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대통령 때 김영삼씨가 민주화하라면서 단식을 했다 마침 그때 포수 한 명이 설악산(?) 반달곰 한 마리를 쏴 죽였다 곰 한 마리 죽인 것을 갖고 언론마다 야단법석도 아니었다 온통 반달곰 죽은 이야기만 했고 일부 사람들도 덩달아 오오했다(嗷嗷.여러 사람이 원망하며 떠들다) 그러자 김영삼씨가, “야당 대표의 단식은 언론에 한 줄도 안 나오고 곰 이야기뿐이다.”는 요지의 말씀을 했다 나는 그때에야 반달곰이란 걸 알았다
어제(11. 6)조선일보에 이런 기사 제목이 있었다《“곰이 독립운동 했냐?” 국감서 반달곰 복원사업 지적》10월 14일 열린 국회 기후에너지 환경노동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 국민의힘 우재준 의원이 그랬다는 것이다 잘했다 저런 지적이 나와야 한다
김영삼 대통령과 연관된 트라우마인지는 모르나, 나는 애당초 반달곰 복원사업을 시큰둥하게 여겼다 그때만 해도 사흘이 멀다 하고 지리산에 다녔다 이상하게 지리산에 가는 사람은 대개 다른 산에는 잘 안 가게 될 뿐 아니라 다른 산을 산으로 여기지도 않는 산객(山客)의 허영심과 스노비즘(snobbism)이 생기게 된다 어쨌든 지리산 먼당에 올라서면 산기(山氣)가 예사롭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때는 마침 반달곰을 지리산에 풀어놓을 때였다 산꾼의 안전을 도외시한 채 무작정 반달곰을 풀어놓고서 개체수를 늘리는데만 골몰했던 것이다 반달곰이든 잡종 곰이든 성체가 되고 개체수가 폭증하면 산꾼들의 안전을 어떻게 보장할지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기는커녕 아예 그런 생각이 없는 듯했다 그러다가 반달곰이 남의 농사를 망치는 일이 연일 곳곳에서 터지자 비로소 속도 조절을 하는 듯하더니 조용해지자 다시 반달곰 위주의 정책을 폈다
그러다가 마침내 작년에는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그리고 재산 피해는 통계에 잡히는 것만 594건에 이른다 지리산에 풀어놓은 곰이 덕유산에서 발견되었다는 보도가 나온지도 20년 가까이 될 것이다 만약 덕유산에서 곰에게 물리기라도 하면 환경부는 틀림없이 "덕유산에는 곰을 풀어놓지 않았다."고 오리발 낼 것이다 지금 있는 반달곰은 우리 토종도 아니고 러시아에서 가져온 것인데 무엇이 그리 좋은지 모르겠다 여기서 우스운 속담 하나.
“재수 없는 포수는 곰을 잡아도 웅담이 없다.”
물론 우재준 의원은 다른 각도에서 반달곰 복원사업을 지적했다 그는 “환경부가 반달가슴곰 복원사업을 홍보할 때 ‘일제강점기 당시 이뤄진 해수구제(맹수 제거) 사업을 바로잡는 일’이라는 걸 근거로 삼았다." 이어서 "환경부의 주장은 과학적 주장이 아니라 이념적 주장이다."라고 말했다
과거사든 현안이든 우리에게 안 좋은 일은 죄다 일제의 탓으로 돌려버리면 반론 불가의 당위성을 얻게 된다 거기에 감히 반대했다간 친일분자가 되고 만다 속으론 아닌데 싶어도 입을 열어 반대하지 못하는 것이다 뒤집어 말하면 반대가 심할 것 같은 일을 추진할 때는 ‘일제’나 ‘일제 유산 청산’을 갖다 붙이면 반대를 미리 잠재울 수 있다 반달곰 복원사업처럼 내키는 대로 추진하는 일도 일제가 망친 것을 복원하는 일이라고 하면 되는 것이다
환경부의 주장대로 반달곰 복원사업이, '일제의 맹수 제거 사업'을 바로 잡는 것이라 할지라도, 일제가 잡아 죽인 맹수 가운데서, 호랑이가 가장 가치 있는 것일 터이다 왜 호랑이는 산에 풀어놓지 않나. 툭 하면 일제를 걸고드는 사람은 아직 해방이 안 된 사람일 것이다 그래서 좋은 일을 하면서도 '일제'를 끌어다 쓰면 나는 외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