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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여행이야기
문명을 만든 것은 위대한 江, 江을 만든 것은 山 코로나를 뚫고 종횡무진 45일-네덜란드·스위스(3) 趙甲濟  |  2021-11-01

폭포의 계곡
 

라우터브루넨 폭포의 계곡.

  2019년 알프스 3봉(峰) 마터호른·몽블랑·융프라우를 구경하고 오스트리아의 알프스 지역인 할슈타트, 잘츠부르크, 그리고 독일 알프스 지역에 있는 히틀러 산장 등을 20여 일간 여행한 적이 있었다. 돌아와서 자꾸 머리에 남는 장면은 제대로 보지 못한 아이거 북벽과 라우터브루넨 역 근방의 폭포였다.
 
  나는 지난 7월 말에 다시 라우터브루넨(인터라켄 근처)을 찾아 5일간의 기차 이용권을 끊고 1600m 산중(山中)마을 뱅엔에 숙소를 잡았다. 라우터브루넨 ‘폭포의 계곡’이 앞으로 내려다보이고 뒤에는 융프라우, 정면 멀리로는 브라이트호른 등 연봉(連峰)이 펼쳐진다. 이튿날 비가 내려 나는 중학교 3학년생인 외손자를 데리고 폭포의 계곡 산책에 나섰다. 배낭은 외손자에게 지우고 한가하게 협곡(峽谷) 사이 평지를 걸었다. 이 계곡은 길이가 약 9km인데 양쪽이 수직 절벽이다.
 

라우터브루넨 폭포.

  최대 1000m의 석회암 절벽 양쪽에 70여 개의 폭포가 걸쳐져 있다. 융프라우·아이거·묀히 3형제봉이 만든 계곡이고 폭포이다. 양쪽 수직 절벽을 쳐다보면서 융프라우를 향해서 난 평탄한 길을 걷는 기분은 샹그릴라의 환상(幻想), 그 자체였다(외손자 녀석은 경치엔 별로 관심이 없고 맛있는 음식점을 찾고 있었다). 그랜드 캐니언처럼 웅장하고 그랜드 캐니언과 달리 깔끔한 자연미(自然美)이다. 가장 유명한 폭포는 라우터브루넨 역 앞에 있어 사진에 잘 찍히는 스타우바흐 폭포로서 297m의 물줄기가 마을 가운데로 쏟아진다. 417m의 뮈렌바흐 폭포, 930m의 계단식 마텐바흐 폭포는 계곡 안쪽에 있어 덜 유명하다.
 
  걷다가 주차장을 겸한 음식점을 찾았더니 이곳이 명당(明堂)이었다. 양쪽 절벽에 걸린 폭포를 한눈에 다섯 개나 볼 수 있었다. 외손자는 휴대전화로 내 딸에게 ‘맛있는 것 사준다고 해서 따라왔는데’ 운운하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정면 울타리에 ‘Tru¨mmelbach Falls’라는 표시가 보였다. 인터넷을 검색했더니 이게 굉장한 곳이었다. 서둘러 점심 식사를 끝내고 외손자를 끌다시피 하며 입구로 갔다. 아이거(3967m)·묀히(4099m)·융프라우(4158m)의 빙하에서 녹아내리는 물줄기가 석회암 절벽의 내부를 녹여 바위 속에 폭포를 만든 것이었다. 수백 미터 낙차에 140m가 노출된 암중(岩中)폭포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나선형 길을 따라 바위 속 구멍 속으로 떨어지는 희한한 폭포를 구경했다. 그제야 외손자가 좋아했다.
 
 
  절벽열차, 뮈렌마을
 

뮈렌에서 본 융프라우 직벽.

