이도 벌린다.
  
  6. "10·26 사건의 주범은 김재규가 아니라 차지철이다. 김재규는 종범이다."(합수부 수사관들). 그날 차지철이 김재규를 모욕하는 발언을 한 것이 김재규를 격동시켜 차지철뿐 아니라 박정희까지 쏘게 만들었다는 풀이이다.
  
  7. 윤석열이 김재규 역할을 할 것인가? 물론 권총으로써가 아니라 헌법과 법률로써!
  
  8. 다른 점: 추미애는 여자이고, 차지철은 남자, 그리고 지금은 언론이 살아 있다는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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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자료: 1979년 11월17일 군검찰관 앞에서 한 김계원 전 비서실장 진술 일부
  
  문: 비서실장 재직 시 차지철과의 관계를 상술하시오.
  답: 개인적인 친분관계는 별로 없고 비서실장 직책을 맡은 후 자주 접촉하게 되었을 뿐입니다. 그리고 차실장의 무례한 행동에 대하여 못마땅하게 여겼는데
  
  1. 본인에 관하여는 본인이 1978.12.22 비서실장으로 부임한 이래 첫 번째 대통령각하 면접실에서 처음 만났음. 〈본인: 외국에 오래 나가 있어 사정이 어두워 잘 모르니 지도해주시요. 차지철: 염려마시고 같이 잘 합시다.〉 라는 대화를 나눈 것으로 기억합니다. 얼마 안 있어. 차지철의 사무실로 부임인사차 정식으로 방문하였는데도 차지철은 그 답례로 인사를 오는 것이 예의인데도 한번도 본인의 사무실을 방문한 일이 없어 괘씸하게 생각하였습니다. 또한 보고하러 가다가 본인에게 할 이야기가 있으면 2층의 본인 사무실로 올라와 이야기하는 것이 예의인데도 불구하고 차지철은 꼭 경호원을 시켜서 1층대기실로 본인을 불러 내려오게 하여서 본인은 차지철이 좀 오만하고 개성이 너무 강한 사람이라고 느꼈습니다.
  또한 국무총리·각부장관 및 당직자라도 각하에게 보고를 드리러 올 때는 반드시 본인에게 들리는데 차지철은 권위의식이 강하여 재임 중 본인사무실에는 한 번도 들린 사실조차 없습니다.
  그리고 정부종합청사를 각하가 순시하거나 회의참석 할 때 내빈용 에레베타를 타게 될 경우 각하, 총리, 관계 장관, 차실장이 타면 차지철이가 본인에게 대기 중인 다른 에레베타를 타고 오라는 경우가 간혹 있습니다.
  
