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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권 나라, 불가리아를 보고1 bestkorea  |  2021-11-29  |  조회 : 134  |  찬성 : 2  |  반대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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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중 만난 사람들41 구공산권 불가리아

(English version is bel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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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나는 이 위대한 지도자들의 시대를 다 겪었다. 이분들의 덕택에 분에 넘치는 행운을 누렸다. 이분들의 위업(偉業)이 없었다면 언감생심(焉敢生心) 세계여행은커녕 대다수 빈민국처럼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의식주(衣食住) 범주를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우남부터 철저한 자유민주주의자였다. 그가 놓은 튼튼한 자유 토대(土臺) 위에 박정희와 전두환은 산업 인프라를 사통팔달(四通八達)로 촘촘히 짜 놓았다. 자유롭고 풍요로운 세계가 보이기 시작했다. 노태우는 무한한 호기심과 도전의식 DNA를 이어받은 한국인에게 세계의 문을 열어주었다. 3천만 명 남녀노소가 세계로 나가 견문을 넓히기 시작했다.

5천 년 한국사 최초로 신라(640년 선덕여왕 9)에서 당()으로 유학생을 보냈다. 그 후임 진평왕 때 청년 설계두를 비롯해 더 많은 청년이 세계에 도전했다. 통일신라 때는 연 216명까지 당과 인도로 유학 혹은 여행을 떠났다. 그 피를 물려받았다. 3천만 명 중에는 노구(老軀)와 언어 장애의 불편에도 불구하고 직접 세계를 보겠다는 의지가 바로 그 DNA이다. 우남,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이 위대한 지도자들의 자유의지와 열린 마음이 없었다면 나 역시 오늘날까지 우물 안에 갇혀 남 탓 병에 절어 살았을 것이다. 보는 것은 믿는 것. 비록 간접 경험이나마 지구촌 구석구석에 남겨진 구공산주의 체제의 비참한 흔적을 보고야 실감했다. 한국은 위대하다. 이 역시 이분들의 덕택에 가능했다. 어제 전두환 대통령은 새로운 여정(旅程)에 오르셨다. 평안(平安)한 여정이 되시길 빌면서 지난 나의 여정도 떠올려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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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미국과 유럽을 다녀온뒤 이른바 자유의 물결이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리고 철의 장막이 무너진 1988년과 1991년을 전후로 독일과 구 동구권을 돌아봤다. 그 이후 역시 중남미와 아프리카, 발칸반도와 발틱3국 그리고 러시아 쫑공을 포함 아시아의 공산권을 나름대로 살펴보았다.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자유대한민국에서 태어났다는 것이 얼마나 자랑스럽고 행복한지를 그때야 진정으로 깨달았다는 것. 사회주의 공산주의야말로 진짜 헬세계였기 때문이다. 현명한 자는 역사에서 배우고 우둔한 자는 경험에서 배운다. 