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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칼럼
시국단상(時局斷想) 1100편이 남기는 ‘이 시대 우리들 이야기’ 난세를 살아가는 우리 이야기 문무대왕(회원)  |  2020-09-24
조갑제닷컴에 1100여 편의 시국단상(時局斷想)을 게재했다. 십수 년이 걸렸다. 사회참여수상(隨想) 형식의 앙가주망 에세이(Engagement Essay)다. 제도권 언론에서 물러나 남쪽 항구로 귀항(歸港)한 뒤 재야(在野) 언론인으로 소일하면서 파도와 바람과 새들이 전해주는 자연의 소리도 듣고 사람들이 전해주는 민성(民聲)도 듣고 있다. 이들 사성(四聲)을 득음(得音)하면 인간 세상의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기도 한다. 그 광경을 정리, 기록하는 것이 하루의 일과처럼 되었다.
  
  작품 속에는 들어서 기분 좋고 상쾌한 것도 있고 더러운 소리를 들어 귀를 씻어야 할 정도의 추잡하고 지저분한 잡놈들의 권모술수 같은 것도 있다. 그래서 잠들어 있는 세상을 흔들어 깨우고자 아침에 불어대는 기상 나팔소리 같은 것과 미몽(迷夢)의 세파(世波)에 던지는 경적(警笛) 같은 생각들을 모아서 단상(斷想)으로 쓰고 또 썼다. 촌철살인(寸鐵殺人)의 공포와 살벌함은 되도록 피해 가면서 촌철구세(寸鐵求世)를 위한 따뜻하고 부드러운 마음가짐으로 에세이를 썼다.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바로 ‘이 시대, 우리들 이야기’다. 대체로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다수의 사람이 공감하는 보편적 이야기를 취합해 남기고자 힘썼다. 많은 분들이 격려도 해줬고 질타도 해줬다. 모두 고마운 분들이다. 감사하다는 마음을 전한다. 특히 원로 여류시인 K 교수께서 간단한 표사(表辭)로 격려해 주셨다. 황송(惶悚)한 생각과 함께 부끄러운 마음 가득하다.
  
  “호쾌한 화법과 수준 있는 필력을 겸비했다. 작가가 걸어온 삶의 궤적(軌跡)을 통해 바라본 시대와 사람들에의 통찰(洞察)과 제안(提案), 아울러 힘겹게 살아가는 이웃들에의 위안(慰安)과 옹호(擁護)의 시선이 소박하고 진지하게 서술되었다.”
  
  1100여 편의 시국 단상을 쓰면서 남기고 싶었던 ‘이 시대, 우리들 이야기’를 몇 가지 줄거리로 요약하면 이렇다.
  
  1: 우리는 난세(亂世)에 살고 있다. 난세란 기존의 사회질서가 붕괴된 상태의 시국이다. 기본과 원칙의 축대(築臺)가 무너져 내린 산사태 위험 지역 같은 세상이다. 난세엔 군웅(群雄)이 할거(割據)하고 백가쟁명(百家爭鳴)이다. 군웅과 백가들은 자신만이 애국자요, 깨끗하고 정직한 지도자라고 큰소리치지만 실제로 속을 들여다보면 그들은 모두 후흑(厚黑)들이다. 얼굴엔 철판을 깔았고 마음을 쓰는 속바탕의 심보는 솥 밑바닥보다도 더 시커먼, 믿을 수 없는 지저깨비 같은 위선자(僞善者)들이다. 검은 가면(假面)을 쓰고 국민에게 사기행각을 일삼는 위장 세력(僞裝勢力)들이다. 순수한 국민은 속는 줄도 모르고 넘어가고 있다.
  
  2: 양심과 정의와 공정이 실종(失踪)됐고 법치의 법률적 기준마저 무너진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권세가(權勢家)들은 양심과 정의와 공정을 부르짖고 있지만 모두가 자신들은 치외법권(治外法權)이고 다른 사람들에게만 들려주는 생색내기식의 양심이요, 정의요, 공정일 뿐이다. 양심과 정의와 공정, 법치의 기준마저도 권세가들은 그들 편리한 대로 뜯어고치고 적용하는 장막 속의 어두운 시대가 오늘의 사회다.
  
  3: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운동권 세력이 공존하고 있다. 산업화 세력은 일하면서 싸우고 싸우면서 일해왔다. 그래서 배고픔도 해결하고 부국강병과 경제발전도 이룩했다. 그러나 자칭 민주화 운동권 세력들은 말로만 민주주의를 부르짖을 뿐, 실제 행동은 민주주의를 짓밟고 산업화 세력들이 이룩한 반석 위에 올라 앉아서 놀아나고 있다. 변형, 변질된 위장 민주주의의 분뇨를 마구 배설해내는 암적 존재들로 표변했다. 국법을 짓밟는 탈선과 폭주족들이다. 염치와 양심과 정의, 공정 같은 것은 헌신짝처럼 던져 버리고 권력과 금력(金力)의 노예가 수전노(守錢奴)들로 변신했다.
  
