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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國에서 매년 'Veterans Day'를 맞이하면서 크리스 김, 한인(韓人)미군재향군인회 회장의 國軍포로에 대한 견해 크리스 김(美國에서)  |  2020-10-18

크리스 김, 한인(韓人)미군재향군인회 회장의 國軍포로에 대한 견해

매년 Veterans Day를 맞이하면서

해마다 Veterans Day가 다가오면 행여 누가 알게 될까 두렵고 부끄러운 사실이 내 마음 어두운 그늘 속에 독버섯처럼 내면을 파고든다. 불과 100년 전만 해도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난한 나라 중에 하나로 뽑혔지만, 이제는 세계 IT강국,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 되어, COVID-19의 전 세계적인 난국 속에서도 K-방역으로, 각종 한류문화 컨텐츠로 세계의 부러움을 사는 나라가 되었다. 

과연 우리 대한민국은 이러한 가시적이고 경외스러운 성과만큼이나 일류국가가 된 것일까?

난, 그 질문에 선뜻 그렇다 라고 말할 수 없다.

그 화두는, 오랜 역사 속에 수많은 외세에도 절대 굴하지 않고 나라와 민족의 이름으로 단결하여 싸우던 우리 민초들이 정녕 외세보다 더 잔인하게 서로 피부림나게 싸운 살육의 역사를 갖고 있다는 사실에서 시작된다. 그것은 양반 노비 신분 격차의 이름으로, 정권 탈욕의 이름으로, 때로는 종교탄압, 사상적 이념 차이의 이름으로 반복됐다.

그중에서도 제일 잔혹하고 피해가 많았던 625 동족상잔, 장장 3년1개월간의  전쟁으로 전 국토가 폐허가 되고 확인된 사망자만 150만 명, 부상자 360만 명의 참화를 내고도 승자 패자도 없이 휴전이란 이름으로 막을 내린 기가 막힌 전쟁역사이다.

1981년 나는 미 공군에 입대한 후 88올림픽 때부터 주한미군이 되어 서울 용산에 있는 한미연합사(ROK/US Combined Forces Command)와 유엔사 (United Nations Command)에서 사령관 직속 통역관으로 근무하면서, 한국전쟁사에 관심을 갖게 되고 내가 전혀 몰랐던 국군포로 문제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어졌다.

남한은 북한의 기습남침에 존망 위기의 국가를 지키고자 많은 젊은이들이 자의로, 혹은 타의로 국군이 되어 인민군과 중공군과 싸우다 수많은 국군 용사들이 전사(국군사망 227,800명)하고, 행방불명, 불구가 되고 혹은 공산군의 압도적인 무력에 포로가 되는 희생에도 불구하고, 분단 조국의 통일을 위해 최전선에서 물러나지 않고 버텼다.

그러나 이 동방의 보잘것없는 나라를 구하기 위해 유엔군 이름으로 파견된 미국 젊은이들 (미군 사망 33,747명)의 무수한 희생이 지속 되자 이를 막고자 급파되어 휴전을 서두른 아이젠하워 장군과 북진통일을 주장하며 휴전을 거부하는 이승만정권 사이에서 공산군에 잡힌 수많은 국군포로는 졸지에 자신들의 생사가 걸린 난감한 입장이 되었다.

결국, 한미상호방위조약과 경제원조 등을 미국에게서 약속받고 나서야 휴전 체결 동의와 포로 교환을 합의하게 되고, 미국과 북한은 휴전과 포로 교환을 하루라도 빨리하려고 서둘렀다. 북한 인민군은 1951년 6월 국군 및 유엔군 포로 수가 8만5428명이라는 내용의 전단을 살포했으나 그해 12월에 실제 귀환한 국군 및 유엔군 포로는 고작 1만3444명. 남측에서 계산한 수치로 계산해도 최소 6만 명 이상의 차이가 있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교섭 내내 휴전협정을 반대만 했기에 미송환 국군포로는 아예 챙기지도 못 했고, 김일성은 불법으로 포로송환 전 수만 명의 국군포로를 인민군에 강제 편입하기도 하고 또 탄광으로 강제 이동시켜 남측의 무관심을 철저히 이용했다.

이런 미송환 국군포로들의 존재 사실을 학교에서 배운 적도 없었고 들은 적도 없었던 나는 미군에 입대하고 우리 민족에게 이런 가슴 아픈 역사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부터 그것은 나의 가슴 속에 불편한 구석이 되어 문득문득 나의 이기적인 양심에 바늘을 찌르며 고통을 주었다.

불행히도 그 이후의 역대 어떤 정권도 국군포로 송환문제에 진지하게 접근하지 않았다. 휴전 후 미송환 국군포로는 북녘땅 탄광지대 등에서 인간 최하의 생활을 강요당하고, 그로 인해 생이별을 한 이산가족들은 점차 국민 의식 속에서 잊혀갔다.

한국전쟁이 잊힌 전쟁이라면, 국군포로야말로 철저히 잊힌 존재들이었다. 1994년 조창호 중위(한국전쟁 당시 계급)가 탈북하고서야 북한에 남겨진 국군 포로의 존재가 일반에 알려졌고, 2010년까지 총 79명의 국군포로가 탈북해 남한으로 왔다. 이제 북에 남은 그들은 80대 후반, 90대 일 테니 그들의 열악한 생활에 아마도 500명 정도의 국군포로가 아직 생존해 있을 거로 추정하고 있다.