나는 후자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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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우셰스쿠(루마니아),피노체트(칠레), 카다피(리비아), 아사드(시리아), 호네크(구동독), 무가베(짐바브웨), 무바르크(이집트), 티토(세르비아), 폴포트(캄보디아), 믈라디치(보스니아), 밀로세비치(세르비아), 수하르토(인니), 페론(아르헨), 마르코스(필리핀), 이디아민(우간다), 머택똥(쫑꾹), 스탈린(러시아), 지프코프(불가리아), 후사크(체코슬로), 야루젤스키(폴란드), 라코시(헝가리), 차베스(베네수엘라), 비델라(아르헨), 뒤발리에(아이티), 체게바라,카스트로(쿠바), 솔라노 로페스(파라과이), 후지모리(페루), 반세르 수아레스(볼리비아).... 이들 사회.공산주의 독재체제가 남겨놓은 어둡고 춥고 배고픈 슬픈 그림자는 너무 길고 짙었다. 내가 지금까지 태어나고 살아온 내 나라 대한민국에선 50년대와 60년대 초 잠깐을 제외하곤 본 적이 없었다. 성공한 나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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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리아를 가다(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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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리아는 흑해 연안에자리 잡은 나라다. 주요 민족은 남슬라브계의 불가리아인으로 90%를 차지하고 있다. 지리상 이민족의 왕래가 잦았으며 그때마다 민족 간의 투쟁이 빈번했다. 비잔틴 시대(11-12세기 동안)와 오스만튀르크 점령 시대(14-19세기 동안)를 거처 1878년 러시아와 튀르크 간의 전쟁이 있었다. 이 전쟁에서 러시아가 이기자 불가리아는 마침내 튀르크 지배에서 벗어나 왕조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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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1차대전 당시 독일과오스트리아 측에 가담했으나 패전국이 되어 영토 일부를 빼앗긴다. 2차대전에서도 실지(失地) 회복을 위해 참전했으나 결국 전범국에 속해 패하고 만다. 198911월 민주화 운동으로 공산 체제는 붕괴하고 공화국으로 탄생했다. 하지만 급속한 시장경제 체제의 도입에 따른 혼란이 가중되어 경제적 어려움에 부닥쳤다. 국민 대부분은 불가리아 정교를 신봉한다. 그러나 종교색은 그리 짙지 않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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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이스탄불에 있다.여기서 버스로 불가리아로 갈 것이다. 수도인 소피아까지는 약 12간이 걸린다. 어쩐지 버스 여행이 기차 여행보다 더 재미있을 것 같아서다. 출발지는 이스탄불 버스터미널, 재미있는 진풍경은 이미 시작됐다. 원래 오후 6시 출발인 버스가 자그마치 한 시간이나 늦게 출발했다. 그 한 시간 동안 버스 주변은 왁자지껄 정신이 없다. 무질서의 극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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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승객들은 대부분 보따리상인들, 엄청난 양의 카펫이 버스 옆에 쌓여있다. 그것을 앞다투어 버스 짐칸에 실을 땐 장관이었다. 정글의 법칙을 실감케 했다. 그러나 예외 없는 규칙이 없듯이 이곳도 그랬다. 체력이 약한 자는 돈(뇌물)으로 대신한다. 상인들이 서로 자기 물건을 싣고자 몸싸움을 해도 버스회사 직원들은 팔짱 끼고 구경만 했다. 그에게 다가가 돈을 슬쩍 쥐여 주면 효력은 즉각 나타난다. 그 직원은 다른 상인들이 몸싸움하여 간신히 실어 놓은 카펫들을 사정없이 끌어 내린다. 그리고 그 자리에 돈을 준 상인의 물건을 챙겨 넣는다. 이 같은 횡포는 계속됐다. 보기에 민망할 정도다. 그러나 이건 나만의 심정인 듯 아무도 이에 항의하거나 저항하는 사람이 없다. 선후진국의 차이점이 잘 드러나는 현장이다.

