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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칼럼
고시생, 혁명가, 수도승 그해 겨울 가야산 암자(庵子)에 있던 세 부류의 젊은이들 엄상익(변호사)  |  2023-01-15
이십대 중반 그해 겨울 나는 하얀 눈이 두껍게 덮인 가야산의 한 암자에 머물고 있었다. 잎들이 떨어진 나무가 가시같이 박힌 산자락에 저녁이 오면 푸르스름한 기운이 물같이 고이고 밤이면 바람 소리가 밀물이 밀려오는 소리를 냈다. 이따금씩 멀리서 산짐승 우는 소리도 들렸다.
  
  암자에는 비슷한 또래의 세 종류의 사람들이 있었다. 첫째는 나같이 대학을 졸업하고 고시를 준비하는 서너 명의 사람들이었다. 전문직 법조인이 되고 돈을 많이 벌고 싶었다. 사회에 대한 구조적인 인식이나 이념적 지향보다는 출세주의자 쪽이었다.
  
  내 옆방에는 수배 중인 운동권의 젊은이가 숨어 있었다. 그는 혁명가였다. 매일 방에서 러시아혁명사, 프랑스 혁명사 등 사회과학 서적과 러시아 소설을 읽는 것 같았다. 시월유신이 발표되고 몇 년이 되지 않았을 때였다. 위수령, 포고령과 긴급조치가 발동되어 사회를 꽁꽁 얼어붙게 할 때였다. 나는 혁명가의 가시밭길을 가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굴러오는 수레바퀴 앞에서 도전적인 모습을 하는 사마귀를 떠올렸다. 나보다 한 살쯤 아래인 그도 명문고등학교와 대학교를 졸업한 엘리트였다.
  
  세 번째 동거자는 내 또래의 스님이었다. 그는 새벽 세시 삼십분경이면 일어나 얼어붙은 법당 안에 들어가 새벽 예불을 하고 겨울 달이 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내려다 보는 마당에서 도량석 목탁을 올렸다. 새벽이면 얼어붙은 청솔가지를 아궁이에 넣고 불을 피워 가마솥에 밥을 했다. 그는 절 방 고리짝에 있던 승복 한 벌을 얻어 입었다고 했다. 그는 수도승이었다. 내 또래인 그가 추구하는 게 무엇인지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부처라는 관념을 따라가다가 관념 내지 추상이 되어 버리는 건 아닌지 하는 의문도 들었다. 진리라는 건 보이지도 손에 잡혀지지도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 암자의 주지방에서 우연히 마주친 스님이 있었다. 두툼한 낡은 승복을 입고 나를 보는 그의 눈빛이 쏘는 듯 날카로웠다. 그의 눈은 나를 ‘속물’이라고 비웃고 있는 것 같이 느껴졌다. 젊은 날의 법정 스님이었다. 부근의 약수암에는 유명한 성철스님이 있었다.
  
  내 또래의 스님은 빈 시간이면 조각 도구를 사용해서 목각을 했다. 불경이 아니라 나무를 깎는 것으로 도를 닦으려는 것 같이 보였다. 그의 솜씨가 이미 경지에 이른 것 같았다. 그가 조각한 부처나 보살상은 살아서 움직이는 것 같았다. 나는 그 스님이 안됐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들은 잠시 그곳에 머물다가 화려한 세상에 나가 잘 살 사람이었다. 그런 세상은 스님을 산 속에 떼어놓고 마구 달려갈 것 같았다.
  
  그 무렵은 내가 아내와 막 연애를 시작할 무렵이기도 했다. 아내에게 선물을 해 주고 싶은데 나는 아무것도 해 줄 능력이 없었다. 어느 날 목각을 하는 그 스님에게 간절한 마음으로 부탁했다.
  
  “내가 사랑하는 여자가 생겨 선물을 하고 싶은데 돈이 없네요. 스님이 목각을 만들어 주면 안 될까요?”
  
  나의 간절함을 스님이 공감한 것 같았다. 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산에 가서 느티나무 둥치를 잘라다가 얼어붙은 물 속에 보름 정도 담가두었다. 그리고 그 다음부터 정성 들여 조각을 했다. 한 달쯤 후에 스님은 내게 정성들여 만든 작품을 건네주었다. 한 발가벗은 소년이 큰 기둥을 등에 지고 걸어가는 모습이었다. 발치에는 구름같기도 하고 불꽃 같기도 한 장식이 배경으로 조각이 되어 있었다. 나는 그 조각을 배낭에 넣고 멀리 대구까지 가서 아내 집에 두고 왔다. 거의 오십 년 가까운 세월 저쪽의 일이었다.
  
  그해 겨울 암자에 있던 세 부류의 젊은이들은 모두 칠십대 노인이 됐다. 그들이 추구하던 게 어떻게 됐을까. 같이 법 공부를 하던 사람들은 모두 공직에 있다가 다시 자연인으로 돌아왔다. 옆방의 혁명가는 정치학 교수를 하다가 정년퇴직을 한 걸 잡지의 인터뷰 기사를 보고 알았다. 그 스님은 그 후 어떻게 됐는지 모른다. 그 암자에 찾아가 물어봐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나는 지금도 그 스님이 만들어 준 조각상을 집에 놓아두고 있다. 벌거벗은 소년의 조각은 나인 것 같다. 조각상에 그 스님이 빙의되어 내게 이런 말을 전하는 것 같았다.
  
  ‘세상의 못난 중생들은 이런저런 무거운 욕망의 짐을 지고 힘겹게 가고 있소. 그 내면에는 탐욕의 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소. 젊은 날의 내게 출가가 무엇이었는지 아오? 그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그저 굴러가는 탐욕과 미혹의 불 속에서 뛰어내리는 거였소. 불난 집에서 뛰쳐 나오는 거였소. 정말 인간이 품어볼 만한 한 가지 욕심이 뭔지 아오? 그건 욕심을 버리겠다는 욕심이요.’
  
  나는 마음 속으로 씩 웃는다.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불쌍한 건 그가 아니라 나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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