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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칼럼
“文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 있으랴” 헛짓거리를 벌려놔 민생을 망쳤으면 최소한 헛소리라도 금해주시길 塵人 조은산  |  2020-11-25

 그해, 소과 시험은 기일에 맞춰 속행했다.

진사의 벼슬에 응시한 각 고을의 선비들이 제 아비의 지게에,
고삐 쥔 머슴의 우마차에, 혹은 절뚝거리는 제 발 위에
각기 비루한 몸뚱어리를 얹어 성문 앞에 당도했다.

성문 앞은 선비들을 상대로 각종 문필기구와 요깃거리 등을
팔아 치우려는 잡상인들로 문전성시를 이루었고,
인근 학당에서는 동문들이 몰려나와 선비들을 응원했다.

선비들은 비척대고 비실대며 근정전 앞에 도열했고,
어전의 위엄을 감내한 그들은 낡고 묵은 지필묵을 펼쳐 앉았다.

과제를 기다리던 중, 전날 과음한 어느 선비가
토악질을 해댔고 곧 관리들에 의해 끌려가 매질을 당했다.
철퍽 철퍼덕 볼기짝을 치대는 곤봉 소리가 요란했고
주변에서 낄낄대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토사물은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 고약한 냄새를 내뿜었다.

감독관들이 ‘엣헴’ 하며 긴장감을 돋구었고 이내 방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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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  시 -

묻노니 논하라.

선거 전, 민주당이 만천하에 이르길
집값을 반드시 내리겠다 확언하였는바,

민주당이 압승을 거둔 서울의 집값이 유난히
대폭등한 이유는 무엇인지 논할 것이며,

대폭등한 집값에 서울의 유주택자들이 돈방석에 앉아
앞다퉈 독일제 고급 승용차를 계약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집도 못 사고 전·월세 역시 폭등해
길바닥에 나앉을 처지의 처량한 무주택자들이
아직도 민주당을 지지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논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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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들은 일제히 고개를 숙였고 이내 붓을 놀리기 시작했다.
지면을 스치는 붓들이 슥슥 삭삭 제각각의 소리를 내며
할당된 공백을 채웠고 때때로 선비들은,
‘타하’ ‘어허’ ‘췌잇’ 등의 탄식을 내뱉으며 답안에 골몰했다.

“종료 십 분 전이오!” 감독관이 징을 울렸다.

붓을 놀리는 소리가 더욱 빨라졌고 한 선비는 감독관의
도포 자락을 붙잡고 늘어졌다.

“답안을 잘못 썼소. 답안지를 바꿔주시오. 부탁이오.”
선비의 읍소에 감독관은 곤봉을 흔들며 답했다.

“국시를 미룬 의원들의 곤궁함도 내치는 게 국법의
지엄함이거늘, 네깟 놈이 무에 그리 대단한 자라고
답안을 둘씩이나 써낸단 말이냐. 여봐라.
이 덜떨어진 작자를 당장 밖으로 끌어내거라.”

문경새재를 넘는 고단함을 읍소하며 버티던 선비는
결국 흙바닥 위로 내던져졌다. ‘살려주시오’라는 비명은
철퍼덕하는 소리에 묻혔고 먼지가 일어 메케했다.
주변에서 다시 낄낄대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초시 종료요!”

감독관이 징을 울려 진사과의 초시가 종료됐음을 알렸고
선비들은 일제히 엎드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를 외쳤다.

성균관의 학자들과 육조의 당상관들이 모여들었고
‘엇흠’ ‘촤하’ ‘오호라’ 따위의 감탄사를 연발하며
답안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추려낸 답안을 든 이조판서가 연석 위에 섰다.
북이 울려대며 긴장감을 한껏 고조시켰고
이내 징과 박이 맞물려 경박하게 울려댔다.

“차석이오! 안양마을의 김평촌이가
진사과의 초시에 차석으로 합격했소이다!”

차석의 답안은 다음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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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 하여가-                                                  

집값이 오른 들 어떠하고 전·월세에 쫓겨난 들 어떠하리
강남삼구 마·용·성이 황금성이 된 들 어떠하리
우리 같이 기본주택에 얽혀 백 년까지 누리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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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름답도다!!”

“구구절절하여 눈물이 앞을 가리는 도다!!”
“참으로 아름다운 무소유의 정신이로다!!”

육조의 판서들이 앞다퉈 입에서 침을 튀겨 대기 시작했다.
선비들은 어디서 많이 들어 본 것 같다며 웅성댔지만
격렬한 판서들의 반응에 할 말을 잃고 결국 자리를 지킬 뿐이었다.

이윽고 이조판서는 수석의 답안을 발표했다.

