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고조(漢高祖)가 운몽택(雲夢澤) 순수(巡狩)를 가장한 데 대하여(僞遊雲夢論) / 無名子
한 고조가 한신(韓信)을 대한 방법은 평생 ‘속임수(僞)’에 지나지 않았다. 어째서일까? 사리에 밝았던 한 고조가 신하를 속임수로 대해서는 안 됨을 몰랐을 리가 있겠는가? 그러나 한신은 보통의 방법으로 부릴 수 있는 사람이 아님을 알았기 때문에 처음부터 끝까지 속임수로 상대한 것이다.
한신이 검을 들고 한(漢)나라로 귀의했을 때 한 고조도 한신이 쓸 만한 인물임을 모르지 않았다. 그런데도 치속도위(治粟都尉)로 삼는 데 그치고 중용(重用)하지 않은 것은 속임수였다. 또 한신을 쫓아갔다고 소하(蕭何)를 꾸짖은 것도 속임수였고, 단(壇)을 설치하여 대장군에 임명해서 온 군중(軍中)을 놀라게 한 것도 속임수였으며, 새벽에 한(漢)나라 사신으로 위장하고 조(趙)나라 진영으로 달려 들어가 부절을 빼앗은 것도 속임수였다. 한신이 제(齊)나라의 임시 왕이 되겠다고 청했을 때 성내며 꾸짖은 것도 속임수였고, 다시 꾸짖고 정식 왕으로 삼은 것도 속임수였으며, 한신을 제왕(齊王)에서 초왕(楚王)으로 바꾸어 주어 평생의 은혜와 원수를 갚게 한 것도 속임수였다. 한 고조가 한신을 부린 평생의 자취를 살펴보면 어느 하나 속임수 아닌 것이 없다.
한신이 병력을 이끌고 다니며 모반한다는 소식이 접수되었을 때에는 한 고조도 어떤 속임수를 써야 할지 몰랐으니, 평소에 한신을 부리던 술수가 이때에 이르러서는 궁해진 것이다. 저들 강후(絳侯) 주발(周勃)과 관영(灌嬰)의 무리는 모두 한 고조가 한신을 특별한 방법으로 대하는 줄 모르고 부질없이 한 목소리로,
“속히 군대를 출동하여 애송이를 묻어 버리자.”
라고 부추겼으니 아, 당치 않다. 한신은 한 고조도 두려워서 속임수로 어렵사리 부리는 사람인데 어찌 이 장수들이 애송이로 대할 수 있는 상대이겠는가? 용저(龍且)가 썼던 계책과 다름없는 이들의 계책을 썼다면 한 고조의 평소 노력이 결실을 거두지 못하여 천하의 일이 어그러지고 말았을 것이다.
옥으로 장식한 관(冠)처럼 아름다운 소년 진평(陳平)만이 이러한 정황을 헤아려서 한 고조가 묵묵히 있다가 대책을 물었을 때 속임수를 제일가는 계책으로 제시하였는데, 한 고조도 흔쾌히 따랐다. 한 고조가 소하(蕭何)ㆍ조참(曹參)ㆍ장량(張良)ㆍ진평 등의 신하를 대할 적에 속임수를 쓴 적이 있었던가? 저 한신은 나라 안에 둘도 없는 ‘병법의 신선(兵仙)’이니, 그가 한번 발을 들면 천하의 그 누가 적수가 될 수 있었겠는가? 속임수를 쓰지 않는 한 지혜로 대응할 수도 없고 용맹으로 굴복시킬 수도 없었다. 이 때문에 한 고조가 어쩔 수 없이 운몽택(雲夢澤) 순수(巡狩)를 가장한 것이니, 이전에 쓴 무수한 속임수가 이 일을 예고했다고 할 수 있다.
세상 사람들은 한낱 운몽택 순수를 가장한 일만 보고, 그 이전에 사용한 방법이 다 속임수였음은 알지 못한다. 그래서 ‘가장했다(僞)’는 이 기록을 보고는 말들이 분분하니, 한신이 한 고조의 속임수에 빠졌음은 물론이고 천하 후세 사람들이 다 속임수에 빠진 것이다. 아, 귀신도 모르게 사람들의 판단을 흐려 농락하는 수법이 참으로 교묘하다.
한편 한 고조가 운몽택을 순수한 일에서 한신에 대한 한 고조의 깊은 이해를 엿볼 수 있다. 천자가 지방을 순수하며 그 지방 제후들의 조회를 받는 것이 예(禮)이기는 하나 폐기되어 지켜지지 않은 지 몇 년이나 되었고, 8년 동안 전란을 겪은 뒤에 조정에서 예규(禮規)를 확정하여 천하에 공포하기를 ‘진(秦)나라의 가혹한 법을 폐지하고 세 조목으로 ‘간소화 (約法三章)’할 때처럼 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만약 순수를 행한다 하더라도 이때 행해서는 안 되었다. 운몽택은 남쪽에 있기 때문이다. 남쪽 지방을 순수하는 것은 5월에 한다고 했으니, 12월에 한다는 말은 들어 보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 예규도 정하지 않고 때도 살피지 않고서 갑자기,
“운몽택을 순수하고 제후들의 조회를 받겠다.”
라고 명령하였으니 이 말이 진심이겠는가, 속임수이겠는가? 지혜로운 사람이 아니라도 충분히 의심할 수 있다.
