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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칼럼
열네 살 소년의 친일(親日) 엄상익(변호사)  |  2020-11-19
얼마 전 조정래씨가 아직도 이 땅에 친일파가 백오십만 명 가량 있다고 하면서 위원회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주장을 보도를 통해 들은 적이 있다. 해방 후에 친일반민족조사 특별위원회가 있었다. 그리고 이천 팔년경이었다. 위원회가 다시 만들어져 친일 반민족행위자를 색출해서 명단에 올리고 그 후손들로부터 재산을 환수하는 광풍이 불었다. 소설가 조정래씨의 말대로 북과 통일을 앞두게 되면 다시 한번 위원회가 만들어져 친일파의 후손들을 정리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십이년 전 위원회가 친일파의 후손으로부터 재산을 환수할 당시 변호사로 몇몇 친일로 몰린 집안의 사건을 맡아 처리한 적이 있었다. 친일의 혐의를 뒤집어 쓴 집안들의 분노와 반발 역시 대단했다.
  
  이천팔년 오월 육일 해가 질 무렵 퇴계로 쌍림동 부근의 평양냉면집이었다. 일제강점기 경성방직을 경영했던 김연수 사장의 손자들이 모여있었다. 경성방직은 유일한 민족기업으로 일본의 업체들과 경쟁하던 회사였다. 경성방직에서 나온 자금으로 동아일보가 설립되고 민족대학인 고려대학교가 건축되기도 했다.
  
  “며칠 전 텔레비전 토론 프로그램에서 출연한 사학자를 보니까 정말 완장인 것 같더라구. 도리우찌를 씌우면 일본 고등계 형사고 인민복을 입히면 철저한 공산당이겠더라구. 자기이론이 아니면 누구의 말도 듣지 않더라구. 그런 빨갱이들이 아직도 설쳐대요.”
  
  빨갱이는 극좌를 친일파는 극우를 상징하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 자리에 있던 다른 사람이 말을 받았다.
  
  “정권이 바뀌었어도 텔레비전 방송국은 모두 빨갱이들이 잡고 있잖아요? 그놈들은 정말 나쁜 놈들이라니까.”
  
  그의 말 속에는 부모 때부터 쌓여온 오래된 분노가 들어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은 지난번에 친일진상조사위원회에 가서 조사를 받고 왔다. 그중 한 명이 입을 열었다.
  
  “지난번에 위원회에 소환됐는데 조사관이 나보고 할아버지가 천구백십사년 일본으로부터 ‘목배(木盃)’를 받은 걸 친일의 이유라고 하면서 따지더라구. 나는 그 ‘목배’라는 소리를 듣고 그게 뭔지도 모르고 위축이 됐었어. 그 다음으로 조사관이 나보고 할아버지가 천구백이십팔년 조선 박람회에 협조를 한 것도 친일행위인데 그 이유를 대라는 거에요. 그냥 주눅이 들어 있었지. 나중에 알아보고 대답하겠다고 고개를 숙이고 죄인이 돼서 아무 말도 못했어요. 그렇게 돌아와서 알아보니까 너무 억울하더라구.”
  
  그가 상 위에 놓여있는 물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시고는 말을 계속했다.
  
  “집에 와서 아버지에게 물어봤어. 아버지가 몸이 아파서 조사를 받는데 가시지는 않았잖아? 아버지 말이 우리 집안에 땅이 있는데 그 위로 일본사람들이 도로를 만들었다는 거야. 보상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수용이 된 거지. 당시 정부에서 미안하니까 사은품 비슷하게 나무로 깎은 술잔을 수용당한 집마다 하나씩 준 거야. 아직도 시골집 창고에 그게 있다고 하더라구. 그게 무슨 친일의 증거냐구?”
  
  “목배라는 게 별 게 아니구나.”
  참석했던 다른 형제가 기가막히다는 듯 혀를 찼다.
  
  “확인해 보니까 더 한심한 게 있더라구. 위원회 놈들은 기본 숫자 계산도 못한다니까.”
  “그게 뭔데?”
  참석한 다른 사람이 물었다.
  
  “천구백십사년이면 우리 할아버지가 열네 살이야. 중학교도 가기 전이지. 증조할아버지 땅이 일부 명의가 넘어와서 목배를 받은 거지. 중학교도 가지 못한 아이가 무슨 친일을 했겠어? 위원회는 친일파로 결론을 내놓고 우리 할아버지를 어린시절부터 찍어버리는 거야. 그리고 조선박람회에 협조했다는 것도 따지고 보면 말이 안되는 소리야.”
  
  “그건 왜?”
  다른 사람이 물었다.
  
  “할아버지가 일제강점기 공장에서 광목을 만들었어. 일본 기업들과 죽기 살기로 경쟁하면서 살아남은 거잖아? 제조업을 하는 사업가라면 당연히 제품을 박람회에 출품하는 건데 그걸 가지고 친일행위를 했다고 족치는 게 말이 돼? 위원회 조사관들의 할아버지가 일제강점기에 뭘 했는지 궁금해.”
  
  친일파 후손 색출의 광풍이 불던 그 시절의 한 장면이다. 현재의 눈으로 백년 전의 그 시절을 본다는 것이 얼마나 정확할까 하는 의문이 드는 광경이었다. 남을 정죄하고 역사를 정죄하는 것은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삼성전자 뉴스룸
  • 프레이고 2020-11-24 오후 10:26:00
    개만도못한 조선시대양반놀음에 미친 개만도 못한종자
    이름하여 빨갱이
  • 정답과오답 2020-11-19 오전 8:03:00
    민족의 광기 좌파의 특징이죠 더 기막힌 것은
    그런 소리 하는자들의 조상도 친일파들이 득실거린다는거
    내로남불이 민족의 본질이 된거 같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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