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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칼럼
아름다운 감방생활 엄상익(변호사)  |  2020-09-16
감옥 안에서 인간의 본능은 더 불타 오르는 것 같다. 깡통을 잘라 붙여 날카로운 칼을 만들기도 했다. 그런 무기와 근육의 힘으로 좁은 감방의 넓은 영역을 차지하고 나머지 죄수들은 손바닥만한 공간에서 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 안에서도 담배장사꾼이 있고 특권과 온갖 부정부패가 있었다. 내가 만났던 조무래기 조폭은 징역 몇 년보다도 변호사에게서 담배 한 가치를 뺏고 지폐 한 장을 얻는 게 더 중요한 것 같기도 했다. 똑같은 철창 안에서도 별을 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바닥의 진창에 시선이 가는 사람도 있었다. 청주에서 신문사를 하는 한 언론인이 감옥생활하고 나와 내게 이렇게 소감을 얘기했었다.
  
  “정권을 비판하는 글을 써서 구속되겠구나 하고 각오를 했었죠. 예상대로 구속영장이 떨어졌어요. 그래서 감방으로 들어가면서 독서계획을 세웠죠. 이 기회에 수도생활하듯 그동안 못 읽었던 책이나 실컷 읽자고 마음먹었어요. 매일 매일 독서계획을 실천해 나갔어요. 그런데 아직 읽어야 할 책이 많이 남았는데 어느 날 나가라고 하더라구요. 아쉬웠어요.”
  
  그는 어디서나 살 줄 아는 인간이었다. 도종환 시인이 사는 산방을 찾아가 그와 차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가 이런 말을 했다.
  
  “독재에 반대하다가 감옥에 들어갔어요. 그 시절은 감옥 안에서 일체의 집필이 금지됐었죠. 어느 날 운동장에서 한 사람이 내게 슬쩍 볼펜심 하나를 주는 거에요. 시를 쓰지 못하고 있던 저는 눈물이 나도록 고마웠어요. 그 다음날부터 그곳에 있는 책들의 여백에 시를 쓰기 시작했어요. 제 시의 많은 부분이 감옥에서 쓴 겁니다.”
  
  살 줄 아는 사람들은 감옥 안에서도 꽃을 피우는 것 같았다. 나의 노트에는 일제 강점기 남강 이승훈 선생의 감방 생활을 적어놓았던 게 있다. 그는 감방에서도 새벽에 일어나 기도하고 날이 밝으면 성경을 읽었다. 간수들이 시키는 노끈꼬기, 봉투 붙이기 등의 일도 성실히 했다. 감방청소도 스스로 맡아서 했는데 어려서 머슴으로 있으면서 주인의 방을 청소하던 것처럼 깨끗이 했다. 그러면서 그는 감방 안의 죄수들을 위로하고 격려했다. 그는 나중에 주변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
  
  “내가 성경을 가까이 한 것은 감옥 안에서였다오. 성경을 읽으니까 마침내는 감옥이 조금도 괴롭게 생각되지 않았어요. 젊은 사람들도 다 싫어하는 감방의 똥 청소를 자진해서 도맡아 했죠. 손으로 똥을 치우면서 기도하기를 ‘주여 감사합니다. 바라건데 이 감옥에서 나가는 날 이 백성을 위하여 이 똥통 소제를 잊지 말게 하여 주옵소서’라고 했죠. 감옥이란 이상한 곳이에요. 강철같이 강해져서 나오는 사람도 있고 썩은 겨릅대 같이 푹 약해져서 나오는 사람도 있어요.”
  
  그는 감옥에서 구약성경을 이십 번 읽고 신약성경을 백 번 읽었다고 했다. 톨스토이도 참회하기 전에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도박, 간음, 싸움 등 온갖 죄악을 저질렀다. 이승훈도 장사꾼으로서는 성실하여 사람들로부터 신임을 얻었으나 술도 마시고 노름도 하고 여인들도 건드렸다. 그러나 그런 것들을 일시에 다 끊고 새 사람이 된 것을 다석 류영모 선생은 ‘성자적 모습’이라고 했다. 이승훈 선생은 오산학교를 세우고 3.1운동 당시 민족대표의 한 사람이었다. 동아일보 사장에 취임해서 물산장려운동을 전개하고 민립대학 설립을 추진하기도 했다. 그의 동상이 만들어지고 그 제막식 때였다. 사람은 관 뚜껑을 덮고서야 그 사람을 말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만년에 간호사 출신 젊은 여성과 염문이 있었다. 주위에서 그에 대한 추문이 돌기 시작했다. 동상 제막식이 끝난 후 그를 찾아간 다석 류영모 선생이 그런 추문에 대해 물었다. 이승훈은 아무런 변명 없이 “잘못됐소”라고 한 마디 했다. 그걸 보고 다석 류영모 선생은 이승훈이 큰 인물임에는 틀림없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유혹을 받아 쓰러지고 변명 없이 참회하는 인간적인 모습이 가슴에 스며들어 메모해 놓았었다. 하나님은 큰 그릇을 빚기 위해 사람들을 감옥에 집어 넣으시기도 하는 것 같다. 세르반테스는 오십이 넘어 감옥 속에서 ‘돈키호테’를 썼다. 사도바울은 감옥 안에서 신약성경의 상당부분을 썼다. 나는 감옥에 가서 죄수를 만날 때마다 ‘아름다운 감방생활’을 권하곤 한다.
  
  
  
삼성전자 뉴스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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