  4: 이 시대 관변(官邊), 어용(御用) 지식인 또는 지성인들은 권력 지향적인 철면피로 탈바꿈해 버렸다. 창녀와 작부(酌婦)들은 먹고 살기위해 몸을 팔고 웃음을 팔며 술을 따른다는 명분이라도 있지만, 이 시대 관변, 어용의 지식, 지성인들은 무엇을 구걸하기 위해 양심을 팔고 학문을 팔며, 명예와 자존심을 파는 가련한 군상(群像)들로 전락했는가? 자칭 운동권 출신들이 유독 심하다. 그들은 초심(初心)을 잃어버리고 기득권세력의 살찐 돼지가 되어 씩씩거리며 거친 숨을 내쉬고 있다.
  
  5: 기자정신과 기자혼(魂)을 제대로 지키는 언론인의 수가 적음이 안타깝다. 일제 식민지 치하의 언론인들은 조국의 암울한 미래를 걱정하고 민족의 활로를 개척하기 위해 노력하는 선각자(先覺者)요, 우국지사였었다. 권위주의 시대 언론인들은 그래도 언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투쟁한 기자정신과 기자혼이 충만한 기자다운 기자들이 많았다. 그러나 오늘의 언론인들은 일개 노동자로 전락했다. 사회적 감시견(監視犬)으로서의 역할은 뒷전이고 언론의 사회적 사명감을 망각한 지렁이같이 흐느적거리는 영혼 없는 기자들만 우글거리는 변질된 언론풍토가 참으로 애석하다.
  
  6: 다인종, 다민족의 세계화 시대에 ‘우리민족끼리’만을 외치는 우물 안 개구리 같은 족속들이 시대착오적 작태를 공공연하게 자행하고 있다. 북쪽 오랑캐집단들과 공모 작당하여 통일이 아닌 평화를 부르짖는 위장평화(僞裝平和) 세력들이 먹장구름을 몰아오고 있다. 몇 년 전 중국여행 중 조선족 여성 가이드가 들려준 얘기다. 조선족 가이드는 자기 남편이 조선족 중공군 소령이며 중공군의 일원으로 한국전선에 출정하면 대한민국 국군의 가슴에다 총부리를 겨눌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동맹과 적군을 구분하지 못하는 시대착오적인 철부지들이 우글거린다. 이것이 오늘의 안보 현실이다.
  
  7: 국민으로부터 의심받고 신뢰받지 못하는 최고 존엄은 무신불입(無信不立)이다. 미련하고 고집불통이며 그 밑의 간신(奸臣)들은 투계나 투견들처럼 안하무인이면 더욱 그렇다. 높은 벼슬아치들은 권력에 도취돼 희희낙락하며 자기 새끼들 챙기기에 여념이 없고 낮은 벼슬아치들은 던져주는 고깃덩어리를 뜯어 먹느라고 도둑이 들어와도 짖지 않는다. 그래서 총리급 탐관오리(貪官汚吏)에다 국장급 탐관오리들이 득실득실하고 있다. 그래도 최고 존엄은 쪼다처럼 등하불명(燈下不明)이다.
  
  8: 민의(民意)의 전당인 국회는 돈사(豚舍)를 방불케 하고 있다. 대표라는 자는 살찐 돼지 같고 그 밑의 병아리들은 겁도 없이 삐악거리며 돌아다니고 있다.
  
  9: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이면우 박사는 우리 사회의 3대 공적(公敵)은 *무식한 자가 전문직 자리를 차지하는 것 *무식한 자가 부지런한 것 *무식한 자가 소신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무식하고 불통인 자가 권세를 잡고 천하를 호령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위태로워지는 게 국가존립(國家存立)일 것이다. 기본과 원칙이 무너진 이 시대이지만 그러나 우리들 이야기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삼성전자 뉴스룸
  • 白丁 2020-09-24 오후 10:52:00
    文과 武가 만나면 빛날 빈(斌)이 되지요. 水位를 조절해야 할 수 밖에 없는 제도권 언론에서는 볼 수 없는 문무대왕님의 빛나는 글, 감사합니다. 健筆하소서.
  • rhois99 2020-09-24 오후 8:04:00
    문무님 울분을 참으십시요 저들이 좋다는 개돼지들이 더 많으니 어쩐답니까 당분간은 참으며 내자식부터 가르처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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