“수석이오! 양천마을의 나목동이가
진사과의 초시에 수석으로 합격했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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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심가(文心歌) -
                 
이 집을 팔고 팔아 일백 번 고쳐 팔아
재산세와 양도세에 돈이라도 있고 없고
문(文)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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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에 힘이 풀린 육조의 판서들이 줄줄이 쓰러지기 시작했다.

“과연 훌륭하도다!!”
“가히 정몽주 선생의 환생을 보는 듯하도다!!”
“눈물, 콧물이 폭포수처럼 흘러 내리는도다!!”

잠자코 듣고 있던 선비들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이것이 도통 뭣 하는 짓거리들이오! 저자들이 써재낀 것은
하여가와 단심가의 삿된 표절에 지나지 않느냔 말이오!
이다지도 개탄스러울 수가, 그대들은 하늘이 무섭지도 않소!”

고사장은 선비들의 아우성으로 뒤덮여 들끓는 듯했고
이조판서는 눈알을 데굴데굴 굴리며 고심하다 외쳤다.

“아직, 장원급제의 자리가 남았소이다!”

그러자 서로가 장원급제라 여긴 선비들이 일제히
입을 닫아 함구했고, 잔잔한 미소를 억지로 자아내며
갓끈을 조였다. 다시 이조판서가 목청을 가다듬었다.

“장원급제요! 강남마을의 최대치가
진사과의 초시에 장원급제하였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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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동산별곡 -                                                   

살어리 살어리랏다 호텔에 살어리랏다
룸서비스와 조식 뷔페 먹고 호텔에 살어리랏다
얄리얄리 얄랑셩 얄라리 얄라

울어라 울어라 무주택자여, 자고 일어나 울어라 서민이여
폭동한 전월세에 길바닥에 앉은 나도, 자고 일어나 우는도다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

정부 말만 믿고 새 된 자, 신고가 위로 날던 유주택자 본다
피눈물 젖은 임대차 계약서 들고 집주인만 바라본다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

이럭저럭 낮은 버텨왔건만 전세도 월세도 없는 밤에,
집주인은 퇴거를 요청하니 어쩔 것인가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

어디다 던지는 돌인가, 누구를 위한 정책인가
이 모든 게 이명박, 박근혜 정권 탓이니 맞아서 우는도다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

살어리 살어리랏다 호텔에 살어리랏다
고깃배 타고 크루즈 여행 간다 택시 타고 유라시아 횡단 간다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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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백성이 체크인할지어다!!”

“아아,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하!!”

육조의 판서들이 일제히 바닥에 엎어져 곡을 하며 땅을 쳐댔다.
더러는 바람개비를 돌며 미친 듯이 춤을 추었고,
더러는 꽹과리 소리에 맞춰 뱀처럼 몸을 비틀며 흔들어댔다.

복받치는 감정을 못 이긴 어느 대신은 계단 밑으로 몸을 던졌고
절벽 위의 도토리처럼 데굴데굴 굴러떨어지며 외쳤다.

“이 모든 것이 이명박, 박근혜 정권 탓이라니!
만인이 앙망한 궁극의 해답이며,
이 시대의 올바른 참정신이로다!”

아수라장이 된 고사장 위로 늦가을의 까치가 날며
배설물을 싸질렀고 후드득 떨어진 오물이
대신들의 도포를 적셨다.

그때였다.

답안 뭉치에서 한 장의 글월이 저 스스로 빠져나와
고사장 가운데에 낙엽이 되어 내려앉았다.

한 선비가 자리에서 일어나 형형한 눈을 들어
대신들을 응시했다. 입이 아교로 봉해진 선비는 허공에
붓을 휘둘렀는데, 놀랍게도 흩뿌려진 먹들이 저 스스로
이어 붙고 얽혀들어 문자를 형성했다.

- 표심가(票心歌) -

귀신에 홀린 듯,
이조판서는 그의 답안을 주워들어 단숨에 읽어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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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부여 아아 이명박 정부여

진보 정권이 들어서면 집값이 폭등하고
보수 정권이 들어서면 집값이 폭락하니
대명제의 학습효과를 이 땅 위에 공고히 했음에

배운 것 남 주랴, 탐욕에 눈먼 강남 좌파들이
제 집값을 올리려 민주당에 표를 던지고

우매한 무주택자들은 집값 내려준다는
거짓말에 속아 민주당에 표를 던지네

세금을 휩쓴 문 정부는 국토부 장관 뒤에 숨어 음산하고
총선을 휩쓴 민주당은 콘크리트 지지층 뒤에 숨어 음흉한데,
돈방석에 오른 것은 대신들이오, 강남 좌파들이니
죽어나는 것은 서민이오, 무주택자들뿐이로다

아아, 탐욕과 치욕의 수도 서울이여!
깨어나지 못한 자, 영원히 잠들 것이니,
오매불망 술잔에 기대어 억겁의 잠에 빠져드는 구나
어이할 거나 아아, 이 일을 어이할 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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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더러운 글이로다!!”

