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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칼럼
친척 아저씨인 이호신 화백의 삶 엄상익(변호사)  |  2020-10-09
어머니의 친정 집안은 친척까지도 끔찍히도 가난했던 것 같다. 함경도 출신의 어머니는 뜨개질 품팔이를 해서 변두리에 작은 집 하나를 사두었었다. 북에 있는 아버지 어머니와 동생들이 언젠가 남으로 내려오면 묵게 할 집이었다. 어느 날 어머니의 삼촌이 올망졸망한 아들들을 데리고 깡촌이던 영덕에서 무작정 상경했다. 어머니는 오갈 데 없는 삼촌 가족에게 그 작은집에서 당분간 살게 했었다.
  
  어쩌다 그 집을 가면 창호지 문에 크레용으로 그린 그림이 걸려 있었다. 촌수로는 아저씨 뻘이지만 나보다 몇 살 어린 초등학생의 작품이었다. 그림을 그리는 재주가 탁월하다는 소리를 했다. 나의 아저씨가 되는 그 소년은 학교를 갈 형편이 못 되는 것 같았다. 힘든 시대 속에서도 유난히 가난했기 때문이다. 나의 아버지는 그 소년을 신문사의 사환으로 넣어주었다. 그 소년은 틈만 나면 박물관의 오래된 그림 앞에 가서 살았다. 김홍도나 정선의 그림에 넋을 잃은 채 보고 또 보고 했다. 혼자 옛날의 그림에서 화법을 배워가며 매일 조금씩 그림을 그려 나갔다.
  
  학비가 없어 대학에도 가지 못했다. 그래도 그는 그림을 손에서 놓은 적이 없었다. 지리산의 계곡과 봉우리를 찾아다니면서 위대한 자연 앞에서 화첩을 놓고 생생한 바람을 느끼면서 그림을 그려 나갔다. 봉건적이고 고정관념이 있는 미술계에서는 그를 인정해 주려 하지 않았다. 어느 날 뉴욕의 미술관에서 한국으로 온 큐레이터의 눈에 그의 작품이 들어왔다. 그러면서 그는 처음으로 인정을 받는 화가가 됐다. 온 인생을 그림에 던진 그의 개인 전시회를 더러 가보기도 했다.
  
  며칠 전 추석 연휴 때 이천의 장암리에 있는 소설가 이문열씨의 서재로 놀러 갔었다. 이문열씨가 나를 끌고 자기 침실로 데려가 벽에 걸린 그림 한 폭을 보여주었다. 퇴락한 기와집이 한 채 그려져 있었다. 그림 속에서 기와가 곧 부스러져 나갈 듯했고 툇마루쪽도 뒤틀려 있었다. 이끼 냄새와 곰팡이 냄새가 풍겨올 것 같이 생생한 그림이었다.
  
  “이걸 이호신 화백이 그려줬어요. 그리고 우리집안 13대조 할머니도 그려 줬죠.”
  이문열 선생은 스마트폰에 영상으로 보관되어 있는 할머니의 그림을 보여주며 말했다.
  
  “우리 집안 수십 명의 여자들을 이호신 화백이 한 명 한 명 만나보고 영감을 얻어 그린 할머니의 모습입니다.”
  
  한 평범한 시골 할머니의 소박한 모습이었다. 나보다 나이가 어린 아저씨의 예술적 성공에 나는 기뻤다. 어머니의 집안은 물질적으로는 처절하게 가난했지만 재능을 타고난 사람들이 많았다. 어머니의 할아버지는 뛰어난 시인이었다. 그 문집을 나는 지금도 가지고 있다.
  
  며칠 전 나의 블로그에 한 분이 달아준 댓글을 보고 정신이 번쩍 나게 깨달은 게 있다. 부자 집에 태어난 사람들만 금수저가 아니라는 것이다. 특별한 재능을 가진 것도 머리고 좋은 것도, 성실한 근성 자체도 다 축복이라는 것이다. 고정관념에 박혀 의식을 하지 않았던 것을 그 댓글의 주인공은 내게 깨우쳐 주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참 다양한 재능을 주시는 장면을 볼 수 있었다. 나무나 돌 그리고 철을 다루는 재능을 주기도 하고 정교하게 보석을 깎는 기술을 주기도 했다. 좋은 머리로 책을 만들 수 있는 재능을 주기도 하고 사람마다 그에 맞는 정도의 달란트와 성실을 주신 것 같다. 다 똑같지는 않았다. 작게 주는 사람도 있었고 많이 주는 사람도 있었다. 기본 재능을 작게 주는 사람에게는 노력하는 자세를 주문하시는 것 같았다. 사람은 어떤 사람이든 독자적인 천부의 재능을 가지고 있고 설령 최소한의 달란트일지라도 거기에 충실했을 때 하나님은 틀림없이 은총을 내려 주실 것이라고 믿는다. 성공의 비결은 비록 오래 걸릴지라도 일정하고 변하지 않는 목표에 있는 게 아닐까.
  
  친척 아저씨인 이 화백의 삶이 그런 것 같았다. 살아가는 한 걸음 한 걸음이 그 자체로 가치가 있어야 할 것 같다. 커다란 성과는 조그마한 가치 있는 것들이 모여서 이룩되는 게 아닐까. 과정에 쏟아진 끈기와 노력과 의지가 성공 그 자체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삼성전자 뉴스룸
  • 1 2020-10-18 오후 2:42:00
    5년 동안 국민이 맡긴 주권으로 세싱을 바꿔보겠다는 잘못된 이념의 소유자로 나라를 온통 쑥대밭으로 만들고있는 자유 민주주의애 대한 무식,무능, 문외한의 정치행패를 저지르고있는 오늘의 현실에 "너 자신을 알라"는 그리스 신전의 경구는 국민에게 시사하는바 많다!!! 어쩌다 이런 꼴을 보게 되었는지 몰라도 나자신을 모르는 국민과 나 때문인것같다!!! 주어진 수저가 금이었든 흙이었든 작은것이든 큰것이든 가진것으로 자유 민주국민의 똑똑한 행세를 못한 벌을 받는것이 현실인것 같다!!! 좋은 글에 감사! 감사! 감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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