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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사가 박건호의 데뷔곡…‘청아(淸雅)한 목소리’ 박인희의 대표적 포크송 김장실의 노래 이야기(12)모닥불(박건호 작사, 박인희 작곡, 박인희 노래, 1972년) 김장실(전 국회의원)  |  2021-03-07

온 산야를 알록달록하게 화려하게 치장한 단풍이 지고, 날씨가 쌀쌀해지는 늦가을이 되면 벌써 1년이 다 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우리는 왜 살고, 어떻게 해야 잘 사는가에 대한 철학적 사색(思索)을 하게 됩니다. 그럴 때 우리는 남에게 그림자가 되고 부담스러운 삶이 아니라, 컴컴한 밤을 항해하는 누군가에게 빛이 되고, 추운 사람에게 따뜻한 온기(溫氣)를 전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의미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즉, 한 줌의 재가 되어 사라질 때까지 주위를 밝히며 따뜻한 기운을 전해주는 활활 타오르는 모닥불 같은 인생이 되어야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듭니다.
  
  이렇게 인생과 사랑의 의미를 다시 묻는 무거운 주제를 차분하면서도 시적인 감수성으로 잘 표현한 노래가 바로 박인희가 부른 <모닥불>입니다. 젊은 날 MT나 캠핑을 같이 간 사람들이 캠핑장에 피워놓았던 모닥불을 중심으로 빙 둘러앉아 박수를 치며 이 노래를 부른 기억들이 있을 것입니다. 정말 가을에 어디 여행이라도 가서 이 노래를 부르면 젊은 날의 추억이 새록새록 날 것입니다.
  
  이 노래는 1972년 작사가 박건호의 가요계 데뷔곡입니다. 그는 가수 박인희에게 이 노래를 작곡해서 불러달라고 통사정을 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이 노래가 음반으로 발매되자 젊은이들 사이에 인기를 많이 얻었습니다. 특히, 바캉스나 MT 등에서 이 노래를 많이 불렀습니다.
  
  1970년대는 정치사회적으로 몹시 억압적인 유신체제가 철권을 휘두르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나 1971년에 수출 10억 달러를 하던 한국경제는 1977년에 수출 100억 달러에 1인당 국민소득 1000 달러가 될 정도로 아주 빠르게 성장하여 ‘한강의 기적’이라는 얘기를 국내외로부터 듣던 시기였습니다.
  
  대중의 문화소비 패턴도 크게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전석환이 주도하는 싱어롱 모임이 활성화되었고, 주로 젊은이들이 참여하는 포크댄스 페스티발이 여기저기서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여 MBC는 <노래는 즐거워>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었습니다. 또한 배낭을 멘 대학생들은 스티로폼 아이스박스에 먹을 음식과 음료수를 담아 버스, 기차, 여객선을 타고 해변으로 가서 텐트를 치고 캠프파이어를 하면서 통기타 반주에 노래를 부르는 바캉스가 대유행을 했습니다.
  
  이럴 때 그 당시 유행하던 포크송을 주로 불렀습니다. 가사의 메시지를 중시하던 포크는 우리나라에서 1960년대 말부터 유행을 타기 시작하여 <모닥불>이 나오던 1970년대 초는 포크송의 전성기였습니다. 이는 청바지, 통기타, 생맥주로 상징되는 청년문화의 만개(滿開)와 함께 포크송이 젊은이들의 감수성을 사로잡았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그들은 자연, 사랑, 순수, 인간적임 등을 소재로 하여 노래를 만들었습니다. 아마도 검열을 피하기 그런 소재들을 이용했다고 봅니다. 인생의 의미를 진지하게 묻는 박인희의 이 노래도 같은 범주에 속합니다.
  
  박인희의 <모닥불>과 함께 은희의 <꽃반지 끼고>, 라나에로스포의 <사랑해>, 서수남·하청일의 <과수원길>, 윤형주의 <라라라>, 김세환의 <목장길 따라>, 송창식의 <딩동댕 지난 여름>, 어니언스의 <사랑의 진실>, 박상규의 <조약돌> 등이 바로 그 당시 젊은이들이 캠프파이어를 하면서 많이 부른 노래들입니다. 그들은 낭만적 감수성이 넘치는 이런 노래로 젊은 감성을 달래며 유신체제의 강력한 정치사회적 억압 분위기를 견디어냈습니다.
  
  <모닥불>을 부른 박인희는 1945년 생으로 풍문여고와 숙명여대 불문과를 졸업했습니다. 그녀는 1970년 그룹 뚜아 에 무아의 멤버로 <약속>을 발표하면서 가요계에 나왔습니다. 1971년 9월에 이 그룹을 해체하고 난 후 곧 솔로로 독립하여 차분하고 청아한 목소리로 <모닥불>, <방랑자>, <목마와 숙녀>, <세월이 가면> 등 많은 히트 곡을 남겼습니다. 그녀는 1971년부터 1981년까지 국내 여러 방송국에서 방송인으로 생활하다, 미국으로 건너가 LA 미주한인방송 제작국장을 맡았습니다.
  
  <모닥불>을 계기로 본격적인 작사의 길에 들어선 박건호는 이 노래 외에도 박인희에게 <끝이 없는 길>을, 조용필에게 <모나리자>와 <단발머리>를, 이용에게는 <잊혀진 계절>을, 정수라에게 <아! 대한민국>을, 설운도에게 <잃어버린 30년>을, 나미에게 <빙글빙글>을, 이수미에게 <내 곁에 있어주>를 주어 크게 히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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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닥불>
  
  모닥불 피워놓고 마주 앉아서
  우리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어라
  
  인생은 연기 속에 재를 남기고
  말없이 사라지는 모닥불 같은 것
  
  타다가 꺼지는 그 순간까지
  우리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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