이조판서가 손을 바들바들 떨며 외쳤다.
육조의 판서들과 정승들이 웅성거리며 모여들었고
선비의 답안을 받아 돌려 읽기 시작했다.

별안간, 여권의 잠룡 중 하나라 불리던 좌의정 이 대감이
입에서 부글부글 거품을 흘려대기 시작했다.

이른바, 똘똘한 한 채 정신으로 강남권의 아파트를
초고가에 매도해 17억의 시세 차익을 거두고, 연이어
서울 한복판의 17억짜리 고급 주상복합 아파트에
갭투자를 시전해 투자의 달인임을 몸소 증명했던
그가 격분해 호통쳤는데, 과연 그의 말은 청산유수였다.

“투기를 하지 않는 것만이 책임 있는 선택은 아니거늘,
오히려 투기와 갭투자로 시세 차익을 거둬
백성의 심판을 받는 것이 책임 있는 공당의 도리 아니겠느냐!!”

나머지 잠룡 중 하나라 불라우던 경기 관찰사 이 대감 역시
격노해 부들부들 몸을 떨어대기 시작했다.

왕이 즉위하기 직전, 10억에 불과했던 그의 부촌 지역
아파트 역시 현재 매매가가 20억에 육박하게 되었는데,
평소 성정이 불같기로 소문 난 그의 입에서
불똥이 일며 화염이 쏟아져 나왔다.

“저자를 당장 기본주택에 쳐넣어,
우리와 같은 부를 영원히 누리지 못하게 하라!!”

/

포박된 선비가 형조의 관아로 압송되던 날,
선비의 답안에 대한 보고를 받은 형조판서는
격앙된 목소리로 앙칼지게 외쳤다.

“소설 쓰시네!!”

형조판서 역시 한양의 요지에 아파트와 오피스텔을 심어둔
다주택자였는데, 그의 아파트 역시 왕이 즉위한 이래,
약 6억의 시세 차익이 발생했다. 그러나 왕권에 버금가는
권력을 가진 그에게, 어떤 대신도 감히 집값을 이유로
토를 달지 못했다.

관가에는 호조판서가 크게 다쳤다는 소문이 돌았다.
어두운 대궐 안길을 급히 내달리다가 토사물을 밟고
미끄러졌는데, 어찌나 오지게 넘어졌는지
창자가 다 튀어나왔노라고 내관들이 전했다.
나중에 밝혀진 바로는, 튀어나온 것은 그의
창자가 아니라 돈 꾸러미가 담긴 복대였고,
그 안에는 세입자에게 갖다 바칠 뒷돈이 담겨 있었다고
누군가가 전했다.

선비는 다시 전옥서에 감금됐다. 창살 너머로,
취객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리 전하는 참 영명하신 분일세.
적폐 청산에, 친일 척결에, 남북 평화에,
아 못하는 게 없지 않으신가?!”

누군가가 되물었다.

“실직하더니 많이 취했나 보구먼.
그런데 자네, 전세는 구했는가?”

“아니, 못 구했네.”

민촌의 개들이 다시 컹컹 짖어댔고
취객의 목소리는 이내 묻혀 들리지 않았다.

선비는 눈을 감았다.
그러나 허리가 쑤셔 잠을 이루지는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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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을 조롱하고 비난하는 글은 언제나 쉽습니다.
그러나 그 업보가 두려워 가장 아픈 글이기도 합니다.

글의 대상이 된 분들에게는 인간적으로나마
사과의 말씀을 전해드립니다. 그러나
정치인이자 장관인 그들에게는 재차
경고의 말씀을 전해드립니다.

헛짓거리를 벌려놔 민생을 망쳤으면 최소한
헛소리라도 금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또한, 비판만 있고 대책은 없다는 분들이 계셔
다시 말씀드립니다. 두 번째 상소문,
김현미를 파직하라 편을 보시면 될 듯합니다.
키워드만 말씀드리면 수요와 공급이고 진출과 진입입니다.

이조판서의 말대로 더러운 글입니다.
저열하고 비열한 글이 스스로 보기 역겨워
반성의 의미로 잠시 글을 쉬어갈까 합니다.


삼성전자 뉴스룸
  • 單騎匹馬 2020-11-25 오후 10:05:00
    조갑제 선생님 논평 좀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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