  2. 타인에 대한 무례한 행동에 관하여는 79년 6월 초순경 16:30. 경기도 수원시 부근 소재 뉴관악 골프장에서 각하를 모시고 백두진 국회의장, 차지철 실장, 본인, 후꾸다 전 일본수상 등이 환영 골프대회를 가졌는 바.
  당시 백두진 국회의장이 먼저 샤워장에 들어가 늦게 나오자, 차지철이가 샤워장문을 발로 차면서 “영감 뭘해 빨리 나오시오” “그저 늙으면 죽어야 된다고” 독촉을 하므로 백 의장이 서둘러 나오면서 “미안 하외다”하는 광경을 보고 차지철 실장이 아버지뻘 되는 백 의장에게 오만불손하게 방자한 행동을 하는 것을 보고 분격한 사실이 있으며, 경호를 한다는 구실하에 좌석이나 차량운행 순서 등을 무시하므로 경호실 직원과 비서실 직원과 서로 알력이 져서 불평하는 일을 들은 사실이 있습니다. 본인은 그때마다 부하를 타일렀지만 괘씸한 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3. 업무상의 보고관계에 있어서도 본인은 직무상 각하가 매일 출근하시면 바로 결재서류를 가지고 결재를 받는 것이 통례이나 간혹 차지철은 각하가 출근 전에 집무실에서 대기하다가 먼저 들어 가 보고 함으로서 본인이 결재를 받는 데 지장이 있거나 또한 본인이나 장관이 결재를 받으려고 대기하고 있는데 차지철이 각하집무실 입구에 경호원에게 연락하여 자기가 각하를 뵈올 일이 있으니 못 들어가게 하라고 지시하여 기다리게 한 후 자기가 먼저 보고한 후 다른 사람들이 결재를 받는 일이 간혹 있으며 차지철의 월권행위 및 강경발언에 관하여 아는 바를 말씀드리면 차지철은 자기업무도 아닌 정치공작문제까지도 관여하고 첩보를 수집하여 각하에게 보고하는 등 월권행위를 자주 하고 군내 중요 지휘관 및 장성급을 수시로 불러다가 술도 사주고 돈도 뿌리는 일이 있고 또한 항간에는 군인이 경호실을 다녀와야 진급 및 보직 면에서도 혜택을 본다고 하므로 이는 군의 통수계통을 문란 시키는 일이라고 한탄하였으며 특히 당시 육군참모총장 이세호 대장을 매주 1~2회 정도씩 사무실에 불러 환심을 사는 것 같았습니다.
  차지철의 강경발언에 관하여는 여러 번 있습니다만 기억나는 것으로는 각하를 모시고, 유정회의장, 공화당의장, 경호실장, 본인 등이 김영삼 당수를 국회에서 제명하는 문제도 논의할 때, 차지철이 “사대주의 발언을 서슴지 않는 김영삼이 하나를 제명치 못하는 국회라면 뭣하겠는가 안 되면 내가 ‘탱크’로 밀어버리겠습니다”하는 등 상식이하의 강경발언을 자주하고 그 외에도 연장자인 본인이나 장관, 국회의장 또는 군의 선배인사들에게 까지도 아무에게도 ‘님’자를 붙여 호칭하는 일이 없이 오만불손하며 각하가 어디로 행차하시기라도 하면 영접나온 손님들에게 경호원들을 시키어 무례하게 다루는 일이 아주 있었습니다.
  이러한 점을 미루어볼 때 차지철과는 氷炭不相容의 관계이고 언젠가는 각하에게 건의하여 물러나게 하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문: 차지철 경호실장과 김재규와의 관계를 아는 대로 진술하시오.
  답: 두 사람과의 관계는 5·16혁명 이후 각하를 측근에서 가까이 모시던 사람들이라 제 생각으로는 두 사람 간에는 대통령의 신임을 얻으려고 서로 암투를 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두 사람간의 극도로 관계가 악화된 것은 지난 5월 신민당 전당대회 때 총재선거 시 중앙정보부는 이철승을 총재로 당선 시키고져 공작을 하고 있었는데 여기에 차지철이 별도로 신민당 신도환 의원을 통해 이철승 당선 공작을 벌이게 되었으므로 중앙정보부는 각하의 지시로 중도에서 공작을 중단하게 되었는 바 결국 신도환의 이철승 지지가 지연되므로 총재선거에서 탈락되어 차지철이 비난을 받아야 할 터인데 모든 비난이 중앙정보부에 집중되었으므로 차지철과 김재규는 서로 악화가 되었습니다. 또한 신민당 총재 김영삼 제명 후 법적으로 정운갑이 총재권한 대행으로 법원결정이 되자, 차지철은 정운갑이가 리더십이 있다고 생각했고 김재규는 좀 약하다고 생각되어 별도의 지원공작을 벌였으며
  특히 지난 10·16 부산에서 발생한 소요사태에 관하여 차지철은 각하에게 신민당이 배후조종한 폭동이라고 해서 선입견을 갖게 하고 중앙정보부는 조사결과 신민당이 아니고 남조선민족해방전선 등 불온단체와 일부 反정부 학생들이 가담했다고 보고했으나 각하로부터 거절당하고 오히려 야단을 맞게 되자 김재규는 그 원인이 차지철의 농간에 의한 것이라고 눈치 채고 분노가 극도에 달한 바 있습니다.
  
  문: 피의자와 김재규가 서로 만나 차지철을 비난하게 된 것은 언제부터이며 어떤 내용입니까?
  답: 제가 부임한 지 2개월 후부터이며 김재규와 만나게 되면(매월 6~7회 정도 본인의 사무실 또는 중앙정보부 식당에서 각하를 모시는 자리) 차지철을 비난하게 되는데 주로 차지철의 오만불손한 언동과 특히 정치문제에 깊히 관여하면서 강경일변도의 주장과 건의로써 각하를 일변도로 몰아 결심을 흐리게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김재규는 차지철을 지칭하면서, “저 자식을 해치워버려야지. 저놈을 그냥 둬두었다가는 각하 결심만 흐려놓고 안 될 텐데” “각하께서 나보고 무어라고 명령하는 것은 좋지만 지가 뭔데 각하보다 한 술 더 떠서 이러쿵 저러쿵 나에게 이야기하는지 짜식” 등 수없이 차지철에게 증오를 터트리거나 욕을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삼성전자 뉴스룸
  • 越百 2020-08-09 오후 5:13:00
    “지금은 言論이 살아있다”고 하시는데 維新政權 時代와 相對的으로 본 것인가? 아니면 지금 言論이 살아있다고 믿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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