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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칼럼
“자네가 먼저 청와대 앞에서 혼자 피켓 시위를 해보게” 엄상익(변호사)  |  2020-09-06
며칠 전 어린 시절 친구를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 중이었다. 그 친구는 지난번에 있었던 국회의원 선거가 컴퓨터 부정이라며 열을 올리고 있었다.
  
  “이번 부정선거가 자유당 3.15부정 선거 때처럼 혁명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조갑제, 정규재, 김진 같은 일부 우파들의 한심한 작태 때문이야. 지금 시대에 부정선거는 있을 수 없다는 거지. 그러면 해결책은 재검표를 하는 거지. 그렇지만 그렇게 하면 자유당 시절 같이 문재인은 망명을 하고 주동자들은 사형받을 것 같으니까 안 하는 거지.”
  
  그는 나름대로 확신을 가지고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보니 얼마 전 서초동 대법원 앞에서 강남역까지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시위를 보았던 적이 있다. 카니발 위에서 한 청년이 목이 터져라고 부정선거를 성토하고 있었다. 같은 말도 여러 번 들으니까 마음이 조금 달라지는 것 같았다. 일부에서 혹시 그럴 수도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의혹의 안개가 피어오르는 것 같았다. 대부분의 진실은 바로 드러나지 않는다. 오랫동안 덮여 있다가 나중에 알려지기도 한다. 어떤 말이든지 섣불리 속단하지 않도록 주의할 필요가 있었다. 내게 말해준 친구는 통계나 컴퓨터 운용에 대해서도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나를 만나자고 했던 그가 대화의 거의 대부분을 부정선거 얘기를 하는데 나는 속으로 약간 짜증이 났다. 세상에 분노할 것들은 너무 많았다. 그런데 그는 한 주제에 대해서만 계속 집요하게 얘기했다.
  
  “도대체 왜 부정선거 얘기만 계속하는 거야? 그게 불의라면 언젠가는 법원의 재검표 과정이나 낙선자의 소송을 통해 밝혀질 거 아니야? 우리가 자라오면서 부정부패를 한두 번 경험했나? 도대체 왜 그래?”
  내가 그에게 물어보았다.
  
  “나는 유명하지 않기 때문에 아무리 말해도 소용없어. 김동길 교수님 같은 저명인사가 말해야 조중동 신문에서 받아줄 거야. 서초동 집회를 열고 시위를 하는 친구들은 아무 힘이 없어. 김동길 교수를 비롯해서 사회 명사 몇 명이 떠들어 줘야 하는데 아무도 하지 않는 거야. 네가 김동길 교수에게 말해서 몇몇이 그렇게 해 봐.”
  
  나는 슬며시 속으로 화가 났다. 어떤 일이 벌어지면 사람들 모두가 자기는 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을 향해 “어떻게 해 봐요”라고 소리치고 있다. 자기는 손끝 하나 움직이지 않고 누군가 해주기를 원하는 것이다. 나는 전방 철책선 부대에서 순찰을 돌 때 죽음을 각오하기도 했었다. 거짓환자가 되어 병역을 면제받은 친구들은 우리의 안보도 미국이 해 주기를 바라는 경우를 봤었다. 내가 친구에게 이렇게 제의했다.
  
  “이봐 친구, 자네가 먼저 청와대 앞에서 혼자 피켓시위를 해보는 게 어떨까? 내가 그 피켓은 만들어 줄 께. 전쟁에서도 내가 먼저 선봉을 서야 남들이 따라오는 게 아닐까?”
  “아니야, 나는 유명하지 않아서 피켓 시위를 해도 효과가 없어.”
  
  “그렇지 않아, 자기가 한 알의 밀알이 되어 땅에 떨어져 썩어져야 수많은 밀알이 생겨나고 그렇게 하면 저절로 유명해지는 거야. 자네가 그렇게 불의에 분노하면 먼저 그런 밀알이 되어 희생이 되게. 그 다음에 김동길 교수같은 저명인사에게 부탁하는 게 도리야. 젊은 자네가 백 살 가까운 노인에게 업히려고 하면 안 되지.”
  
  “그래도 나같이 이름 없는 사람이 혼자 시위를 한다고 유명해지지 않고 사람들이 알아주지도 않을 거야.”
  “그렇지 않아. 서른 세 살의 청년 예수가 썩어지는 밀알 얘기를 하면서 혼자 십자가에 올랐어. 그리고 창에 찔려 죽고 그 후 역사를 관통하는 세계적인 존재가 됐잖아?”
  
  “그래도 예수는 지지세력이 있었잖아?”
  “아니지 아니지. 예수가 막상 십자가에 올랐을 때는 열두 명의 제자들도 모두 도망갔지. 베드로는 나 하늘에 맹세코 저 사람 모른다고 부인을 했고 말이야. 그러니 자네도 말로만 떠들고 분노하지 말고 행함으로 조금이라도 정의를 보이는 게 어떨까?”
  
  “그래도 내가 행하는 게 무슨 효과가 있을까?”
  “우리가 초등학교 다닐 때 네덜란드 소년 얘기 기억나지 않아? 방파제에 작은 구멍이 생긴 걸 보고 손가락으로 밤새 막으면서 죽어간 아이 말이야. 동네 가서 떠드는 것보다 그 작은 행위가 마을을 구한 거잖아?”
  
  대충 거기서 부정선거 얘기가 잦아들었다. 인터넷을 보면 온통 가짜뉴스와 정치 얘기로 오염되어 있다. 불의에 분노하는 사람들이 있고 정의에 성내는 분노가 있다. 전자는 의인이 일으키는 분노고 후자는 악인이 일으키는 분노다. 악인이 정의를 만나도 반드시 성을 낸다. 그 불의가 나타나는 것이 두려워서다. 양심의 급소를 찔려서 놀라서 펄쩍 뛰는 것이다. 분노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먼저 현명하게 살펴야 하는 세상 같다.
  
삼성전자 뉴스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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