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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칼럼
舍利奉安記에 武王을 ‘大王陛下(대왕폐하)’로 표기 1370년 만에 나타난 百濟문화의 精髓(정수) 趙南俊(전 월간조선 이사)  |  2023-09-28
10월9일까지 열리는 ‘대백제전’ 기념, 세 번째 글입니다.
  百濟의 걸작 가운데, 마지막으로 2009년 1월 하순,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전북 익산시 금마면 彌勒寺趾(미륵사지) 발굴 현장에서 찾아낸 9000여 점의 유물을 들 수 있습니다. 금판 舍利奉安記(사리봉안기), 금제 舍利壺(사리호), 은제 舍利盒(사리합), 은제 冠飾(관식) 등은 武寧王陵, 金銅大香爐에 이은 百濟문화의 精髓(정수)로서, 절정에 이른 百濟의 금속공예 기술 수준을 가늠할 척도가 된다는 것이 학자들의 소견입니다.
  
  문화재청이 공개한 전북 익산시 미륵사지 석탑의 사리 莊嚴俱(장엄구=사리호와 사리봉안기 등을 통틀어 일컫는 말)는 금제 사리호(=항아리)의 공예 수준이 높고, 사리봉안기를 통해 彌勒寺 창건 내력이 처음 밝혀졌다는 점에서 武寧王陵과 金銅大香爐 발견에 필적할 만한 성과로 평가됩니다. 당시 문화재청장이던 李健茂(이건무) 박사는 금제 사리호와 금제 사리봉안기 또한 『예술적으로 뛰어난 걸작』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배병선 국립문화재연구소 건축문화재연구실장은 『유물이 발견된 彌勒寺趾 석탑 1단의 舍利孔(사리공·사리 장엄구를 넣는 공간)과 윗부분 석탑 副材(부재) 사이에 회를 발라 밀봉했기 때문에 국보급 유물이 1370년간 온전한 모습으로 보존될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사리공 중앙에서 나온 사리장엄구의 핵심인 높이 13cm, 어깨 폭 7.7cm의 금제 사리호 내부에는 X선 촬영 결과, 또 다른 내합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금제 사리호는 寶珠(보주) 형태의 뚜껑을 덮었으며 몸체를 위아래로 따로 제작한 이중구조였습니다. 필자도 현지에 가서 직접 보았지만, 크기는 자그마하나 사리함 겉의 세밀한 문양이나, 함의 부드러운 곡선 등 형체가 너무 귀엽고 아름다워 찬탄이 절로 나옵니다. 이귀영 국립문화재연구소 미술문화재연구실장은 『세밀하고 정교한 당초무늬가 百濟 공예기술의 정수를 보여주는 걸작』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특히 639년 창건 당시의 내역을 밝힌 금판 사리봉안기는 의미가 큽니다. 탑신이 있는 1층 心柱石(심주석)에서 나온 가로 15.5cm, 세로 10.5cm 크기의 금판에 漢字로 적힌 194자의 봉안기는 《三國史記》에도 기록이 없는 百濟 최대의 석탑, 彌勒寺塔의 모든 미스터리를 시원하게 풀어주는 열쇠입니다.
  
  금제 사리봉안기는 순금(순도 95%)판에 글자를 음각하고 朱漆(주칠)을 했습니다. 앞면과 뒷면에 창건 내력을 기록했습니다. 이곳에 새겨진 창건 연대(639년)는 百濟 武王(재위 600∼641) 때 彌勒寺가 창건됐다는 《三國遺事》의 기록을 뒷받침합니다.
  《三國遺事》에 따르면 新羅 眞平王의 셋째 딸인 선화공주를 연모한 薯童(서동=武王)은 밤마다 선화공주가 서동 방을 드나든다는 ‘서동요’를 퍼뜨려 선화공주와 혼인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三國遺事》의 彌勒寺 創建 설화는 武王이 王后와 함께 龍華(용화=彌勒)산 못가를 걷고 있을 때 미륵삼존이 못에서 나타나자, 王后가 큰 사찰을 지어달라고 부탁한 것을 武王이 들어줬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금제 사리봉안기에 따르면 彌勒寺를 창건한 百濟 武王의 王后는 百濟 8대 姓씨 중 하나로 유력 귀족 가문인 沙宅(沙씨에서 分化한 씨족)씨 출신으로 드러났습니다. 盧重國(노중국) 계명대 교수(백제사 전공)는 『沙宅씨는 聖王이 웅진(=공주)에서 사비(= 부여)로 천도할 때 지지했던 핵심귀족이었다』며 『武王이 사택적덕의 딸 외에 여러 명과 혼인했을 가능성도 있어 (선화공주에 대한) 《三國遺事》의 기록이 잘못됐는지는 연구가 더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금제 사리봉안기에는 武王을 「大王」으로, 존칭을 중국 황제에게나 쓰는 「陛下(폐하)」로 표현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武寧王陵에서 大王이 「崩(붕)」했다는 것과 마찬가지로, 당시 百濟가 대왕국 체제를 유지했으며 武王의 왕권이 매우 강력했다는 점을 보여주는 단서 아닐까 싶습니다.
  