 

버스는 이스탄불 도심지를 벗어났다. 빛바랜 모습의 아파트군도 시야에서 사라졌다. 4시간 후, 11시에 국경 도착. 터키 측 출국 심사는 거의 형식에 가까웠다. 통과. 문제는 불가리아 경계를 넘은 입국 심사대. 이미 심사를 받거나 대기 중인 관광버스들이 줄지어 서 있다. 심란할 정도다.

 

우리가 탄 버스 기사는 상인들에게각자의 짐을 다 꺼내 놓으라고 했다.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다들 행동 개시. 상당한 시간이 지난 후 불가리아 이민국 관리가 거만한 자세로 버스에 다가온다. 꺼내 놓은 물건들을 발로 툭툭 차 본 뒤, 차에 올라선다. 한국은 불가리아와 비자 면제 협정국, 물론 검사받을 물건도 없는 나는 별 신경 안 쓰고 앉아있었다. 근데 왠지 그 관리의 험상궂은 인상과 날카로운 눈길이 예사롭지 않다. 아니나 다를까. 그가 차내의 승객들을 썩 훑어보는 순간 바짝 긴장돼 버린다. 정말 기분 나쁜 눈길이다. 내가 본 공산주의자들의 공통점.

 

나는 버스 중간에 앉았고내 좌측과 앞 좌석엔 중국인 3명이 앉았다. 그리고 내 우측엔 줄곧 눈을 감고 잠을 자는 듯한 정장(正裝)을 한 흑인 신사가 앉아있다. 나머진 약간의 터키인을 제외한 동구권의 백인들. 그런데 그 심술궂게 생긴 관리의 시선이 내 옆의 흑인 신사에게 멈춘다. 곧장 눈도 끔쩍 않고 굳은 표정으로 그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는 마치 범죄자를 대하듯 그 흑인 신사에게 여권을 요구했다. 여권을 아래위로 흩어보며 심문에 가까운 조사를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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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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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Met on My Backpacking41 - Scary Bulga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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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hee Syng-man, Park Jung-hee, Chun Doo-hwan, and Roh Tae-woo. I've gone through all these great leaders. Thanks to them, I enjoyed my life. I could travel around the world with their feat. No need to worry about the food, clothing and shelter. "Lee Seung-man" was a thoroughly free democrat. On the basis of his strong freedom, Park Jung-hee and Chun Doo-hwan closely organized the infrastructure of the industry in all directions. Seemed to be a rich Korea. Roh Tae-woo opened the door to the world to Koreans who inherited the DNA of infinite curiosity, creativity, and challenging spirit.

Thirty million men and womenof all ages per year went out to the world and began to broaden their horizons. Since sending an international student to the Tang Dynasty from Silla (9th year of Queen Seondeok) for the first time in 5,000 years of Korean history, many young people, including Sol Kye-du, have challenged the world during the reign of King Jinpyeong. During the Unified Silla period, up to 216 people a year went on a study abroad or trip to Tang and India. The blood was inherited. Of the 30 million people a year, DNA is the willingness to see the world in person despite the inconvenience of the elderly and language barriers. Rhee Syng-man, Park Jung-hee, Chun Doo-hwan, and Roh Tae-woo. Without the free will and open mind of these great leaders, I would have been trapped in a well to this day and lived in a disease to blame others. Seeing is believing. Although it was indirect experience, I realized only by looking at the miserable traces of the old communist system left in every corner of the global village. This was also possible thanks to them. Yesterday, President Chun Doo-hwan took another long journey. Wishing HIM another long exciting journey, I feel like to think of my journey in the past, t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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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ter visiting the USA andEurope in 1983, I traveled to the former Eastern European communities, including Germany, between 1988 and 1991, when the so-called wave of freedom broke down the Berlin Wall and the Soviet Iron Curtain collapsed. Since then, I have also toured Latin America, Africa, the Balkans, the three Baltic countries, and the communist regions of Asia, including Russia. In conclusion, I only realized then how proud and happy I was to be born in a free Korea. It’s because socialist communism was a "real hell." The wise learn from history and the dull learn from experience. Me? The la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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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was only after I saw in personthe miserable traces of the following socialist dictatorship.

Ceaușescu(Rumania), Pinochet(Chile), Gaddafi(Libia), Assad(Syria), Honecker(E.Germany), Mugabe(Zimbabwe), Mubarak(Egypt), Pol Pot(Cambodia), Thito (Serbia), Mladic (Bosnia), Milosevic (Serbia), Suharto (Indonesia), Marcos (Philippines), Peron (Argentina), Idiamin (Uganda), Mao (China), Stalin (Russia), Jeepkov (Bulgaria), Husak (Czechoslovakia), Yaruszelsky (Poland), Lacosi (Hungary), Chaves (Venezuela), Videla (Argentina), Duvalier (Hait), Chegevara, Castro (Cuba), Lopez (Paraguay), Fujimori (Peru), Van Ser Suárez (Bolivia), et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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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old, hungry dark and sad shadows left by social communist dictators have never been seen except in the 50s and early 60s in Korea, where I was born and lived until now. Only continuous growing up since th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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