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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테러하는 테러리스트들! arock  |  2020-08-01  |  조회 : 114  |  찬성 : 1  |  반대 : 0

=제주 4.3 사건에 대한 허무맹랑한 발상=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 개정안이 21대 국회의원136명에 의해 발의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43일 제주 4·3 희생자 추념식에서 “4·3은 제주의 깊은 슬픔입니다. …………….제주는 해방을 넘어 진정한 독립을 꿈꿨고, 분단을 넘어 평화와 통일을 열망했습니다. ………. 그러나 누구보다 먼저 꿈을 꾸었다는 이유로 제주는 처참한 죽음과 마주했고, 통일 정부 수립이라는 간절한 요구는 이념의 덫으로 돌아와 우리를 분열시켰습니다.” 라고 한 후 3개월만이다.

 

이 발언은 사실과 전혀 동떨어진 역사왜곡 수준을 넘는 역사를 테러하는 발언이며, 이에 동조한 136명 역시 역사를 테러하는 테러리스트들이라 부르지 않을 수 없다. 이적 행위인 동시에 반역적 행동이다.

 

제주 4.3 사건은 그 1년 반전에 일어난 1946 10 1, 대구 폭동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4.3 사건의 주범 김달삼(본명 이승진)이 대구 폭동에서 중요 역할을 하여 박헌영의 심복이 되었고 4.3 사건 역시 박헌영의 지령으로 발생한 때문이다.

 

대구 폭동이 있기 전, 1946 7월 초, 박헌영은 모스크바로 김일성과 함께 스탈린의 명령으로 면접을 보러 갔다. 김일성과 박헌영 중 누구를 북한의 지도자로 선택하느냐, 즉 최고 권력자 서열을 정하는 중요한 자리였다.

 

이 때 소련 외무성 측은 박헌영을 북한 지도자로 밀었고, 소련 군부와 베리야가 수장인 내무인민위원회(NKVD)는 김일성을 밀었다.

 

돌아온 박헌영은 자기가 불리함을 깨닫고, 뭔가 스탈린에게 보여줘야 자기가 스탈린의 눈에 들 거라 생각하고, 10월 대구 폭동을 계획한다.

 

그는  스티코프에게 "사회단체"에 대한 지도요령에 관한 문의를 하고, 그로부터

 

"테러와 압제에 항의하는 대중적인 시위를 벌이고 항의집회를 개최해도 좋다."는 허가를 받고 2차에 걸쳐 일화 500만 엔까지 수령하였다.

 

대구 폭동은 우발 사건이 아니고 박현영이 그의 조종 하에 있던 전평(조선노동조합 전국평의회)에게 지령을 내려 대구, 경북, 충청, 전라, 서울 등 전국적으로 일어난 대규모 폭동이다. 조선공산당을 제외한 좌익계열 9개 정당 대표들 마저도 이구동성으로 '박헌영의 공산당이 벌인 모험주의'라며 격렬히 비난했다.

 

한편 김달삼(이승진)은 고향이 제주 대정읍 영락리 987번지에서 이평근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일찍 부친이 대구로 이사와 술도가를 하였는데 부친이 돈을 벌어, 그를 일본 오사카에 있는 성봉중학교와 도쿄의 중앙대학에서 공부하게 하였다. 학병으로 징집되어 일본 복지산(福知山) 육군예비사관학교를 나와 일본군 소위로 임관하였다. 1945 1월 일본에서 공산주의자이자 군납업을 하던 강문석의 딸 강영애와 결혼하였다. 강문석, 강영애 역시 대정읍 인성리 1661번지에서 태어나 일본으로 건너와 오사카시 이쿠노쿠(生野區) 저사야란 곳에 살고 있을 때였다
 
김달삼이란 이름은 원래 강문석이 쓰던 가명인데 이승진은 이를 이어받아 대구 폭동 후 사용한 것이다.

 

해방 후 대구에서 좌익 활동을 하던 그는 대구 폭동에서 큰 두각을 나타내어 박헌영의 심복이 되었다. 경찰의 수사망이 좁혀 오자, 그는 고향인 제주로 돌아가 신분을 세탁하고, 이름을 김달삼으로 바꾸어, 박헌영의 지시에 따라, 대정중학교 사회과 교사로 재직하며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가르치는 한편, 남로당 조직부장을 맡았다. 4·3 사건 발발기에는 남로당 제주도당책이자 군사부 책임자였다.

 

4.3 사건은 박헌영이 기획한 또 다른 모험주의였고, 공산주의자들이 5.18 총선을 방해하기 위해 음모, 기획한 명백한 폭동이자, 반역이었다. 진압과정에서 부작용이 컸던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그가 제주를 탈출할 때 김일성과 박헌영은 잠수함을 제주로 보낼 정도로 그는 거물이었다탈출 후 그는 8 21일부터 황해도 해주에서 개최된 인민대표자대회에 참가하였다. 제주에서 참가한 강규찬(姜圭贊)과 고진희(高眞姬)부부, 이정숙(李貞淑), 안세훈(安世勳) 등과 함께 최고인민위원회  대의원에 선출되었다. 이 자리에서 그는 ‘제주4·3투쟁보고’를 하고, 북조선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에서 국가훈장 2급을 수여 받았다.

 

이후, 강동정치학원에서 유격대훈련을 받은 후, 1949년 8월4일 강동정치학원의 4차유격대 대장으로 유격대원 300명을 이끌고 일월산 일대로 침투했다. 이후 경북 보현산에 거점을 구축한 후 동해연단을 편성하여 대한민국 국군을 상대로 유격전을 지휘하였다.

 

그후 토벌군에 밀려 퇴각하던 중 1950 3월 20  정선군 삼운리에서 국군 제185부대 수색대에 발견되어 반론산 동쪽을 수비하고 있던 제185부대 예하 제336부대 2중대와 접전, 전투 중 사살되었다.

 

제주 사건 수괴의 이러한 행적은 제주사건의 성격이 공산 무장폭동 외에 다름 아닌 것을 입증한다.

 

이러한 제주폭동을 미화한다면 대구폭동을 포함해 해방 이후 좌익이 일으킨 모든 폭동을 미구에는 면죄부를 부여 해야 할 것 아닌가?

 

더 이상 빛나는 대한민국의 역사가 좌익에 동조하는 테러리스트들에게 테러 당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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