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먹어가면서 밤에 잠이 안 올 때도 있고 새벽에 불쑥 잠이 깨 머리 속이 물같이 맑아질 때가 있다. 오늘 새벽 화장실에 갔다 온 후 잠이 달아났다. 책꽂이에 꽂혀있는 ‘변호사일지’가 무심히 눈에 들어왔다. 무심히 한 페이지를 들추었다. 천구백구십팔년 사월 이십삼일 한 남자를 상담한 얘기였다. 오십삼 세라고 적혀 있는 그의 이름 아래 그가 말한 게 이렇게 적혀 있었다.
“열두 살 때 서울역 앞에서 거지 생활을 했어요. 겨울이면 신세계백화점 뒤쪽의 창문 아래 거지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였어요. 백화점의 스팀의 온기가 그쪽으로 새어 나왔으니까요. 잠은 서울역 대합실 구석에서 잤어요. 우리 거지아이들은 깡통을 들고 찬밥을 얻어 오는데 그게 얼음같이 딱딱하면 남대문시장 안에 버려진 연탄재의 남은 불 위에 깡통을 올려서 그 안에 든 밥을 녹여서 먹었어요. 오일육 혁명이 일어나니까 우리 거지들을 막 잡아들이더라구요. 아동보호소라는 곳에 갔는데 군용텐트에서 자게 하면서 보리밥과 강냉이죽을 주더라구요. 어렸을 때 부모의 손을 잡고 가는 아이들을 보면 참 부러웠었죠.”
육이오 전쟁 때 부모가 죽고 버려진 아이들은 대부분 거지가 됐었다. 정부가 그 아이들을 도와줄 여력이 없던 때였다. 가난한 우리 집 문간에도 아침만 되면 깡통을 든 거지가 찾아왔었다. 나는 변호사일지를 계속 몇 장 넘겨본다. 이십여 년 전인 그 무렵 사십대 중반의 청소부인 남자가 나를 찾아와 이런 하소연을 하고 있었다.
“공무원 시험준비를 하다가 서른다섯 살이 되니까 아무 거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일 년 동안 엿공장을 다니다가 구청 청소부로 들어갔어요. 쓰레기 수거하는 차에서 일하게 됐는데 사람들이 각종 쓰레기를 가져와 적재함에 있는 내게 그냥 던지는 거에요. 그때는 그랬어요. 한번은 쓰레기 매립장으로 시장님이 오신다고 어떻게나 다그치는지 몰라요. 쓰레기차에서 급하게 뛰어내리다가 넘어져 무릎연골이 파괴되고 인대가 끊어졌죠. 다리를 못 쓰게 되니까 이번에는 길거리의 쓰레기통 닦는 일을 시키더라구요. 하루종일 길거리 쓰레기통을 보는 사람마다 칭찬할 정도로 광이 나게 열심히 닦았어요. 금방 더러워질 건데 왜 그렇게 힘들게 닦느냐는 사람도 있었죠. 그런데 어느 날 허리가 삐끗하면서 바닥에 주저 앉았어요. 병원에 가 봤더니 추간판이 탈출했다고 하더라구요. 더 이상 쓸모가 없어지니까 해고통지가 날아오더라구요.”
나의 변호사일지 속에서 그들은 끊임없이 와글거리고 있는 것 같았다. 사십대 초반의 정씨라는 사람이 '일지' 속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부모님은 얼굴도 몰라요. 고아원에서 아홉 살 때 나와서 구두닦이 심부름을 하고 컸어요. 시골로 가서 머슴살이도 했죠. 서울로 올라와 중앙시장에서 좌판을 놓고 벨트하고 춤추는 인형을 팔았어요. 한 달에 이십만 원을 내는 사글세 방에 아내와 함께 살았죠. 어느 여름인가 교통사고를 당해 다리를 다쳤어요. 차는 그대로 뺑소니를 놓았구요. 몸은 아픈데 그 때 사흘 동안 계속 비가 내리는 거에요. 벨트나 인형이 팔릴 리가 있나요. 그때 도둑질을 할 생각이 들더라구요. 지하다방들이 많은데 그런데는 새벽에 문을 열기가 쉬웠거든요. 나름 열심히 살았는데 한순간 생각을 잘못한 거에요. 뭐 잘못했는데 감옥가도 억울할 건 없죠.”
변호사생활을 하면서 사회의 바닥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리고 사연을 들었다. 인간이란 무엇인지 행복이란 무엇인지 생각을 해 왔다. 청계천 고가도로 아래서 잠을 자면서 구걸하던 거지 출신을 눈 덮인 감옥에서 만난 적이 있었다. 그는 살인죄의 누명을 쓰고 징역생활을 하고 있었다. 범인이 잡히지 않으면 힘없는 사람들을 범인으로 만들어 버리는 그런 세월도 있었다. 감옥 안에서 그가 간절한 눈빛으로 내게 이렇게 말했었다.
“청계천에서 거지 생활을 할 때 천 원짜리 지폐 한 장을 얻는 날은 횡재하는 날이었죠. 그런 날은 개천가에서 창녀를 하는 옥순이와 만나 동시상영을 하는 극장구경을 했어요. 너무나 행복했었죠. 저는 소원이 사회에 나가서 된장찌개 한 그릇 사 먹어 보는 거에요.”
오랜 세월 전에 만났던 그들이다. 보호시설의 차디찬 방에서 혼자 울면서 죽어간 사람도 있고 다시 어둠 속으로 들어간 사람도 있다. 왜 어떤 사람은 따뜻한 햇볕 아래 있고 어떤 사람은 몸 속에 고드름이 가득할 정도로 추위에 떨어야 하는지 나는 그 이유를 모른다. 그냥 봤을 뿐이다. 그리고 변호사일지를 그만 쓸 나이가 됐다. 이제는 감사하며 햇살을 맞이하고 감사하며 간소한 식탁을 대하고 감사하며 글을 쓰고 감사하며 잠자리에 든다. 삶을 누림이 얼마나 즐거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