  4박 5일의 알프스 여행은 이 폭포의 계곡을 입체적으로 구경하는 여정이었다. 라우터브루넨 역에서 뱅엔 역으로 올라가는 기차 창밖으로 잡히는 폭포의 계곡 단면은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구도일 것이다. 융프라우를 구경한 다음 날 라우터브루넨 역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약 800m를 올라 절벽 위에 당도했다. 여기서 협궤 기차로 갈아타 절벽 가장자리를 한 20분 달렸다. 왼쪽으로 알프스의 대표적 장관이 펼쳐졌다. 아이거·묀히·융프라우 3형제봉이 협곡 바로 건너편이었다. 세 봉우리의 높이를 더하면 1만2000m이다. 육중한 아이거, 꼭대기에 주름이 잡혀 귀엽게 생긴 묀히, 장대한 융프라우를 한눈에 구경할 수 있는 최상의 열차 드라이브. 날씨도 좋았고 시커먼 협곡으론 패러글라이더들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종착역은 뮈렌(Mu¨rren) 마을. 기차에서 내리니 눈앞에 직벽(直壁)! 융프라우가 폭포의 계곡으로 잘리면서 생긴 엄청난 바위얼굴이 시야를 가린다. 뮈렌은 자동차론 접근할 수 없다. 주민은 450명인데 여러 호텔의 객실은 2000실이다. 절벽 위 식당에서 그렇게 비싸지 않은 점심밥을 먹고 산책로를 따라 300m 아래 동네인 짐멜발트로 내려갔다. 알프스의 대표적 연봉을 마주하면서 걷는 산책로는 비탈을 따라 난 길인데 아이거 북벽은 햇볕을 받아 검은 다이아몬드처럼 번쩍거리고 있었다.
 
  뮈렌은 007 영화 〈여왕폐하 대작전〉의 무대로 더 유명해졌다. 1969년에 개봉했는데 제임스 본드 역의 숀 코너리가, 뮈렌의 뒷산 실트호른(2970m) 정상의 회전식당(Piz Gloria)을 유명하게 만들었다. 케이블카로 오를 수 있다. 짐멜발트에서 케이블카를 타면 폭포가 걸린 약 600m 직벽을 수직으로 낙하하듯이 내려온다. 이곳에서 정기버스를 타고 폭포의 계곡 바닥을 달려 출발지 라우터브루넨으로 돌아왔다. 양쪽 절벽은 폭포의 장막이었다.
 
  몽블랑의 샤모니, 마터호른의 체어마트, 융프라우의 인터라켄에 대응하는, 아이거를 가장 잘 볼 수 있는 마을은 그린델발트. 이 마을을 기점으로 나 있는 몇 가닥의 케이블카 노선은 아이거 북벽 아래를 가로지르는 일종의 공중열차이다.
 
 
  알프스는 스위스의 독점물이 아니다!
 

아이거·묀히·융프라우 삼형제봉.

  유럽 여행은 파리에서 시작, 알프스에서 끝나는 경우가 많다. 지난 20여 년간, 알프스가 지나는 여덟 나라 중 리히텐슈타인을 뺀 일곱 나라(프랑스, 스위스, 모나코,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독일, 슬로베니아)를 돌아다녔다. 알프스는 동서로 활처럼 뻗어 있는데 프랑스 니스 부근에서 슬로베니아까지 약 1200km, 남북의 너비는 약 250km, 면적은 한반도와 비슷하다. 알프스 산맥을 가장 크게 차지하고 있는 나라는 스위스가 아니라 오스트리아로서 28.7%이다. 이어서 이탈리아(27.2%), 프랑스(21.4%), 네 번째가 스위스(13.2%)이다. 스위스에는 알프스의 서쪽 고봉(高峰)들이 많아 경치가 좋다.
 
  서쪽(몽블랑, 마터호른, 몬테로사 등)이 높고 동쪽(돌로미티 등)이 낮다. 최고봉 몽블랑(4809m)은 유럽에서 일곱 번째이다(유럽 최고봉은 러시아 캅카스 산맥의 엘브루스 산으로 5642m). 알프스는 4000m급 이상 되는 봉우리가 100개가 넘는다. 그 가운데 약 30개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 있다. 마터호른을 품은 체어마트에서 톱니바퀴 열차를 타고 올라가는 곳, 해발 3089m에 있는 고르너그라트 전망대이다. 정면은 몬테로사(4634m, 알프스에서 두 번째)~마터호른(4478m, 6위) 능선이다. 여기서 카메라를 360도 돌리면 수십 개의 4000m급 설산(雪山)이 파노라마로 찍힌다.
 
  마터호른은 그랑졸라스 및 아이거와 함께 알프스 3대 북면(北面)을 자랑한다. 히말라야의 마차푸차레(6993m)와 함께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봉우리로 꼽히는데 등반 사고로 500명 이상이 죽었다. 치명적 아름다움이라 할까.
 
