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 前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9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에게 “건방지다”고 발언했다. 인터뷰를 진행한 연합뉴스 기자 표현에 따르면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 이름을 꺼내자 인상을 찌푸리며 핏대를 세웠다’고 한다.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 오세훈 당시 후보의 당선이 확실시된 7일 자정 무렵 안 대표가 “야권의 승리”라고 말한 데 대한 비방이었다. 김 전 위원장은 안 대표의 이 발언을 두고 “그 소리를 듣고 ‘내가 역시 사람을 잘 알아봤다’ 그런 거야. ‘당신은 그 정도 수준의 정치인밖에 안 된다’ 확신했다고. 어떻게 건방지게 그런 말을 하나. 자기가 이번 승리를 가져왔다는 건가. 야권의 승리라고? 국민의힘이 승리한 거다. 유권자들은 ‘국민의힘 오세훈’을 찍었다. 안철수는 ‘국민의힘 승리’를 축하해야 했다”고 감정적 반응을 보였다.
김 위원장은 ‘야권’이라는 표현 자체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며 “지금 야권이란 것은 없다. 몇몇 사람이 자기네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서 야권을 부르짖는 거다. 실체가 없는데 무슨 놈의 야권인가. 솔직히 국민의당이 무슨 실체가 있나. 비례대표 세 사람뿐이다. 안철수는 지금 국민의힘과 합당해서 대선 후보가 되겠다는 욕심이 딱 보이는 것 아닌가. 서울시장에 출마하면서 대선은 포기한다고 하지 않았나. 그런 사람이 대통령 되면 나라가 또 엉망이 된다”고 주장했다.
또 이번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오세훈 후보의 승리를 가져온 제1요인으로 꼽히는 ‘안철수-오세훈 후보 단일화’에 대한 놀라운 고백도 뒤따랐다. 김 위원장은 “후보 단일화는 자기(안철수)가 끄집어내서 억지로 한 거지. 그냥 (사퇴하지 말고) 출마하지 그랬나”라면서 “내가 처음부터 3자 대결로 해도 우리가 이긴다고 했다”고 주장했다. 선거 전 수차례 여론조사에서는 박영선-오세훈-안철수 3자 대결로 갈 경우 야권 필패로 예측됐다. 그는 심지어 “LH 사태가 없어도 이겼다”는 공상에 가까운 이야기도 덧붙였다.
그는 안철수-윤석열의 연합구도가 전개될까 견제하는 한편, 윤석열에 ‘조언해줄 수 있다’며 손짓하는 발언도 덧붙였다.
“윤석열하고 안철수는 합쳐질 수 없다. 아무 관계도 없는데 안철수가 마음대로 남의 이름 가져다가 얘기한 거다. 윤석열에 관해서는 판단을 해봐야 한다. 나는 그 사람을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연락한 적도 없다. 대통령이 무슨 자질을 갖춰야 한다고 조언해줄 수는 있어도, 내가 달리 도와줄 방법은 없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의 상임고문직 제안에 대해서는 “그런 거 안 한다”고 잘랐다.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의 이 인터뷰를 두고 국민의힘 의원들의 비판이 이어졌다. 장제원 의원은 1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무슨 미련이 남아 그토록 독설을 퍼붓는지 모르겠다”고 비판하면서 김 전 위원장을 ‘태상왕’ ‘심술’ ‘교만’ ‘옹졸함’ 등의 단어로 수식했다. 장 의원은 “선거 이후 가장 경계해야 할 말들을 전임 비대위원장이 쏟아내고 있다. 재임시절엔 당을 흔들지 말라고 하더니, 자신은 나가자마자 당을 흔들어 대고 있다”고 지적하고, “뜬금없이 안철수 대표를 향해 토사구팽식 막말로 야권 통합에 침까지 뱉고 있으니, 자아도취에 빠져 주체를 못하는 모습으로 밖에 보이질 않는다. 그래도 팔을 걷어붙이고 우리를 도와준 상대에게 고맙다는 말은 하지 못할망정 ‘건방지다’라는 막말을 돌려주는 게 더 건방진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이어 “모든 승리의 공을 독점해서 대선정국을 장악해 보려는 탐욕적 청부 정치, 가슴 없는 기술자 정치는 이제 끝냈으면 좋겠다”고 꼬집었다.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도 11일 페이스북 게시글에서 “선거도 끝났는데 아흔을 바라보는 연세에 서른 살도 넘게 어린 아들 같은 정치인에게 마치 스토킹처럼 집요하게 분노 표출을 설마 했겠는가”라면서 반어적 표현으로 꼬집었다.
한편 당사자인 안철수 대표는 12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당 최고위원회의를 마친 후 기자들과 만나 “야권의 혁신과 대통합, 정권교체 필요성을 부인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겠나. 김 전 위원장이 (4·7 재보궐선거 승리에) 많이 노력했다는 것은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다”면서 점잖게 대응했다. 안 대표는 최고위원회의 모두발언에서도 “야권은 대통합과 정권교체의 기조에 맞는 내용을 채워야 한다. 우리가 잘해서 이겼다는 교만에 빠지는 순간, 야권의 혁신 동력은 약해지고 정권교체에 대한 절박함도 사라질 것이다. 시장선거에서 이기고도 대선에서 패배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하며 김 전 위원장 언론 인터뷰를 겨냥한 것으로 보이는 발언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