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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칼럼
어항 속 금붕어 같은 판·검사들 "사실 판검사의 가장 무서운 적(敵)은 옆에 있는 서기들입니다" 엄상익(변호사)  |  2023-05-31
정보기관은 하나의 거대한 언론사 같았다. 정보관들은 아침에 회의가 끝나면 정보를 수집하러 나갔다가 오후가 되면 돌아와 보고서를 썼다. 데스크를 보는 사람이 그걸 취합하고 분석했다. 그렇게 모인 정보들을 종합적으로 다시 정리해 고급보고서를 만드는 부서도 있었다. 그 보고서는 대통령과 장관 등 한정된 사람들만 보는 것 같았다. 나는 그 보고서를 볼 자격을 얻은 셈이다. 정치, 경제, 언론, 종교 등 각 분야별로 신문이 그 분야의 팩트를 전달하는데 비해 정보기관은 각 분야의 인물들의 사상과 이면을 파악하는데 중점을 둔 느낌이었다.
  
  변호사인 나는 당연히 법조계의 정보가 어떤 것인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궁금했다. 정보조직 내부에서 매주 법조 정보가 두툼하게 생산되고 있었다. 법조인들의 별별 은밀한 내용들이 많았다. 정략결혼을 하고 혼수가 적다고 아내를 때린 법관의 뒷얘기도 있었다. 고위 법관으로 승진하기 위해 골동품 도자기를 싸들고 정치 실세를 찾아간 법원장의 행동도 기록되어 있었다. 검찰총장의 경우 그가 평검사 시절 있었던 독직행위나 친하게 지냈던 까페 마담의 얘기까지 나와 있었다. 법원이나 검찰 내의 성추행 등 이면의 지저분한 것들도 적나라하게 적혀 있었다. 판사나 검사들은 유리어항 속에서 유영하는 화려한 색깔의 금붕어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
  
  나는 법조계를 담당하는 팀으로 갔다. 검찰청과 법원을 출입하는 정보관들이 나를 보자 불편한 표정이었다. 몰래 법조계를 들여다 보던 그들이 내게 들킨 것 같은 심정인지도 모른다. 법조담당 팀장이 나를 경계하며 살폈다. 그는 보라는 듯이 앞에서 대법원장, 법원행정처장, 법무장관에게 차례로 직접 전화를 걸었다. 그는 그 고위직들을 형님이라고 호칭하면서 반쯤은 반말로 농담을 주고받았다. 메이저 신문사 부장들의 행태와 비슷했다. 팀장인 그가 전화를 끊고 앞에 앉아 있는 검찰 출입 정보관에게 내뱉었다.
  
  “박 검사장 그 새끼 안 되겠어. 검사장이라는 놈이 밤만 되면 술집하고 나이트클럽에 출근하고 있어. 엊그저께 그 놈이 다니는 단골 룸싸롱에서 제보가 들어왔는데 이 새끼 술 처먹을 때 히로뽕을 발라서 먹는다는 거야. 새끼가 대통령 빽 믿고 설쳐대고 있는데 언젠가 작살날 거야. 탈렌트 계집애들을 집으로 끌어들이지. 건달들한테 상납받지 하는 짓이 갈수록 태산이더라구. 최근에는 그 검사장놈 비서까지 설쳐대. 롯데그룹 담당 정보관이 그러는데 비서놈이 롯데 회원권을 공짜로 여러 개 요구했나 봐. 그거 다 공갈에 해당하잖아?”
  
  빈 말들 같지는 않았다. 나는 부끄러웠다. 팀장이 나를 보면서 입을 열었다.
  
  “법조계에서 변호사를 하다가 이 조직 안으로 들어와서 여기서 당신이 있던 법조계를 들여다보는 기분이 어때요?”
  
  나는 할 말이 없었다. 그가 말을 계속했다.
  
  “우리 정보조직이 검찰이나 법원을 주시하고 있어야 해요. 검찰은 기소를 독점하고 있어요. 재벌이 잘못해도 검찰이 기소를 하지 않으면 면죄부를 주는 셈이죠. 법원의 판사들은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권한을 행사하죠. 그 판사들이 다 법과 양심에 따라 재판할까요? 여기서 구린내 나는 뒤를 보면 재판 중 담당 사건의 변호사한테서 성 접대를 받은 판사도 있어요. 나는 우리 정보기관에서 법조계에 대해 어느 정도 견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견제가 없으면 검찰공화국이 될 수 있고 법원의 전단을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자격미달 판검사들의 비리 정보를 대통령과 그 기관장에게 통보해서 적절한 시점에 정리하도록 하는 거죠.”
  
  검찰출입을 하는 정보관이 앞 책상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대머리에 작달막한 남자였다. 내가 그에게 물었다.
  
  “이런 정보들을 어떻게 수집하는 겁니까?”
  
  “의외로 쉽습니다. 검찰이나 법원은 조직이 판검사와 서기로 이원화되어 있어요. 사실 판검사의 가장 무서운 적은 옆에 있는 서기들입니다. 자기들이 고시에 합격해서 판검사가 되려다 그게 좌절된 사람들이 많으니까요. 판검사직에 한 맺힌 몇 명만 포섭해 두면 정보가 넘쳐납니다. 심지어는 없는 거짓말도 만들어 주는 사람들도 있는데요. 그런 사람들 인사이동 때 서울에 있게 해 준다던가 더러 밥을 사고 민원을 해결해주는 방법으로 정보에 대한 보상을 해 줍니다.”
  
  그때 통신 담당 직원이 다가와 법조팀장의 책상 위에 몇장의 서류를 놓고 갔다. 줄 쳐진 궤지에 송수신자의 이름 그리고 대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도청 기록이었다. 수신자는 내가 아는 판사였다. 팀장이 나를 보고 말했다.
  
  “우리 시각으로 이 판사는 악질이에요. 노조 투쟁을 주도한 핵심 좌경분자를 다른 판사들이 반대하는 데도 독단적으로 무죄로 석방시켰어요. 낭만적인 자기 감정만 있지 체제 유지와 국가안보를 모르는 것 같아요. 이런 해이한 판사는 옷을 벗겨야 해요. 그래서 도청을 통해 비리 사실을 추적하는 중이죠. 틀림없이 변호사와 접대 관계나 뇌물 관계가 있을 거에요. 그게 잡히는 날 조용히 그 정보를 법원행정처에 통보하면 옷을 벗지 않을 수 없죠.”
  
  언론사의 간부들, 종교계 경제계의 주요 인물들이 감시를 당하고 있었다. 사회 모든 분야의 인사들이 어항 속의 붕어 같다는 느낌이었다.
  
삼성전자 뉴스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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