  스위스 수도 베른에서 차로 한 시간 거리인 인터라켄은 융플라우 산 관광의 출발지이다. 이 근방의 산악 마을들은 개성 있는 전망으로 독립된 도시처럼 인기가 있다. 유럽에서 가장 높은 기차역(3454m)이 있는 융프라우 전망대 식당엔 신라면이 인기인데 지난 7월 말에 갔더니 보이지 않았다(동이 난 것인지?). 융프라우로 올라가는 산악열차는 아이거 북벽 밑으로 해서 고도를 높이다가 북벽을 관통하는 9km 터널을 지나 남쪽으로 나온다. 아이거 북벽은 절벽의 낙차가 1800m로서 유럽 최대이다. 마터호른처럼 날카로운 아름다움이 아니라 압도적 중량감을 보여준다. 아이거·묀히·융플라우 3형제봉을 전체 상으로 볼 수 있는 곳은 앞서 소개한 협곡 건너편에 있는 뮈렌이다.
 
 
  江이 문명을, 山이 강을 만든다!
 

아이거 북벽.

  나폴레옹과 한니발이 알프스 산맥을 넘어 이탈리아로 진군(進軍)한 것은 유명하다. 나폴레옹은 몽블랑 기슭에 해당하는 성버나드 고개(2469m)를 지났다. 알프스 동쪽 산맥엔 이보다 낮은 브렌너 고개(인스부르크 근방 1370m)가 있어 중세(中世) 때는 독일의 신성로마제국 군대가 주로 이 고개를 통해 북이탈리아로 쳐들어갔다. 한니발은 코끼리를 끌고 성버나드 근방 고개를 넘어 로마를 친 것으로 추정(推定)된다.
 
  알프스가 없었더라면 유럽 문명은 발전할 수 없었다. 강이 문명의 발상지라고 하지만 그 강을 만드는 것은 산의 숲과 빙하, 그리고 호수(레만·코모·마조레 등)이다. 라인, 도나우, 론 강 등이 알프스에서 발원(發源)한다. 알프스 덕분에 약 500개의 수력발전소가 만들어졌다. 알프스는 면적에서 유럽의 11%이지만 90%의 담수를 공급한다. 밀라노의 경우 먹는 물의 80%는 알프스에서 나온다. 알프스를 찾는 관광객은 연간 1억2000만 명 정도이다.
 
  알프스 산맥에서 일곱 차례 동계(冬季)올림픽이 열렸다. 스위스의 생모리츠(2회), 이탈리아 돌로미티 지역의 코르티나 담페초, 토리노, 오스트리아의 인스부르크, 프랑스의 그르노블과 알베르빌이다. 알프스는 매우 생산성이 높은 산맥이란 이야기이다.
 
  히말라야 빙하도 엄청난 수량(水量)의 창고이다. 여기서 발원하는 인더스·갠지스·브라마푸트라·양쯔강은 파키스탄, 인도, 방글라데시, 중국을 거치면서 인도양과 서해로 들어간다. 이들 강이 만든 유역(流域) 평야가 20억 이상의 인구를 부양한다. 알프스와 히말라야가 유럽과 아시아 문명의 산파인 셈이다. 네팔 사람들은 그래서인지 히말라야를 신(神)처럼 받든다. 문명을 만든 것은 위대한 산신(山神)들이다.⊙

 

 

(끝)

 


삼성전자 뉴스룸
  • 맑은마음1 2021-10-31 오후 6:11:00
    유럽 여행기 하나하나 무척 흥미진진하게 잘 읽었습니다. 대한민국 최고의 고품격 여행기를 올려주셔서 감사한 마음입니다. 가족 함께 중3 손주까지 데리고 초유의 코로나 어려운 시기에 45일간의 유럽여행, 너무 훌륭하고 멋집니다. 여행은 살아있는 독서이고 산 교육이기에 어린 손주에게 평생 잊지 못할 최고의 선물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글 중에 “강이 문명을, 산이 강을 만든다”란 표현은, 이번 여행기의 최고 문장으로 생각됩니다. 조갑제닷컴 한쪽에 있는 “상미회”가 보여 들어가 보았는데 세계 도처 여행하신 명소들 보니 정말 배우고 취할 점 많았고, 추후에 적용해 볼 좋은 참고가 될 것 같습니다. 거듭 감사드립니다.
  • bestkorea 2021-10-31 오후 12:20:00
    Thanks for your exciting and enjoyable trip to the Alps.

    One of the most impressive things in the article is the following
    expression.

    It's the great river that created civilization. The river comes
    from the lake, the lake from the mountain covered with forests.

    Thanks for sharing. Have a nice Sun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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