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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칼럼
사보이호텔 ‘스리 세븐’ 바텐더의 조언 “젊은 여자들은 연두색 빛깔의 ‘그래스 하프’를 좋아하니까 그걸 주문해요. ‘스큐류드라이버’나 ‘탐 카린스’같은 다른 칵테일 이름도 말하구요" 엄상익(변호사)  |  2022-05-13
<돈 버는 목적>
  
  아들이 초등학교 이학년 무렵이다. 버려진 병들을 주워다 팔아 동전을 모으는 것 같았다. 왜 돈을 버느냐고 물으니까 누나 생일선물 사주려고 한다고 했다. 녀석이 초등학교 사학년 때였다. 옆방에서 전화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동아일보 성남 보급소죠? 한 달에 얼마를 주시나요?”
  저쪽에서 뭐라고 대답을 하는 것 같았다.
  
  “그 보급소 위치가 어딘가요?”
  잠시 후 녀석이 하는 말이 들렸다.
  “그러면 너무 거리가 멀어서 일하기 곤란하겠네요. 저는 분당에 살거든요.”
  
  그런 아들을 보면서 나는 처음으로 돈을 번 기억을 떠올려 보았다. 대학입시를 치고 공백기에 책 외판사원을 했다. 외판사원을 대하는 사람들에게서 세상을 얼핏 구경했다. 월말이 되자 종로 뒷골목의 낡은 빌딩에 있는 판매 사무실로 갔다. 담당자인 남자는 내 판매 수당을 핑계를 대며 주지 않으려고 했다. 노동의 대가를 착취하려는 기미가 역력했다. 그것도 처음으로 마주친 세상의 한 면이었다. 이미 나는 청년의 체력이었다. 유도와 태권도를 배워 남에게 맞을 정도는 아니었다. 나는 건달 같은 그 사무실의 담당자를 구석으로 밀면서 돈을 내놓으라고 압박했다. 그는 다급했는지 자기 지갑을 열어 돈을 내놓았다. 자기권리는 스스로 쟁취해야 한다는 걸 배웠다.
  
  그걸 어떻게 쓸까 생각했다. 처음으로 아내를 여자친구로 만나기로 약속했을 때였다. 내가 번 돈으로 멋있게 쓰고 싶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면 그런 바의 스탠드 앞에서 칵테일을 앞에 놓고 대화하는 남녀의 모습이 멋있어보였다. 당시 명동 사보이호텔의 칵테일 바 ‘스리 세븐’이 그런 장소였다. 그 바로 찾아가서 투명한 와인잔을 닦고있던 바텐더에게 공손하게 말했다.
  
  “이런 곳은 와 본 적이 없는 촌놈입니다. 여자친구를 데려와서 폼을 잡아 보려고 하는데 아는 게 하나도 없어요. 어떤 각테일을 시켜야 하고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 도와줄 수 있어요?”
  
  내 말을 들은 바텐더는 재미있다는 듯 싱긋 웃었다. 그 눈빛이 호의적이었다. 그가 잠시 생각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젊은 여자들은 연두색 빛깔의 ‘그래스 하프’를 좋아하니까 그걸 주문해요. 그리고 ‘스큐류드라이버’나 ‘탐 카린스’같은 다른 칵테일 이름도 말하구요. 세련돼 보일 거에요.”
  
  나는 처음 보는 바텐더를 나의 공범으로 삼았다. 그리고 다음날 저녁 처음 만난 여자친구를 그곳으로 데리고 갔다. 그리고 책 장사를 해서 번 돈을 모두 단번에 써버렸다. 그 여자친구가 사십 년을 함께 살아온 아내다. 칵테일 한 잔 얻어먹고 지금까지 코가 꿰었다고 한다. 돈을 왜 벌어야 하는지 어떻게 써야 하는지가 일생의 화두이기도 하다.
  
  ‘나는 어떻게 해서 최초의 일 달러를 벌었는가?’ 그게 많은 미국인들이 자랑스럽게 말하는 화제라고 한다. 오하이오 강 기슭에 살던 링컨 대통령은 소년 시절 어느 날 신사 한 사람을 작은 배에 태워 강 중앙에 떠 있는 증기선으로 데려다 주고 오십 센트의 은전을 받았다. 그게 최초의 수입이었다. 그는 몇 번이고 그 은전을 공중에 던졌다가 받으면서 “이건 하나님이 내게 주신 돈이다”라고 외쳤다고 한다.
  
  미국의 명문대학을 설립한 부자 스탠포드는 어린 시절 형과 함께 산에 가서 밤을 주워다가 시장에 팔아 받은 2달러가 부의 원천이라고 했다. 그렇게 시작들은 미약하지만 돈은 두뇌와 마찬가지로 역시 하늘에서 각자의 그릇에 따라 주어지는 선물인 것 같다.
  
  나는 돈을 어떻게 생각해 왔을까. 나는 지난 사십오 년간 경제활동을 해왔다. 지금도 돈 버는 일을 간간이 하고 있다. 노동을 대표하고 이마의 땀이 뭉쳐진 돈만이 진짜라고 생각했다. 대통령의 권력이 재벌의 돈을 빨아들이는 걸 봤다. 그건 사실상 남의 것을 빼앗거나 거저 얻는 것이었다. 범죄인만이 아니라 수많은 사업가 사기꾼을 보기도 했다. 그런 돈은 진짜가 아니었다.
  
  오십대 중반 몇 년 동안 피땀 흘린 노동이 내 잣대로는 비교적 큰 액수의 돈으로 통장에 입금된 적이 있었다. 그 숫자를 보면서 황홀한 기쁨을 느꼈다. 그 돈은 더 이상 야비한 사람들의 낚시에 아가미를 꿰이지 않고 천한 대접을 받지 않는 자유를 가져다 주기 때문이었다. 그 돈은 책을 읽고 글을 쓸 수 있는 기회와 생활의 여백을 만들어 주었다. 돈은 독자적인 존재가 되기 위해 인간다운 품위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그 이유 말고는 돈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많은 돈에 잡혀 끌려다니는 사람들이 부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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