  사리봉안기 全文은 다음과 같습니다. (띄어쓰기는 필자가 임의로 했음)
  
  (전면)
  
  〈竊(절) 以法王出世(이법왕출세) 隨機赴感應(수기부감응) 物現身(물현신) 如水中月是(여수중월시) 以託生王宮(이탁생왕궁) 示滅雙樹(시위쌍수) 遺形八斛(유형팔곡) 利益三千(이익삼천) 遂使光曜(수사광요) 五色行遶七遍(오색행요칠편) 神通變化不可思議(신통변화불가사의) 我百濟王后(아백제왕후) 佐平沙宅積德女(좌평사택적덕녀) 種善因於曠劫(종선인어광겁) 受勝報於今生(수승보어금생) 撫育萬民(무육만민) 棟梁三寶(동량삼보) 故能謹捨淨財(고능근사정재) 造立伽藍(조립가람) 以己亥(이기해)
  
  (후면)
  
  年(년) 正月二十九日(정월이십구일) 奉迎舍利(봉영사리) 願(원) 使世世供養(사세세공양) 劫劫無盡(겁겁무진) 用此善根(용자선근) 仰資‘大王陛下(앙자대왕폐하)’ 年壽如山岳(연수여산악) 齊固寶曆(제고보력) 共天地同久(공천지동구) 上弘正法(상홍정법) 下化蒼生(하화창생) 又願(우원) 王后卽身心(왕후즉신심) 同水鏡照法界(동수경조법계) 而恒明身(이항명신) 若金剛等(약금강등) 虛空而不滅(허공이불멸) 七世久遠(칠세구원) 竝蒙福利(병몽복리) 凡是有心(범시유심) 俱成佛道(구성불도)
  
  뜻은 다음과 같습니다.
  
  <가만히 살펴보건대, 부처님(法王)께서 세상에 나오셔서 중생의 자질(=根機·근기)에 따라 감응하시고, (중생의 바람에 맞추어) 몸을 드러내심은 물 속에 달이 비치는 것과 같도다. (석가모니께서는) 왕궁에서 태어나시고 (사라)쌍수 아래에서 열반에 드시면서 8斛(곡=10말)의 사리를 남겨 삼천 세계를 이익되게 하셨다. 마침내 오색으로 빛나는 사리를 7번 요잡(오른쪽으로 돌면서 부처께 경의를 표함)하면 그 신통변화는 불가사의할 것이다.
  우리 백제 왕후께서는 佐平 沙宅積德의 따님으로 지극히 오랜 세월에 걸쳐 善因(선인)을 심어 금생에 뛰어난 과보를 받아 만백성을 어루만져 기르시고, 불교(=三寶)의 동량이 되셨기에 삼가 정재를 희사하여 伽藍(가람·사찰)을 세우시고, 己亥年(639년) 정월 29일에 사리를 받들어 맞이하였다.
  원하옵나니, 세세토록 공양하고 영원토록 다함이 없어서 이 선근을 바탕으로 하여 자질이 뛰어나신 대왕폐하(=무왕)의 수명은 산악과 같이 견고하고 寶歷(보력=치세)은 천지와 함께 영구하여, 위로는 정법을 넓히고 아래로는 창생을 교화하게 하소서.
  또 원하옵나니, 왕후의 신심은 水鏡(수경)과 같아서 법계를 비추어 항상 밝히시며, 금강(석)같은 몸은 허공과 나란히 불멸하시어 七世의 久遠(구원)까지도 함께 복리를 입게 하시고, 모든 중생들 함께 불도를 이루게 하소서.>
  
  미국의 저명한 여성 동양미술사학자 존 카터 코벨(1910~1996년) 박사는 일찍이 彌勒寺塔을 주목하라는 말을 남긴 바 있습니다. 그녀는 미국 컬럼비아대학에서 日本 미술사로 박사학위를 받고 20년간 캘리포니아 주립대, 하와이 주립대 교수로 재직 중, 日本에 건너와 일본문화를 연구하였습니다. 日本 곳곳에 묻어있는 구다라(=百濟의 일본 발음)의 냄새를 알아보려고 3개월 예정으로 한국에 건너왔다가 9년 동안 체류하며 한국의 문화재 전문가가 되었습니다. 그녀는 익산 彌勒寺塔을 찾아가 세밀하게 살펴본 다음, 그 예술성을 높이 평가하며 『彌勒寺塔의 비밀을 주목하라』는 수수께끼 같은 말을 남겼습니다. 그 수수께끼가 풀렸다고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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