한신이 정말로 반역할 마음을 품고 한 고조의 계책을 역(逆)으로 이용하여, 한수(漢水)와 방성(方城)의 유리한 지형을 차지하고서 ‘질항아리를 동여맨 뗏목 (木罌)’과 모래주머니를 사용한 것 같은 기지를 발휘하여 한 고조가 운몽택으로 올 때 습격했다면, 진평은 한 고조에게 또 어느 곳을 순수하는 척하라고 권했을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저 한신은 도성 아래에서 낚시하던 미천한 자이고 저잣거리에서 남의 가랑이 밑을 기었던 비겁한 사람에 불과하니, 한신에게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은 휘하의 군사들뿐이었다. 한신은 한 고조가 운몽택을 순수한다는 말을 듣고는 구름과 안개 속으로 떨어져 꿈속을 헤매는 것처럼 막연히 받아들였다. 그래서 급히 달려가 대령하기에 바빴으니, 속임수인 줄을 어떻게 알았겠는가?
한 고조는 한신이 속임수임을 모르고 속아 넘어갈 줄을 잘 알았다. 이 때문에 무사 하나를 데리고 남쪽으로 와서 마치 주머니 속의 물건을 찾아내듯 간단히 체포하였다. 만약 한신이 한 고조의 속셈을 알 만한 사람인데도 이러한 계책을 썼다면 계획이 어긋나 낭패를 보고 천하 후세의 웃음거리가 되지 않았겠는가?
운몽택의 일이 비록 기발하기는 기발했지만 옛날 성왕(聖王)이 아랫사람을 성심으로 대한 법도에 비추어 보면 부끄러움이 남는다. 한신의 입장에서는 참으로 화를 자초한 것이지만, 한 고조의 입장에서 보자면 속임수가 어찌 국가의 기틀을 세우고 후손에게 전해 주어 후대에 모범을 보일 수 있는 방법이겠는가?
아, 한신이 한(漢)나라에 세운 공이 어떠했는가? 한 고조와 함께 맨 먼저 중대한 계책을 세우고 한중(漢中)에서 일어나 관중(關中)을 평정하였으며, 군대를 나누어 북쪽으로 진격하여 위왕(魏王)을 사로잡고 대(代)나라를 빼앗고 조(趙)나라를 무너뜨리고 연(燕)나라를 핍박하였다. 또 동쪽으로 진격하여 제(齊)나라를 평정하고 남쪽으로 초(楚)나라를 멸망시켰으니, 한나라가 마침내 천하를 얻은 것은 모두 한신의 힘이었다.
제(齊)나라의 임시 왕이 되겠다고 청한 것이 발호하는 것으로 의심 받기는 했으나 그것은 단지 공(功)을 탐하는 마음에서 나온 행동일 뿐이었다. 그리고 군대를 이끌고 고릉(固陵)에서 만나기로 한 약속을 어기기는 했으나 이는 토지를 분봉(分封)받고 싶은 열망에서 나온 행동일 뿐이었다. 한신의 본심을 살펴보면 모두 불학무식(不學無識)으로 인한 잘못에 불과하였다.
그리고 옷을 벗어 입혀주고 음식을 미루어 먹여준 후대(厚待)에 감동하여 무섭(武涉)과 괴철(蒯徹)의 달콤한 꾀임을 거부하고 제후들의 조회를 받겠다는 명을 듣자마자 한 고조를 영접하기 위해 서둘러 진현(陳縣)으로 달려간 일을 볼 때, 한신이 어찌 딴마음을 품었다 할 수 있겠는가?
한 고조가 처음 물었을 때 진평은 이렇게 대답했어야 옳다.
“한신이 아무리 사납고 고집이 세다고는 하나 그래도 사람입니다. 한신에 대한 우리 한나라의 대우가 박하지 않았고 한신의 소원도 이루어졌으니 굳이 반역할 까닭이 무어 있겠습니까? 그리고 한신이 모반한다는 소식이 접수되기는 했으나 분명한 증거가 없으니, 사람을 시켜 진위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런 뒤에 사실일 경우 팽월(彭越)과 경포(黥布) 등을 불러 대의(大義)를 설파하고 한신의 죄를 규탄하여 토벌하게 한다면, 한신이 비록 사납고 야심 있는 호걸이기는 하나 죄가 명백히 드러나서 천지간에 용납받지 못하고 체포되고야 말 것입니다.”
이렇게 대답했더라면 임금의 입장에서는 후하게 공신(功臣)을 보호한다는 명분을 잃지 않고 신하의 입장에서는 임금을 도리에 맞게 인도하는 의리를 어기지 않게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속임수를 쓰라는 말로 임금의 마음에 영합하여 신하를 의심하게 만든단 말인가? 이 때문에 결국 한신은 반역을 꾀하게 되고 임금은 은혜를 베풀 줄 모르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그렇다면 한신이 불만에 차서 반역한 것은 한신의 본심 때문이 아니라 진평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그 뒤에 상국(相國) 소하(蕭何)가 한신에게 진희(陳豨)가 죽었다고 거짓으로 알리고 입궁(入宮)하여 경하(慶賀)하도록 압박한 속임수도 운몽택 순수의 속임수에서 변형되어 나온 술수이다. 불인(不仁)으로 인한 화(禍)가 어쩌면 이리도 매서운지!
아, 한신은 평생 한나라의 임금과 신하의 속임수에 놀아났으니, 속임수로 왕이 되었다가 속임수로 죽임을 당하였다. 장락궁(長樂宮) 종실(鍾室)에서 참수당할 때 비로소 아녀자의 속임수에 넘어갔음을 알았지만 꿈같은 한평생이 모두 다 속임수 천지 속에 있었다는 사실은 깨닫지 못했으니, 한신은 정말로 어리석은 사람이다.
이 때문에 나는 이 대목을 읽을 적마다 우선 한신의 불학무식함을 동정하고, 다음으로 한 고조의 거짓되고 야박한 행동을 탓하고, 끝으로 음흉한 계략으로 임금의 마음에 영합한 진평을 꾸짖곤 한다.