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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칼럼
로비 때문에 당사자가 피해를 본 사건 엄상익(변호사)  |  2022-06-22
<큰 돈을 받으면 마음이 이상해져>
  
  변호사 개업을 한 선배가 이런 말을 했다.
  
  “재판장을 할 때 말이야, 같은 판사로 친하게 지냈던 동료들이 변호사가 되어 찾아오는 경우가 많았어. 그런데 뭔가 자연스럽지 않고 전과 다른 걸 느낄 때가 있어. 그런 때면 그들이 거액을 받고 그 사건에 집착해서 그렇구나 하고 알아채겠더라구.”
  
  그 선배가 변호사가 된 후의 소감을 덧붙였다.
  
  “변호사를 해보니까 말이야, 큰 돈을 받으면 마음이 이상해지더라구. 엊그저께까지 흉허물 없이 친하던 판사를 만나도 마음이 두근거리고 목소리도 평상시와 다르게 톤이 높아져. 심지어 범죄를 대하는 나의 로직마저 달라지지. 그런데 그런 사건은 무료로 마음 편하게 하는 사건보다 일이 잘 안되더라구.”
  
  맞는 말이었다. 무리한 부탁에 대한 대가로 변호사에게 거액이 가는 것이다. 잘 될 리가 없다.
  
  재벌회장 부인의 살인 청부 혐의를 심리하는 법정에 있었던 적이 있다. 한 대형 로펌이 회장부인의 변호를 맡았다. 그 로펌에는 전직 장관부터 검사장 법원장 등 기라성 같은 인물들이 많았다. 그중 상당수는 법조계에서 존경을 받았었다. 그런데 그들의 법정태도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악마를 천사로 만드는 연출을 하고 배역을 나누어 직접 연기를 하기도 했다. 보통 사람들의 눈에도 악마가 악마로 보이는 사건이었다. 그들의 연출은 실패로 끝났다. 나중에 큰 로펌을 오래 운영해온 친구에게 물어보았다. 정의를 평생 입에 달고 산 그들이 왜 그러냐고. 친구의 대답은 간단했다.
  
  “그 재벌이 돈을 많이 줬을 거야. 집단으로 돈에 취한 거지. 로펌 비즈니스를 해 보니까 그런 사건을 그렇게 안 하면 돈이 들어오지 않아. 로펌의 목적이 뭐야? 돈 아니야?”
  
  잔혹하게 살해당한 여대생은 재판이 잘못됐으면 차디찬 공원묘지에서 한서린 귀신이 되어 울고 다녔을 뻔했다. 그 귀신의 눈에 큰 수입이 들어왔다고 샴페인을 터뜨리는 변호사들이 어떻게 보일까 생각을 해 보았었다. 흑을 백으로 만드는 공작은 범죄다.
  
  또다른 재벌 회장의 사기사건에서 변호인중의 한 사람으로 참여한 적이 있다. 같이 변호를 하는 옆자리의 변호사가 법대 위의 주심 판사를 눈짓으로 가리키면서 내게 이렇게 속삭였다.
  
  “주심이 나와 학교도 같이 나오고 사법연수원도 같이 나와서 친해요. 나는 이 사건에서 주심 판사의 로비를 맡고 내가 있는 로펌의 파트너 변호사는 재판장을 맡았어요.”
  
  돈이 있는 사람들은 검사, 판사들마다 로비담당 변호사를 붙이는 수가 있다. 거기서 정보가 새어 나오고 이면공작이 벌어지기도 했다. 검은 안개가 흐르는 법조계의 이면이기도 하다. 의외로 그 재벌 회장에게 무거운 형인 징역 십이년이 선고됐다. 그리고 한참 세월이 흐른 어느 날이었다. 법정에서 나오는데 한 변호사가 인사하면서 말했다.
  
  “전에 변론을 맡으셨던 그 회장의 사기 사건 주심 판사입니다.”
  그제서야 기억이 났다. 로비의 대상이었던 그 사람이었다.
  
  “그때 징역 십이년의 징역형을 선고하게 된 배경을 말씀드리고 싶어요.”
  보통 그런 사항은 비밀로 가슴에 안고 가는데 특이했다. 그렇다고 그와 아는 사이도 아니었다. 그는 뭔가 말하고 싶은 것 같았다. 나는 그의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회장의 사기 사건과 비슷한 유형의 사건의 재판 결과들을 검토했어요. 대충 징역 십이년이더라구요. 그래서 재판장인 부장님과 주심인 저는 일단 그걸 기준으로 삼았었죠. 그런데 심리를 하면서 보니까 그 회장의 딱한 면도 보이는 거에요. 그래서 내가 재판장인 부장님께 징역 오년 정도로 깎아주면 어떻겠느냐고 건의했어요. 그랬더니 부장님이 자기도 정상참작을 할 만한 점을 느꼈다고 하면서 그렇게 하자고 합의가 됐어요. 그런데 그 내부적인 결정이 뒤틀어진 거에요.”
  
  “왜 그랬죠?”
  내가 물었다. 정말 궁금했다. 법조계뿐 아니라 정계에서도 엄청난 로비가 있었는데 중형이 선고됐었다.
  
  “그 사건 변호사 중에 친구가 있었어요. 고등학교도 같이 나오고 사법연수원도 같이 다녔죠. 그런데 사건에 관련해서 개별적으로 변론할 중요한 부분이 있다면서 자꾸만 만나자는 거에요. 그래서 저녁에 그 친구를 따로 만났어요. 그랬더니 하겠다는 말이 법정에서 해도 충분한 얘기였어요. 그런 말을 굳이 개인적으로 만나서 할 필요가 없거든요. 그때 나는 이게 로비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신이 번쩍 들더라구요. 판사가 로비를 받았다고 생각해 보세요. 세상이 뭐라고 하겠어요? 그래서 다음날 부장님한테 가서 상황을 얘기하면서 다시 징역을 십이년으로 올리자고 했죠. 같은 유형의 사건과 균형을 맞추어 형을 정하면 누가 뭐라고 할 수가 없는 거죠. 그런 일이 있었어요.”
  
  로비 때문에 오히려 당사자는 피해를 본 사건이었다. 변호사를 사십 년 가까이 해오면서 칠십고개에 올라서도 변호사는 무엇으로 사는지를 고민한다. 성경은 하나님과 돈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고 했다. 그렇지만 돈이 있어야 밥을 먹고 아이들 공부를 가르칠 수 있었다. 돈이 있어야 자유할 수 있었다. 돈은 악마의 낚시 미끼이기도 하고 숨겨진 덫이기도 했다. 잘못하면 아가미가 낚시바늘에 꿰인 물고기 신세가 될 수도 있었다. 법의 밥을 먹는 사람들은 배의 바닥짐같이 정의와 양심으로 중심을 잡아야 하지 않을까. 성실하게 땀을 흘리면 굶어 죽지는 않는다는 직업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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