우리 남한이 경제적으로 경이로운 기적을 이루며 번영 발전하는 모습을 국내외에서 칭송할 때마다, 나는 그 화려함 뒤에는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공산주의 인민군과 피 말리는 전투를 치르다 적의 포로가 되었던 우리 국군 용사들의 희생과 그들이 그토록 지키려 했던 대한민국 정부와 국민의 철저한 외면과 망각이 있었음을 고통스럽게 기억해야 했다. 그들의 희생이 없었으면, 지금의 대한민국 자체가 과연 존재할 수 있었을까? 남쪽선 ‘외면’ 북쪽선 ‘학대’ 남북정치에 희생돼 철저히 잊혀진 존재가 되어 돌아오지 못한 국군포로, 우리는  이 불편한 진실을 언제까지 덮고 모른척할 수 있을까?

비교하고 싶지는 않지만, 미군은 합동 전쟁포로 및 실종자확인사령부 JPAC(Joint POW/MIA Accounting Command)를 창설하고, 그들 부대의 모토 ‘Until They Are Home’ 말 그대로 미군은 한국전, 월남전 후에도 꾸준히 북한과 베트남에 남겨진 미군 전사자 유골을 수급하려 파견대도 보내고, 시신  한구당 적성국이 매겨놓은 대가를 현찰로 지불하면서까지 뼛조각이라도 찾아오는 것을 보며, 부럽기도 하고, 정작 수십 년간 적진에 남겨져 살아있는 우리 국군포로의 존재와 송환을 외면한 한국인으로서 창피함을 느꼈다.

미군들은 전사자 유골 뼛조각, 때로는 군인명찰택이라도 발굴하면, 알루미늄관에 보장하여 성조기를 씌운 후 군 수송기로 운반한 후, 미군 의장대의 근엄한 의례행사, 또 그곳에 영접까지 나오는 미 대통령의 모습을 우린 심심찮게 TV에서 보며,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No Soldier Left Behind”를 철저히 지키는 미군들과 군 통수권자를 보며, 다양한 이민족으로 만들어진 국가이지만 미성조기 아래 하나로 뭉치는 애국심, Veterans를 우대하며 그들에 대해 “Thank you for your service”를 입에 달고 사는 일반국민들을 볼 때 우린 미국이 진정한 일류국가임을 인정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진정 대한민국이 자랑스럽고 경이로운 나라가 되기 위해선, 다시는 우리 민족 간에 잔혹스런 정쟁과 전쟁이 없어야 할 것이고 어떤 이름으로도 그 과정에서 희생당한 영혼 하나하나를 기억하고 존중해주어야 한다.

그것이 이 시대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최소한의 양심이고 우리가 지고 있는 마음의 빚을 어느 정도 갚는 거라 생각된다. 그러한 최소한의 기본 틀이 없는 나라는 다른 일류국가들이 보기엔 안 좋은 의미의 ‘경외스러운 나라’로 보일 것이다.

국가 존립의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미군을 주축으로 한 유엔군과 우리 국군 용사들의 희생이 없었으면 오늘의 현대자동차 제너시스, 삼성 TV, BTS의 Dynamite, 그리고 어쩌면 이렇게 커진 미주 동포사회 자체도 없었을 것이다.

우리가 그렇게 싫어했던 일본의 아베 전 수상도 기회만 되면 오래전 자행된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 해결을 미국과 국제사회에 외치지 않았던가.

그나마 다행인 것은 조창호 노병의 귀환 이후 유해발굴사업이 지난 2000년 4월 6.25 전쟁 5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육군본부에 의해 시작되어 2007년 1월 주체가 육군에서 국방부로 전환 되면서 좀 더 체계를 갖춰 ‘그들을 조국의 품으로’라는 부대훈으로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 정식으로 창설되어, 유해발굴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그러나 유해 소재를 파악하는데 바탕이 되는 증언을 해 줄 6·25 경험세대와 참전용사는 점차 세상을 뜨거나 고령화하고 있고, 각종 국토개발과 지형변화로 전투현장이 훼손되고 있어 유해발굴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이제 유해발굴사업은 ‘시간과의 전쟁’을 하고 있다. 이참에 미송환 국군포로의 실정파악과 왜곡된 역사의 재정립, 그들에 대한 명예도 회복시키는 노력이 병행되기를 바란다.

자유민주주의를 믿는 우리에게는 70년 전 피부림나는 민족상잔의 비극, 6.25 전쟁 후 국가를 위해 싸우다 적에 포로가 된 우리의 전우들을 제대로 찾아오지 않은 마음의 빚이 있다. 그 과제는 미국이 해 줄 것이 아니고, 경외스러운 한강의 기적을 이루고 이제 세계 일류국가의 반열에 오르려 하는 대한민국이 당연히 해야 될 오래된 과제이다. 그러기에 금년에도 미국의 퇴역군인으로서 매년 맞이하는 Veterans Day이지만, 아직도 살아있을 고국의 한국전쟁 미송환 국군포로를 적극적으로 찾으려 하지 않는 우리들의 민낯이 다른 나라에 알려질까 불안하고 창피한 것이다.

이 비밀스럽고 불편한 진실은 1981년 미국공군에 현역 입대한 후, 처음에는 호기심과 의아함으로, 나중에는 스스로의 분노와 무력감으로, 23년 군 생활 내내 날 곤혹시키고, 지금까지도 내 마음속에 무서운 생명력의 독버섯이 되어 나에게 달려든다.

-크리스 김,  한인(韓人)미군재향군인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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